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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얼러브, 초식남-건어물녀의 내리 사랑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2. 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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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족’으로 대변되는 외톨이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요즘. 특정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외롭다고 하소연한다. “아 외롭다” “외로워서 미치겠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3자 입장에서 보건데 주변에 사람이 늘 넘친다. 모임 스케줄로 일주일이 바쁘며, 회사에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사회 모범생이다. 그럼에도 늘 외롭다고 하소연 하는 그들 스스로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 남자와 여자가 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사는 곳 주소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 하지만 다가가지를 못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단단한 빗장으로 굳게 걸어 닫은 채 서로를 견제하기만 한다. 눈치도 보고 말 한마디에 꼬투리 잡아 트집도 잡는다. 너무 익숙한 모습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연극에서도 비슷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관심이 많지만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 사로잡혀 벗어날 줄 모른다. 여자는 튕겨야만 한다. 안 그러면 가볍기 때문이다. 남자는 배려심이 깊어야 한다. 속 좁은 남자는 싫어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 보니 관심이 사랑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애써 만남을 지속하더라도 역시나 불편한 관계. 누가 속 시원하게 해결할 방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 사랑을 글로 배웠습니다.

37살 총각. 35살 처녀. 평생을 외롭게 살다보니 스쳐가는 것은 시간이요, 머무르는 것은 외로움이니 이제는 제발 함께 있고 싶다. 그들이 탈출구로 선택한 것은 결혼 중매 서비스. 하지만 반복되는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의 반쪽은 여전히 찾지 못한 그들에게 마침내 다가온 마지막 만남 날짜. 그것도 매번 차이는 것이 안쓰러워 서비스로 제공된 것이란다.

마지못해 나간 듯, 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반대. “이번에는 제발 그만 차였으면”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는 두 사람. 하지만 그 둘은 자신의 배필을 옆에 두고 멀리서만 그리워한다. 너무 오랜 시간 혼자라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춰버린 부작용이 문제다.

남자는 여자가 찾아주길 원하고,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기다려주길 바란다. 문제는 그랬다. 두 남녀는 생활 패턴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먼저 찾으면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인데도 그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문제였던 것. 누가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 답답한 사람들아~ 바로 옆에 그녀가 혹은 그 남자가 당신의 짝이라니까”라고.

결국 두 사람은 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맞선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무거운 발걸음을 뗀 후 다시 고독과 자책 그리고 실망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두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 받지 못한 애정을 인형에게 갈구하기 시작한다. 택배로 배달된 리얼 돌. 일명 단백질 인형. 무슨 인형에 유통기한이 있겠냐만 3개월 후에는 물이 녹아 흐르듯 사라진다는 데. 촉감부터 표정까지 사람을 쏙 빼닮은 인형에게 평생의 외로움을 하소연하는 그들. 너무 안쓰럽다.

너무 외로운 이유 때문일까? 결국 인형을 사랑하게 된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도 하지 않는다. 내 말은 묵묵히 들어주며, 힘들 땐 기댈 수도 있다. 언제든지 만질 수 있으며, 내 손길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런 인형에게 사람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남자와 여자. 잘못된 만남이라 하기에는 너무 깊어진 사랑.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 이 시대를 대변하는 초식남과 건어물녀

2009년 6월 16일. 영국 인디펜던트지에서는 “일본은 X세대를 초식남(herbivore, 草食男)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경제 성장 및 퇴락에서 발생된 부작용이 초식남을 만들었다는 것. 고도의 경제 성장이 이뤄진 그늘에서 자라난 그들은 일 밖에 모르는 월급쟁이 아버지가 그려낸 노년기 고독한 뒷모습을 접하고 세상을 향해 등을 짊어졌다는 것.

앞서 지난 2006년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는 인터넷에 연재하는 ‘U35남자 마케팅 도감’에서 신조어 ‘초식계 남자’(소쇼쿠 단시. 草食系 男子)라는 문구를 처음 사용하면서 화장 등 외모에 적잖은 투자를 하지만 일반적인 패턴인 구직이나 가정을 꾸리는 일에는 영 관심 없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성을 만나 연예를 하더라도 잠자리를 같이 하거나, 2세를 낳는 등 일상적인 ‘통과의례’엔 관심이 없다고 분류했다. 특징 또한 남성을 상징하는 강한 근육이 아닌 여성의 섬세함을 추구하며, 립스틱에 귀걸이는 물론 진한 향수를 뿌리며 애인이 있어도 손 한번 잡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것.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며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초식남의 연애학’ 우시쿠보 메구미의 ‘초식남, 여성화된 남자가 일본을 바꾼다’등의 서적도 출간됐다. 일본 홍보회사 인피니티의 우시쿠보 메구미 사장은 “일본의 20대와 30대 초반 남성 가운데 2/3이 초식남이며, 거품 경제가 한참일 때인 1980년대에 태어나 자란 세대다”고 일침을 놨다.

그런 그들이 오늘날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안정적이고 소박한 생활을 쫒으며, 사람을 만나기에 앞서 ‘주머니랑 상의’해 합리적이라고 판단이 될 경우에만 관계를 지속한다. 겉보기에는 건장한 남성이지만, 스스로는 남성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 권위, 근성 그리고 여성의 섬세한 감성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는 생각으로 철저한 독립된 삶을 추구하는 이들.

연극 ‘리얼러브’에서 이들은 너무도 외로운 외톨이일 뿐이다.

| 현대인의  ‘외로움’ 탈출구는 없을까?

화려한 조명 혹은 화려한 소품 그리고 시시각각 바뀌어는 변화도 눈에 띄지 않는 대학로에서는 보기 드문 소박한 연극 ‘리얼러브’ 초반 눈에 띄는 의자가 있다. 혹자는 말한다. “의자와 벤치의 차이가 뭔지 아니?”라고. 구분은 단순하다. 혼자 앉는 것은 의자이며, 벤치는 두 사람이 앉는 것을 벤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연극 초반에 등장하는 것은 의자다. 어쩌면 너무도 잘 어울릴 것만 같은 의자이지만 자세히 보면 의자는 서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닌 떼어져 있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너무도 잘 어울릴 것만 같은 남녀 사이지만, 서로를 부정만 하는 모습. 이 과정에서 언제부터인가 사람과 어울리는 일을 귀찮다고 혹은 번거롭다고만 생각해온 것은 아닐지 모른다.
게다가 텅 빈 무대에서 두 배우들의 마임 연기는 더욱 고독함으로 다가온다. 혼자 있는 방안에서 인형과
대화하는 남자와 여자. 그들에게 인형은 이성이며 유일한 친구이다. 사방이 막혀 있는 좁은 방. 너무도 편해 보인다면 당신도 외로움에 지쳐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당신에게는 인형도 없지 않는가! 더 늦기 전에 뛰쳐나가라. 그리고 애인에게 말하라.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라고.

외로움을 연극으로 표현한 ‘리얼러브’ 지난 2008년 파파프로덕션 창작희곡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작품으로 완성되어 2010년 동숭동 행복한극장 초연 무대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사랑을 책으로만 배웠다는 남자 혹은 사랑에 환상만을 기대하는 여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공연문의 : 파파프로덕션 02-747-2090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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