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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억울한 여자, 억울해! 난 왜 이래야 되는 거지?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2.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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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성공 스토리가 난무하는 세상. 자서전에는 성공하는 직장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덕목에 ‘소통’이 키워드로 등장한다.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며, 후배를 챙겨주는 자상함 이전에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한 발 앞서 ‘소통’했다는 것. 분위기를 이끌지 않아도,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지 않더라도 ‘소통’한 이들은 늘 부각되고 인생이 순탄하다.

하지만 여기 남과 소통하지 못하는 한 여인이 있다.
 
“신은 없는 건가? 만약 신이 있다면 무엇이 정답인지 가르쳐 줬으면~” 그녀의 외침 속에는 이 사회를 향한 간절함이 녹아 있다. 여느 여성과 다를게 없는 평범한 외모를 한 그녀의 인생은 그동안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사회는 그녀를 결코 평범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그녀의 독특한 호기심은 주변 사람들에게 강한 집착 혹은 도착증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이상해?”를 연발하는 그녀는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묘한 매력을 풍겨낸다. 주변에 늘 사람이 끊이지 않은 그녀. 그럼에도 늘 외롭다고 느끼는 주인공. 진짜 그녀는 이상한 것일까?


| 유별난 그녀, 아니 너무 솔직한 게 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본인 유코. 이번 결혼까지 계산하면 무려 네 번째 결혼에 달하는 그녀는 한적한 시골 외딴지역에서 네 번째 가정을 꾸린다. 평범한 삶을 원했지만 지금까지는 바람대로 순탄하지 않았던 그녀의 인생. 뒤늦게 만난 동화작가인 남편을 천생 연분이라고 느낀 그녀는 새로운 삶을 그리는데…….

하지만 도심에서 살던 그녀에게는 자신을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과 넉살좋은 카페 사장님. 가족처럼 손님을 살갑게 대하는 카페 여종업원이 이상하게만 보이고.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그들과 잦은 트러블을 일으킨다. 또 한 가지 꺾을 수 없는 그녀 특유의 고집은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소문으로만 돌고 있던 ‘떨매미’를 잡겠다는 그녀의 고집은 남편조차 두 손 두 발을 들게 만들고, 급기야 마을 사람들까지 선동하기에 이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행동을 점점 이상하게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그녀는 특유의 어투로 해석하기에 이른다. “내가 이상해? 그건 무슨 뜻이야? 진짜야? 프로이드는 뭐라고 했어?”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며 절규하는 유코. 유치원 시절 판다인형을 예쁘다고 칭찬해준 선생님께 한 달간 판다인형을 보여줬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랑하게 된 선생님을 육 개월 동안 전화하고, 교무실 앞에서 비석처럼 기다리는 과도한 집착성향도 보였다고 회상한다. 급기야 퇴학당했다며 자신을 이해 해주지 않던 주변 사람을 한없이 원망하기에 이른다.

결코 남과 같지 않던 그녀. 이런 그녀를 주변 사람들은 유별나다고 평가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집요하다고 평했다. 그리고 화를 냈고 거짓말쟁이라며 매장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솔직한 대답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 어쩌면 그녀가 살고 있는 사회는 감춰야 할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나 솔직했던 것일 뿐.

| 상식을 거부하는 사회, 그녀는 약자일 뿐

연극은 시작부터 끝까지 카페라는 배경에서 진행된다. 결혼식도 카페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대화도 카페에서 그리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조사하러 나온 한 대학생의 조사 과정 까지 카페라는 장소에서 이뤄진다. 주인공이 새로운 남자를 만나 인생을 설계하는 과정 까지 카페는 동일하다.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으며, 차나 다과를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이지만 유독 한 사람에게만 닫힌 공간인 이 곳.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이곳에서 주인공은 좀처럼 소통이라는 코드를 맞추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결국 그녀가 애타게 찾던 ‘떨매미’는 사실로 드러나지만, 이미 파탄 되버린 그녀의 네 번째 삶. 그리고 그녀는 다섯 번째 삶을 시작한다. 동일한 카페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얼마나 지속될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말이다.

지난 2001년 일본에서 초연된 후 한국에서는 2008년 연극으로 꾸며져 무대에 오른 ‘억울한 여자’ 오는 28일까지 세 번째 무대에 오르며 본 고장에서의 그것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다. 처음 알려진 것은 2007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을 통해서다.

연출자 박혜선이 가능성을 보고 무대에 올린 공연은 2008년 한국연극 베스트 7에 선정되고, 이어 2008년에는 동아연극상 신인 연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일상 속의 연애 심리를 통해 세계와 집단의 무관심, 그리고 개인의 소통 단절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아낸 것이 대중과 소통한 것.

고전 홍길동에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리지 못하는 구절이 나온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강요받는 세상에서 홍길동은 진실을 찾고자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깡패라는 타이틀이다.

주인공 유코 또한 진실만을 추구했던 가녀린 여인에 불과했지만 사회는 그녀를 품지 못했다. 왜일까? 어쩌면 ‘진실’이라는 것에 감춰진 두려움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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