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스트가 된 홍길동, 그도 남자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홍길동은 의적이라는 단 한마디로 일축됐다. 활빈당 활동을 통해 어려운 이에게 갈취당한 재물을 돌려주고, 탐관오리를 벌하며 약자 편에 섰다는 주된 내용이다.
문헌을 기반으로 홍길동의 나이을 추정 컨데 10대 중반을 조금 넘은 16~17세의 청소년이라는 의견이 다분하다. 때문에 사춘기시기에 접어든 홍길동은 이성에 호기심이 가장 왕성할 시기라는 것이 전재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알려진 홍길동은 범상치 않았던 의적일 뿐이다.
그렇다면 홍길동은 어린 시절에 이성에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답변이 한 편의 뮤지컬을 통해 재 조명됐다.
너무도 익숙한 의적 홍길동이 아닌 한 남자로써의 홍길동이다. 홍길동의 삶을 조명한 뮤지컬 홍길동은 오는 4월 18일까지 서울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이곳에 등장하는 홍길동은 의적이라는 수식어가 아닌 로맨티스트 홍길동이 더 잘 어울린다.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듯 했다. 하지만 결국 사랑을 지켜내지 못하면서, 슬럼프에 빠졌고 그를 믿고 따르는 이 또한 결단력 부족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다. 많은 이들이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쳐가며 홍길동을 지켜낸 것은 한 가지 이유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홍길동 본연의 인간미 이었던 것.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며, 일한만큼 얻을 수 있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진 홍길동은 농군을 꿈꾸던 양반집 서자였다.
일명 고귀한 신분. 인도의 카스트와도 비슷한 사회상 속에서 홍길동은 호부호형과 호형호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 눈을 돌린다. 당시 신분제도와는 정면충돌하는 모습 때문에 홍길동은 윗사람 눈 밖으로 각인됐다.
| 실존 or 허구? 장성군이 나섰다.
문제는 있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실존했냐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원본이 발견되지 못한 결과 경판본과 완판본 등 무려 10여 종에 가까운 다양한 서책도 모두 이본일 뿐이다. 이 같은 논란을 일축하기 위해 전남 장성군이 뮤지컬 홍길동에 적잖은 입김을 넣었다.
장선군은 역사속의 배경인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6년(서기 1500년) 10월 22일에 등장했다고 알려진 홍길동을 알리기 위해 고증을 바탕으로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뮤지컬을 재현했다. 주된 배경은 활빈당 활약 이후이며, 총 2막 16장으로 뮤지컬을 구성했다.
또한, 대중성을 위해 다른 시선에서 홍길동을 재현했다. 드라마와 영화로도 너무 익숙한 홍길동에 대한 그간의 내용은 동분서주한 그의 행각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던 것에 반해 뮤지컬 홍길동은 인간으로써의 고뇌를 주로 다룬 것. 그렇다 보니 공연 중간에 연인과의 사랑과 활빈당 활동 사이에서 선택하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또한 가수 슈퍼주니어 멤버(예성, 성민)를 주인공에 캐스팅해 후광을 노렸다. 이 때문에 공연 전부터 큰 화재가 되곤 했다. 실제 팬클럽에서 단체 관람을 오거나 공연 끝 부분에서 사진 촬영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일반적인 뮤지컬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것과는 큰 차이다.
물론 역사 속의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나 뮤지컬에 등장하는 기본은 픽션에 가깝다. 대부분 등장인물이 원활한 뮤지컬 진행을 위해 추가된 형식이며, 어색한 부분도 적잖이 목격된다. 대사 일부에서는 장성군이 홍보를 위해 억지로 삽입한 구절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전달된다.
먼저 특정 고을이 지나치게 언급되면서 억지에 가깝게 만들어진 대사는 극중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말한다. 이는 지역마케팅 일환으로 마련된 뮤지컬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어찌되었던 ‘홍길동’은 뮤지컬 아닌가!
두 번째는 지나치게 늘어진 전개 방식이다. 초반 너무 늘어진 홍길동 진행은 2막에 들어서면서 칼싸움 등 액션신이 등장한다. 결론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칼싸움에서 무조건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초반은 길고 후반은 짧고. 극의 자연스러운 진행이 아쉽다.
| 2% 부족한 화려함. 시도는 좋았다.
전반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신선함이 유독 돋보인 뮤지컬 홍길동. 특히 무대 구성은 여느 뮤지컬 보다 화려하다. 화려한 액션신의 아쉬움을 커버하는 부분이다. 잦은 무대 위 조형물 변화는 연출가의 고충까지 쉽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전달할 정도다. 이 같은 공을 들였음에도 뮤지컬 홍길동은 2% 부족하다.
대본이 내면의 연기를 요구했다면 구성을 지적하고 싶다.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했던 홍길동의 화려함은 뮤지컬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다. 홍길동을 상징하던 축지법이나 둔갑술도은 온데간데없다. 죽음이나 길을 떠나는 장면은 물론, 비보이 배틀 대결도 다소 어색하다.
홍길동의 고뇌 부분도 양반과 천민의 경계를 너무나 모호하게 표현한다. 어린나이임에도 동시에 양반 신분을 가진 홍길동은 스스로를 천민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말 속과 행동에는 양반이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점잖은 목소리에 결코 화내는 법이 없으며,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걷는 걸음까지.
그렇긴 해도 ‘뮤지컬 홍길동’을 통해 홍길동의 새로운 면을 조명한 시도는 높게 사고 싶다.
단순히 영웅으로만 치부되던 그 또한 한 국가의 백성이었으며, 동시에 남자였다는 것. 연모하는 여인이 있었으며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의 홍길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물론 최종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장성군과 사단법인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가 함께 한 역사판타지 창작 뮤지컬 홍길동. 화려한 출연진으로 인해 초반부터 주목 받았던 공연은 뮤지컬 홍길동 웹사이트 (
http://www.musicalhongildong.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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