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많은 루아와 빌리의 음악 이야기
빗소리와 함께 그들의 사랑도 싹을 틔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 사람이 좋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며, 머릿속에서 자꾸 떠올라 보고 싶고, 방금 전에 헤어졌어도 그리운 것. 많은 이는 이런 과정을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속기간은 보장할 수 없는 도박 같은 것.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함께 한 직후 다가오는 아픔은 그 어떤 만병통치약으로 쉽게 치유할 수 없는 과정.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에 환상을 같지만 반면 사랑이라는 것을 두려워도 한다.
비가 내리면 더욱 생각나는 사람. 빌리도 그랬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이내 헤어져야만 했던 그는 거리를 떠돌며 행인을 상대로 음악을 하는 가수다. 아직도 헤어진 여인을 마음속에 간직한 그는 오늘도 기타를 등에 매고 자신이 공연하던 그 장소에 머문다.
왠지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아침부터 내리는 비. 일진이 사나울 것 같다고 느끼는 빌리. 아니나 다를까. 예감은 적중하고 7년간이나 자신이 머무르던 그 장소에 처음 보는 아가씨가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쩜 이렇게 융통성이 없을 수 있는지. 애인하나 없이 고독을 일부러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잘해볼 것이지 주인공 ‘빌리’는 건반 치던 아가씨를 거칠게 쫒아낸다. “이 자리는 제가 공연하던 자리입니다. 비켜주세요. 다른 곳 찾아보세요”
| 사랑은 그렇게 다가왔다.
그녀 이름은 루아다. 빌리의 거친 행동에 내심 당황하지만 루아 또한 산전수전 다 겪은 몸. 그리고 무려 한 달간이나 그 장소를 눈여겨봤고 빌리와 함께 공연했던 ‘외다수’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도 받았다.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는 빌리. 루아를 무작정 거칠게 쏘아대는데, 황당하다고 느낄 만도 하다.
“이 자리 전세 내셨나요? 혹시 단속하러 나오셨나요?” 이 여자.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빌리와 루아의 첫 만남은 그렇게 ‘티격태격’으로 시작됐다. 줄다리기 하는 것도 아닌 두 사람. 금방 웃고 친해질 것이면서 왜 그렇게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렸는지. 좀체 사람 마음이란 알 수 없다.
비 오는 날 두 사람은 그렇게 운명처럼 만났다. 건반을 치던 루아와 기타를 치던 빌리. 두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며, 외로움을 느끼는 고독한 청춘이었고 꿈도 같다. 게다가 왠지 잘 어울릴 것만 같다. 음악을 좋아하는 선남선녀에다가 외골수 고집불통 성격 마지막으로 열정도 넘치니 안성맞춤 아닌가!
| 그 여자와 그 남자, 서로를 알게 되다.
초만 티격태격 자존심 싸움하던 두 사람 어느새 부터 신경전은 사그라지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은연중에 나온 음악 이야기. 아이돌 출신 루아는 빌리의 아이돌가수 비하 발언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출신은 애써 숨길 수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도 빌리의 잘난 척은 계속된다. 듣고 있자니 잘난 것도 없다.
이 와중에 두 사람을 이어주는 음악이라는 매개체. 즉흥연주에 흥얼거리는 빌리의 눈에 루아의 목소리가 자꾸 신경 쓰이고, 계속 듣다보니 그 여자 노래 좀 부른다. 그 여자 눈에 비친 그 남자 “작곡 꽤나 하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실력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함깨 연주 하기로 약속한다.
그 와중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남들은 비가 내리면 옛 사랑이 떠오르고, 슬퍼진다는 데 지금
두 사람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사랑의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지금 만큼은 사연 많은 옛 아픔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루아와 빌리는 그렇게 비 오는 날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음악을 향한 열정도 함께 키운다.
| 상식을 무너뜨린 후반 ‘하이라이트’
지난 2008년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이자 홍대 롤링스톤즈 클럽 초연 공연으로 세상에 알려진 뮤지컬 웨잇포유. 비 오는 날 음악처럼 가까워지는 루아와 빌리의 이야기는 스토리만 본다면 여느 사랑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스토리 라인 자체가 복선이나 반전 없는 순탄하게 흘러가는 구성을 하고 있기에 흥미 위주의 공연은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초연 당시부터 화제를 모은 것은 상식을 무너뜨린 파격적인 공연 구성 때문이다. 주최 측에서 알린 웨잇포유의 분류는 콘서트뮤지컬. 그냥 뮤지컬도 아닌 콘서트뮤지컬 이란다. 초연 공연이 시작된 장소 또한 인디밴드의 천국으로 알려진 홍대 롤링스톤즈 클럽. 왠지 범상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클럽에서 공연된 뮤지컬이라니 말 다했다.
초반부터 세게 나온다. 공연 감상에 앞서 관객에게 알려주는 주의 사항은 기대할 수 없다. 멀티맨과 두 명의 들러리가 분위기 몰이에 나서 공연 준비를 알린다. 곧이어 시작되는 힘찬 음악소리. 그렇게 90여 분간 뮤지컬도 콘서트도 아닌 콘서트뮤지컬 웨잇포유가 관객을 음악 속으로 빠뜨린다.
오죽하면 “저 사람들이 실제 가수인가 궁금할 정도로 노래를 부르라”고 주문했다는 김형은 연출의 후문이 뮤지컬 웨잇포유를 따라다니며 언론과 관련 기사를 장식하고 있겠는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면 당장 공연을 관람하기를 권한다.
주인공 빌리 역에는 ‘햄릿’, ‘남한산성’의 김수용과 ‘그리스’, ‘위대한 캣츠비’의 김경수가 캐스팅 됐으며, 지난 해 ‘웨잇포유’에 출연했던 유하나와 함께 SBS 슈퍼모델 출신의 배우 김수진이 여주인공 루아 역을 흥미 있게 그려낸다. 여기에 멀티맨 역으로 임기홍과 김대종이 일인 다역의 감초역할로 등장해 관객에게 웃음꽃을 선사한다.
| 관전 포인트. 음악에 몸을 맡겨라.
뮤지컬 웨잇포유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루아와 빌리 그리고 멀티맨이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치는 콘서트 무대이다. 기타를 들고 등장하는 빌리와 신디사이저를 들고 등장하는 루아 그리고 멜로디언을 가지고 흥미로운 연주를 펼치는 멀티맨은 웨잇포유 공연장을 콘서트 공연장으로 변신 시키는 마법을 펼친다.
그렇게 구현되는 음악만 ‘거리에서’, ‘그런 하루는’, ‘비오는 날의 커피’, ‘그대가 없는 하루는’, ‘처음만난 우리’, ‘그대의 거짓말’, ‘태엽시계’, ‘내 노래를 찾고 싶어’, ‘음악이 우리를 만나게 하나’, ‘네가 원하면’ 그리고 커튼콜을 장식하며 관객을 열정의 도가니로 빠뜨리는 ‘웨잇포유 인더 레인’ 까지 다양하다.
게다가 모든 공연이 배우와 연주를 맡은 롤리캣 밴드의 100% 라이브 연주라는 사실은 뮤지컬 웨잇포유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핵심 포인트다. 또 한 가지는 후반 공연에서 펼쳐지는 스탠딩 무대. 이 때만큼은 배우와 관객으로가 아닌 뮤지컬 웨잇포유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열정이 요구된다.
물론 배우가 들고 있던 마이크가 수시로 관객에게 전달되니 관람 전 소리 질러 목이라도 미리 가다듬어 놓는 센스가 필요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화려한 조명이나 특수 효과도 없고 화려한 무대 소품도 없는 작고 소박한 무대에서 완성된 음악이 만들어 내는 진한 감동. 뮤지컬 웨잇포유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박한 기쁨이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공연정보]
공연명 : 뮤지컬 [웨잇포유]
각색/연출 : 김형은
공연일시 : 2010년 5월 6일 ~ 6월 30일
공연장소 : 대학로 예술마당 4관
공연시간 : 평일 8시 / 토 4시, 7시 / 일 3시, 6시
출연 : 김수용, 김경수, 유하나, 김수진, 임기홍, 김대중
문의 : 클립서비스 02)501-7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