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억에서 날 지워도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추억을 기억할 수 있어서이고. 사랑이 아픈 것도 기억된 추억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기억이냐에 따라 한편으로는 행복일 수도. 혹은 반대로 불행일 수도 있다. 연극 배고파5에 등장하는 주인공 민영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너무도 행복한 캐릭터다.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도 행복하다고 믿는 주인공. 과연 주인공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 아닐까! 이 같은 의문을 남긴 연극은 병원이라는 배경을 설정하고 기억 때문에 아픈 이의 생채기 난 마음을 치료하고자 애쓴다.
어쩌면 아픈 기억일랑 모두 지워버리고 행복한 기억만 다시 만들어내라는 조언일지도 모른다. 이미 어긋난 과거에 연연하며 세월을 탓하지 말고 현명하게 대처하라고 말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아플 수 있지만 되돌리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느니 현재에 충실할 것! 연극을 보고 난 후 과거의 아픔 때문에 오랜 시간 슬퍼 지냈던 자신에게 부끄러워진다.
| 들이대는 간호사와 무덤덤한 의사 그리고 애절한 환자
주위를 맴돌다가 병원으로 들어오는 한 여자. 치료받으려고 온 건가 했으나 알고 보니 주인공과 연인 이라는 사연을 품고 있다. 과거 사랑했던 연인을 무대에 올려놓고 뭐하는 짓이냐고 할 정도로 당황스러운 설정. 분명 아플 텐데 라는 걱정에 안쓰럽다. 여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여자는 남자를 짝사랑한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 봉순이다.
구성해보면 일명 삼각관계. 드라마 속에서 늘 접했던 진부한 소재를 연극으로 재구성했는데 캐릭터 하나하나가 평범하지 않다. 병원에서 에로틱 분위기의 음악이 들리고 동시에 간호사 봉순은 끈나시 차림으로 민영을 꼬드긴다. 꽤나 화끈하게 연출된 장면임에도 민영의 반응이 영 좋지 않다.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이런 적극적인 캐릭터 괜찮은데.
과거 연인 관계로 등장하는 희선도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다. 사실상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연이 밝혀지는 순간 관객의 마음도 무너진다. 사랑했지만 헤어진 지 오랜 된 연인의 재회. 게다가 충격으로 남자는 기억을 잃고 여자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는 줄거리는 슬픈 것 이상의 끔찍함 그것이다. 만약 그 순간 남자의 기억이 남아 있다면 남자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또 다른 상상도 해본다.
아픔에 아픔. 연이은 아픔 속에서 사랑이라는 묘한 감정을 싹틔운다는 다소 억지에 가까운 진행이지만 흥미를 끄는 건 사실이다. 적어도 배고파5에서는 내용의 공감대 유무에 관계없이 독특한 개성을 지닌 하나하나의 캐릭터를 보는 재미 하나만으로도 흥겹다.
| 이미 지나간 과거 중요한 것은 지금
뒤죽박죽 모든 것이 복잡하게 엉켜 하나의 스토리로 탄생했지만 따지고 보면 시작은 민영과 희선의 불행한 사랑이다. 이 와중에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등장하는 간호사 봉순의 애절한 구애는 폭소를 터트리게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민영의 선택이다. 과거의 연인이냐 혹은 지금의 짝사랑이냐.
다만 행복이라는 단어를 제시하고 사랑이라는 카드를 꺼냈지만 아픔을 대적하기에는 부족하다. 개그우면 뺨치는 코믹 연기를 선보인 봉순의 개그조차도 희선의 아픈 사연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허나 결정적인 것 한 가지는 연극 배고파5는 멜로나 러브스토리가 아닌 코믹이라는 사실. 꽤나 심오하게 진행되는 줄거리 사이에서 순발력 있게 터져 나오는 캐릭터간의 신경전은 웃음 폭탄을 선사한다. 옛말에 울다가 웃으면 뭐 한다던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제법 부작용이 크지 않을까 우려된다.
| 배고픈 자에게 주는 처방전 ‘노력’
사랑을 꿈꾸는 이는 많지만 그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은 어렵다. 다수가 중도에서 포기하고 이 과정에서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는다. 사랑을 하는 과정도 밀당 이지만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 또한 주거니 받거니 다름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아프고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행복하다.
연극 배고파5는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을 두고 줄다리기 하는 연인을 타깃으로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에 충실 하라는 조언이다. 무슨 이런 연극이 다 있냐고 말을 할 정도의 명쾌한 해답은 다소 부작용도 우려되지만 애매한 것보다는 이런 구성이 더욱 설득력 있다. 민영과 봉순의 러브스토리를 구상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다만 희선의 구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타깝다. 시한부도 안타가운데 마지막에는 그토록 되찾고자 했던 사랑마저 실패했으니 보는 이의 마음에는 씁쓸함만 남는다. 그래서 따져보면 후회할 짓 하지 말라는 의미다. 따뜻하게 감싸주기는커녕 시한부에 치매라는 최악의 구도를 두고 난도질 해버린 거친 작품이 주는 묘미. 게다가 이 작품이 코믹이라는 사실인데도 그렇다는 것.
처음에는 웃고 중간에서는 마음을 울리고 후반에 들어서 다시 웃기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관객은 현실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잘했으나 멀어졌다면 연연할 것 없다. 그건 인연이 아닌 것일 테니까!
아무리 징징 짜고 애걸복걸해도 운명의 상대가 아니라면 아닌 거다. 시한부 인생도 쟁취하지 못한 사랑은 결국 극진한 간호사 봉순에게 돌아갔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사랑도 노력 앞에서는 무릎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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