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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먼인블랙 :: 치명적인 모성애가 촉발한 비극적 공포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2. 6. 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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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먼인블랙 리뷰 :: 치명적인 모성애가 촉발한 비극적 공포
- 글·사진: 김현동(cinetique@naver.com)
 
“공연작의 대다수는 사랑이야기 일색이다. 매달 14일의 국적 불명 day 시리즈를 기해 일제히 등장하던 만국불변의 소재인 사랑을 뒤로하고 공포가 다뤄졌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를 모았던 작품. 게다가 우먼인 블랙은 연극 이전에 소설과 영화로도 익히 알려져 유명세를 타지 않았던가.

주된 골자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공포지만 이보다 드러낼 듯 감춰버린 극중 숨은 사연을 찾아내는 묘미도 있다. 물론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15년 간 5,000회 이상 공연된 ‘우먼 인 블랙’(수잔 힐 작ㆍ와이킷 탕 연출)의 한국판 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인사이드=공연] 일본 영화 주온, 사다코 고전의 명작으로 불리는 전설의 고향까지 공포영화 하면 손꼽히는 작품의 공통점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딱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에도 체감하는 공포는 상상하는 것 이상의 충격으로 기억된다. 실체를 보이지 않는 그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두려움을 교묘하게 자극해 극대화 시키는 것. 바로 실체 없는 공포가 몸서리를 치게 하는 기본 형태다.

연극 우먼인블랙은 이점에서 제대로 된 내면의 공포를 안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공연장도 지하2층에 자리했다. 발길이 닫는 곳 마다 삐거덕 거리는 객석은 지나가는 관객의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 바람만 불어도 삐거덕 거리는 고택의 그 것을 연상시킨다. 관객이 자리한 이곳은 분명 공연장이 분명하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공포영화속의 한 장면과 다를 게 없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무겁게 짓누르는 공포. 괜스레 어께가 무겁다.



| 사랑 없는 공포? 사랑 때문에 시작된 공포


시작부터 너무 긴장한 탓인지 어디부터가 시작인지도 애매하다. 따저보면 딱히 시작이라 할 것도 없다. 조명이 잠시 어두워지나 싶더니 등장하는 한 남자가 객석의 또 다른 남자를 상대로 손짓을 한다. 여느 작품에서도 봐왔음직한 익숙한 장면이거니 주변의 관객 또한 이벤트라 여기고 반응한다. 잠시 후 그 것도 극의 일부라는 것을 아는 순간 관객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랬다. 극은 관객이 공연장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연극 우먼인블랙의 공포는 그렇게 소리 없이 다가 왔다.

공포의 시작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인해 공포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가능한 것일까 의문이 남는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궁금증에 눈과 귀는 더욱 예민해진다.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더구나 사랑으로 인해 발생된 공포라고 하니 초반 작품에 대한 이해를 구하긴 쉽지 않다. 게다가 수년간 악몽에 시달린 남자는 자신 하나 편하자고 지난 과거사 한 방에 털어놔 버리니 그 기분 시원하겠다만 보는 관객은 덕분에 악몽에 시달리게 생겼다. 

때문에 연극 우먼인블랙 관람에 임하는 자세는 일단 의문을 버릴 것. 작품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 말 것. 객석에 들어오는 순간 진정한 공포는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 정신없다. 비명소리에 인형까지

공포영화 하면 떠오르던 고루한 장면이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스쳐지나간다. 배우라곤 달랑 두 명이 전부인 2인극 구성임에도 구현되는 캐릭터는 손꼽아도 부족할 정도로 다양하다. 심지어 극중 등장하는 애완견 역할도 직접 표현하는 친절함까지 지나치다 못해 폭소를 자아낸다. 비명을 지르다가 순간 터트리는 웃음. 관객의 묘한 분위기 누군가의 정리가 필요하다.

무대 위 소품도 성격이 고정되지 않았다. 서류함이던 박스가 어느새 기차가 되고 다시 차량으로 그리고 마차로도 사용된다. 좁은 공연장에서 이보다 효과적인 활용은 없다. 하지만 재활용의 절정은 무대 뒤 소품에 숨겨져 있다.

긴 천막. 한동안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공포는 무대 뒤 천막에서부터 시작한다.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삐거덕 거리는 계단소리가 울려퍼지며 주위가 어두워지는 밤이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바닥을 쓸고 다니는 소리가 잔잔하게 깔린다. 때마침 조명은 깜박 거리고 실체 없는 공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불이 꺼지는 순간 잠깐 모습을 보이는 흰색 형체. 피부가 다 벗겨져 흉직한 공포의 주인공이 순간 관객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것도 잠깐. 그 순간 혼비백산한 객석. 그대로 굳어버린 듯 누구 하나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상상력에 극중 배우의 내면 연기가 빛을 발한다. 여기에 연출자의 의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순간이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가 조여 오는 숨 막히는 두려움이 무대 위 배우를 통해 객석의 관객으로 전해지는 과정은 소름끼칠 정도로 불편하다. 한 여름 무더위를 날리고 싶은 공포작품을 찾았다면 연극 우먼인 블랙만한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작품 우리가 익히 봐왔던 공포와는 격이 다른 공포를 선사한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표출되는 라이브 공연이 아니던가!

| 어색한 연기가 더하는 감칠맛.

그래서일까. 어색하도록 연출된 연기는 안중에도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대 위에서 관객으로 엄습한 공포로부터의 탈출이다. 시작부터 잠겨 있던 문은 어느 사이에 열리고 그 뒤로 희뿌연 조명이 소품을 드리운다. 벽에 걸린 오래된 그림의 여자는 쳐다만 봐도 닭살을 돋게 만들고 침대 위 인형은 꿈에 나올까 걱정될 정도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흔들의자 위에 있던 인형의 돌발 행동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에 관객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쯤되면 담력이 센 건장한 사내라도 오금이 저릴만 하다.

여간한 배포가 있다 치더라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 공포의 난이도를 매겨야 한다면 중상급 이상이다. 관객의 웃음소리는 언제부터인가 긴장감으로 바뀌었고 스모그가 무대를 가득매울 때쯤에는 숨소리까지 낮추며 집중한다. 뭔지 모를 불편한 기분에 거부감이 들지만 그럴수록 호기심에 빠져들게 하는 작품의 묘한 흡입력. 빠른 장면 전환도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 공포라고 구태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십중팔구 공포의 명작에만 있는 공식을 갖추고 있다.

| 시작부터 끝까지 타이트한 시나리오 

알아둬야 할 것은 제목에 담겨 있다. 우먼인블랙. 어둠속에 가려진 여인은 소리 없이 등장하고 모습을 보이고 사라진다. 아주 짧은 찰나의 등장에도 관중을 압도한다. 게다가 극중 여인의 한이 알려지는 순간 그 또한 시작은 모성애라는 안쓰러운 마음이 관객의 마음을 짓누른다. 안 그래도 공포에 숨죽이고 있는 관객은 더욱 움츠러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허공에서 시작된 공포의 역습. 딱히 실체는 없지만 연극 우먼인 블랙은 시작부터 끝까지 공포가 전부다. 구태여 설명하자면 차용 가능한 단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모성에, 지나친 사랑,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작품을 이어 나가기 위한 일련의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공포는 배우들이 어찌하나 보자~ 하며 지켜보던 관객 스스로가 만든 형상에 불과하다.

극이 끝나는 마지막 까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여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잠깐 소리 없이 등장해 관객의 뇌리에 강한 인상만 심어준다. 하지만 그 또한 스쳐지나간 것임에 내용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현대인을 쥐락펴락 하며 긴장시키는 작품. 시작은 분위기였지만 마지막은 모성애 이었다는 비극적 사랑. 그리고 여성과 아이는 모두가 죽어나간다는 비극적 내용. 각오를 했더라도 마음 단단히 붙잡아 매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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