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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장인, 한종민 캔스톤어쿠스틱스 대표 “음질도, 고객도 귀담은 게 성공 비결”

IT/과학/인터뷰/칼럼

by 위클리포스트 2016. 8. 2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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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기획 인터뷰 ]
“음질도, 고객도 귀담은 게 성공 비결”
스피커 장인 ‘캔스톤 어쿠스틱스(Canston Acoustics)’한종민 대표





- 소리가 남다른 스피커 전문기업 캔스톤
- 20년 업력으로 스피커 만지는 스피커 장인 한종민 대표
- 열정과 경험으로 세운 캔스톤의 성공 신화 공개

글·사진 : 조수현 기자(suhyeoni@gmail.com) · 김현동(cinetique@naver.com)




[2016년 08월 21일] -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가 입추를 지나면서 한풀 기세가 꺾이던 무렵, 스피커 한종민 캔스톤어쿠스틱스(이하 캔스톤) 대표를 만났다. 그와는 두 번째 만남이며 첫 만남 때처럼 비가 내렸다. 비를 음악 삼아 걷다 용산의 먹자골목 길에 다다랐다. 탈(脫) 용산 바람으로 몰라보게 한적해진 거리가 먼저 눈에 띄었다. 마치 토종 기업의 몰락으로 제조 기반마저 무너진 PC 업계의 현실처럼 분위기가 어둑했다.

한때 IT의 메카였던 용산의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의 한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한 대표의 모습은 예전과 같았다. 순간 인터뷰임에도 아무런 꾸밈없는 모습에서 억척같이 고객과 일일이 소통하던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일도 진심으로 대하던 그이기에 단기간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결과는 역시나. 캔스톤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주목받더니 오늘날 스피커 제품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안착했다.

다시 만남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캔스톤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성장 동력에 대해 듣고 싶어서다. 물론 캔스톤의 핵심에는 한종민 대표가 있으며, 이미 20년이 넘은 오랫동안 스피커 외길만 달려온 전문가라는 사실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더구나 캔스톤이 2016년에 내놓은 2채널 블루투스 제품군도 연이어 히트를 했고 올 하반기에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출시도 예고된 상태였다.


# 90년도 저가와 고가로 양극화된 스피커 시장
수많은 브랜드의 경쟁으로 가장 호황이던 시기
한 대표의 내공은 이 당시의 경험으로 완성되다.



한종민 대표의 스피커 외길 인생을 설명하자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스피커라는 아이템의 유통에 몸담고 있던 그에게는 남다른 눈썰미가 있었다고. 쉽게 말해 제품을 유통하면서 시장에서 오랫동안 제품을 가까이 접하며 시장의 흐름을 읽는 동물적인 감각을 터득한 것. 그렇다 보니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기획하고 제품을 판매할 때 갖춰야 하는 능력을 습득한 한 대표를 찾는 곳이 많아진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었다.

가는 곳마다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히트 상품을 제조하며 업계의 주목받은 한 대표는 이전까지는 완성품을 수입, 유통한 경험만 있다 보니 자체 상표 개발에 난항을 겪던 N 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나서게 됐다. 이 와중에 중국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과거 자신과 총판 관계였다는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감한 행보와 달리 결정을 오랫동안 망설였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분과의 인간관계와 믿음 그리고 신뢰를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판단했죠. 과거 저와 거래하던 거래처의 사장님과 연관된 공장이다. 그 즉시 찾아가서 자초 지경을 털어놓고 거래해도 되는지 정중하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제품도 좋지만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하는 한 대표.

그렇게 돌아온 답변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내키지 않았을 텐데 길을 터주더라”라고 답변을 해주신 것. 오히려 당시 거래처 사장은 해당 공장에 직접 전화를 걸어 소개까지 해줬고 덕분에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빠르고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 당시 한 대표가 준비해 정식 발매한 제품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장에서 스테디셀러가 되어 판매되고 있다. 이처럼 우연한 기회에 유통에서 브랜딩 론칭으로 전환기를 맞은 한종민 대표의 인생 역전극은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당시 몸담은 기업에서 브랜드 론칭을 주도하며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한종민 대표는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결정 내리고 2010년 돌연 퇴사를 결심 업계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 모두가 인정하던 스피커 전문가 한종민의 전략
이후 1년 뒤, 사업가 한종민은 ‘캔스톤 론칭’ 카드를 들고 복귀
개발부터 유통, 고객 응대까지 캔스톤에 올인



그라면 2000년대 PC 스피커 시장을 기억할 것 같았다. 당시의 스피커 시장에 관해 물어봤다. 잠시 고민하다 한 대표가 운을 뗐다. “한 우물을 파라는 게 무서운 예기더라. 되돌아보니 20년이 지났더라.” 한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90년대 말 PC 스피커 시장은 저가와 고가로 양극화돼 있었다. 익히 들었음 직한 외산 브랜드 틈에 순수 토종 브랜드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시장에서 ‘멀티미디어’가 신조어로서 퍼지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변화가 감지됐다.

스피커의 패러다임도 2채널에 우퍼가 추가된 2.1채널, 입체 음향을 구현한 5.1채널, 즉 ‘서라운드’까지 다양한 장르가 속속 추가되면서 시장도 활개를 띠기 시작한 것. 하지만 예상대로 초기 시장의 문턱은 높았다. “2.1채널 스피커만 하더라도 최소 8만 원대였다”고. 때마침 저가와 고가로 양분된 시장의 틈새를 노린 3~4만 원대 2.1채널 스피커의 등장은 시장 판도를 바꿔놨고 쇼핑정보 사이트 ‘다나와’가 온라인 문호까지 개방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동시에 호황기를 누렸다고.


“내가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성되고 나니 쉬고 싶었어요.” 라는 마음에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한종민 대표가 다시 업계에 모습을 보인 것은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다. 이번에는 사업가 한종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업계에 복귀를 알린 것이 차이점이랄까!

그렇게 시작된 된 캔스톤의 정식 출범은 스피커 분야에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물론 한종민 대표 또한 무려 20여년에 달하는 오랫동안 소리를 출력하는 장비. 즉 스피커라는 단일 종목 하나로 잔뼈가 굵으며 오늘날 스피커 장인이라는 타이틀을 확보했다.


#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캔스톤 한종민 대표
고객의 불편이라면 거리 마다하고 달려가 해결
맨손으로 이룩한 1위 달성으로 가능성 타진



원래부터 해오던 스피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복귀를 준비한 한 대표. 그 당시 한 대표의 수중에 있던 돈은 자본은 8,000만 원에 불과했다. 회사를 설립하고 이 돈으로 금형, 회로 설계 등 약 1년여의 준비를 거쳐 2011년 9월 ‘캔스톤’이란 이름으로 ‘LX-350’을 첫 선보였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쇼핑정보 사이트 다나와 입정 당시 스피커/헤드셋 카테고리의 제품 수만 1,600개였다. 족히 100페이지는 넘기면 그제야 LX-350이 보였다. 광고나 판촉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남은 돈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물류도, 고객 대응도 온전히 한 대표 혼자만의 몫이었다. 몸이 둘이었으면 했다. 9시에 출근하면 자정에서야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몸이 고됐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한종민 대표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객과의 소통에 진심을 담는 것뿐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나와 댓글 이벤트에 달린 1,000개의 댓글마다 인사를 남겼다. 다 다르게 일일이 직접 타이핑했다. 전화 응대도 남달랐다. 발표 때 쓰려 구매했는데 소리가 안 난다는 항의에 그는 직접 새 제품을 들고 고객에게 달려갔다.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러한 모습이 온라인을 통해 입소문을 탔고 한번 캔스톤의 제품을 구매한 사용자는 진실한 캔스톤의 고객 응대에 다시 찾는 움직임이 반복됐다. 지금도 한 대표가 마음에 간직하고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문구가 있다. 바로 “캔스톤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댓글이다.

한종민 대표의 노력이 댓글로 위안이 되었고, 그 일이 정확히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캔스톤의 첫 1호 스피커 제품인 LX-350가 다나와 스피커 분야에서 1위를 기록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광고나 판촉행사 하나 없이 오직 입소문만으로 이뤄낸 결과였기에 더욱 감격스러웠다.

고객대응만이 전부는 아니다. 스피커의 기본은 ‘음질’이 아닌가. 음질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터. LX-350 개발 당시 한 대표는 중국을 수시로 오가며 튜닝에 매진했다. 비슷한 가격대 경쟁 제품을 교차로 들으며 튜닝하기를 계속했다. 여기서는 총판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청음 하러 매장을 찾은 이들과 얘기하며 시중에 유통되는 거의 모든 스피커의 소리를 들은 그이기에 고객이 어떤 소리에 구매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 무렵 캔스톤은 천군만마와 같은 든든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더욱 탄력을 받는다. 바로 알텍랜싱, 로지텍, JBL, 하만카든, 샤오미 등의 OEM 제조사인 펜다(Fenda)의 손을 잡게 된 것. 한국의 공식 파트너 관계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캔스톤은 F&D의 2.1채널 스피커 A320, 2채널 스피커 R224와 R218을 개발해 내놨고 한국 시장에 연달아 안착시키는 데 성공한다.

지금도 캔스톤의 대표 모델은 시장에서 판매가 진행되고 있다. 당장 판매를 염두에 둔 제품 개발이 아닌 평생 사용할 제품을 만든 캔스톤의 철학이 제품에 녹아들어 꾸준한 인기를 누리게 된 계기로 발전한 것.

신생 업체, 그것도 첫 제품이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는 이변을 일으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소리에 대한 열정과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였기에 가능했으리라. 끝으로 앞으로의 포부를 물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어쨌든 스피커는 ‘소리’다. 음질을 갖추지 않은 스피커는 그때뿐이다. 캔스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음질을 고집한다면 2채널이든, 블루투스든 어느 시장에서든 우리가 그 중심에 설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 미니 인터뷰 ]

Q. 좋은 소리란 어떤 소리인가?


A. 누구나 하는 게 스피커고, 누구나 할 수 없는 게 스피커라는 말이 있다. 소리는 감각의 영역이다. 소리의 질감에 따라 좋고 나쁨을 따진다. 누구나 뛰어들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영역이 스피커다. 셀 수 없이 많은 식당이 있지만, 맛집은 정해져 있다. 맛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고객의 입맛 또한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뀐다. 그 입맛을 찾았을 때 비로소 맛집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소리도 그와 같다. 끊임없이 소비자가 원하는 소리를 찾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Q.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궁금하다.

A. 그 과정을 ‘튜닝’이라고 한다. 스피커의 소리는 튜닝에 달려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웅장한 저음, 귀를 찌르는 고음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밸런스’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피커는 크게 공명판과 자석, 코일로 구성돼 소리를 내는 유닛, 외관에 해당하는 인클로저, 전기회로의 영역인 네트워크로 나뉜다. 튜닝은 주로 유닛과 인클로저로 인한 용적, 이 둘을 적절히 배합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수십, 수백 개의 조합을 통해 최고의 소리를 찾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Q. 소리도 소리지만 고객 응대로 ‘캔스톤’이란 이름을 알렸다. 초심을 지키기 어렵지 않은가?

A. 늘 고민이다. 언제까지 대표가 서비스에 매달릴 수 없었다. 일산의 AS센터 직원 채용에서 딱 한마디만 했다. 목숨 걸고 서비스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황하더라. 그러겠다는 말에 채용했다. 한동안은 옆에서 전화 응대 등을 듣고 바꿔야 할 점들을 이야기해줬다. 이제는 그도 캔스톤의 AS 철학을 몸소 실천하더라. 특별한 것은 없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전원 버튼을 못 찾겠다는 문의에 매뉴얼에 있다고 답할 수도 있다. 우리는 “매뉴얼에 좀 더 크게 표시를 하지 않았네요. 죄송합니다. 불편하셨죠”라고 응대한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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