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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팝콘, 책임 없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다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1. 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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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이기적인 속물근성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사이코패스를 통해 현대사회를 진단한 문제의 작품.

검은 욕망이 지배하고 부패와 돈에 사로잡힌 현실을 비꼬는 잔인한 작품이다.

여성을 성적인 가치관에 두고 평가하고, 내뱉는 말투는 음탕하며 비하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매스미디어가 자극적인 소재에 목말라 갈구하는 탐욕을 지적하는 데 그 모습은 영락없이 현실 세계와 너무도 흡사하다.

변화에 무뎌진 대중은 현실과 이상을 구분 못하는 바보로 표현된다. 여과 없이 전달되는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 되면서 오염되고 있다는 표현으로 마무리된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죽음이 미화되고 각종 살인사건을 쾌감으로 표현하는 연극 팝콘. 작품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을 쫒는 것에서 시작한다.

날마다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통해 양산되는 피해자와 달리 가해자는 없는 현실. 내가 잘못된 것은 바로 당신 탓이지만, 당신이란 자의 핑계는 또 다른 이의 잘못에 기인하는 부정확한 시대. 모든 것이 하나의 사슬에 연결 돼 있지만 결국 모든 원인은 내가 아닌 남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에 근거하기에 해결책 또한 묘연하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막힘없이 순환하고 있지만 사실은 어디서부터 한없이 정체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사실이 팝콘에서는 모두에게 쾌감을 자극하는 소재다. 마치 웅덩이에 고인 물은 결국 썩는 다는 사실을 연극은 제대로 미화하고 있다.


| 흥미로운 100분토론, 말 되는 이야기지만 기가 차네.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영화감독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브루스 ‘델라미트리’는 대중에게 사디스트라는 평가를 받는다. 잔혹한 폭력성과 변태 성욕자가 등장하는 잔혹한 작품을 위주로 제작하는 그에게 대중은 오스카상을 선사했다. 한 편으론 손가락질 하지만 부와 명예라는 두 가지 이득을 안겨주면서 자극적인 소재의 공급을 끊임없이 재촉하는 형상이다.


이 와중에 쇼핑몰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두 명의 살인범에 세상은 공포에 떨지만 대중은 내 일이 아니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문제의 감독이 연쇄살인범 웨인, 스카웃과 마주하게 된다.

오스카상을 수상하던 사건 당일 밤이다. 방황하던 두 살인마는 자신들이 동경하던 영화의 감독 집에서 짜릿한 하룻밤을 보내고 부르스 델라미트리의 달콤한 쾌락 추구 현장을 급습한다.

여과 없는 표현과 노골적인 표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수치심이 들 정도다. 사람을 죽이고 튀는 피를 보면 쾌감을 얻는 다는 변태적인 성적 취향은 영략 없이 성인물이다. 짜릿한 쾌감이라 설명하기에는 뭔가 묘한 여운이 있다. 죽고 죽이는 과정에서 기다림 따윈 없다.

잔혹한 킬러의 신속한 판단에 관객도 혀를 두른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관감한 결단에 죽어나가는 사람들. 칼 브레즈너는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순간 관객도 숨죽인 듯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브룩 데니엘스는 영웅이 되고픈 행동에 팔에 총을 맞고 신음한다. 연쇄 살인범인 웨인 헛슨은 이것 또한 좋은 눈요깃감이라며 펼쳐놓는다.

죽음 앞에서 살기를 갈구하는 다친 자의 신음이 동시에 펼쳐진다. 이곳에 전쟁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와중에 연쇄 살인범은 뜻밖의 제의를 한다. 자신들의 살인 행각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영화감독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물론 대가는 있다. 한 명의 희생으로 온 세상은 명분을 얻고 남은 가족은 죽음을 회피할 수 있다는 그럴싸한 조건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오스카상 수상의 감독이 이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협상이 이뤄질 리가 없다. 치밀한 각본과 이 과정을 한 편의 쇼로 치장해 생중계 하겠다는 계획에 혀를 내두르게 하는 살인범의 꼼수. 통하지 않았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주인공 브루스 델라미트리는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시청률 배팅을 시작한다. 과연 그 들은 살아서 참담한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 외설적이며 음탕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 이야기

20세 이상의 관람가라니. 좀처럼 보기 드문 연극계에서 뚜렷한 기준을 제시했으니 야릇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얼마나 수위가 높기에 성인만 관람할 수 있단 말인가! 별의별 생각에 20세 이상의 관람가라는 이유를 알게 하는 대목은 초반부터 뚜렷하게 목격된다.

외설에 가까운 대사에 보는 이를 수줍게 하는 묘사 행위는 제법 수위가 높다. 거친 숨소리하며 농고 있는 키스신은 여느 작품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다. 분명 외설적이거나 폭력적 혹은 논란의 소재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외설적이거나 농염하다는 표현이 따라 붙지 않는 것은 작품을 설명할 때 이 장명인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숨기고픈 치부를 들추는 예리한 칼날을 지니고 있다. 내 뱉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한편으론 음탕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늘 마주쳤던 모습들이다.

표현 자체만을 본다면 분명 남세스러운 모습이며 일부 관객은 얼굴을 붉히며 눈을 감기도 한다. 파격적인 소재에 신경을 거스르는 거친 단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진지하다. 속옷만 입고 들어오라는 제의에 실제 배우는 속만 입고 들어온다. 겉으로 봐도 몸의 선의 다 드러나는 데 아랑곳 않는다. 연극 팝콘은 그렇게 충격과 파격적으로 기억됐다.

|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세상. 그대는 죄인인가?

초연임에도 탄탄한 기량을 선보인 연극 ‘팝콘’은 한국에서만 초연일 분 영국을 포함해 미국, 호주, 독일, 프랑스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영국 벤 엘튼의 동명소설 ‘팝콘’을 연극화한 것으로, 1998년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 베스트 코미디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점점 더 자극적이고 교묘하게 대중의 심리를 현혹하는 매스미디어와 아무 자각 없이 정신을 잠식당하는 현대인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져 생각하게 만든다. 피 튀기고 유혈이 낭자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입 안에 팝콘을 움켜 넣는 대중들에게는 경각심을 일깨우고, 매스미디어에게는 그 막대한 영향력에 관해 책임을 묻는다.

병든 사회는 누구의 책임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이 사회가 치유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모두가 피의자이며 모두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 변해야 달라질 수 있는 사회. 결국 작품도 모두의 선택에 해결의 키를 맡기며 막을 내린다.
결말이 비극적이라면 모두의 선택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초연 공연은 극단 신기루만화경과 김승철 연출로 이뤄졌으며, 칼 브레즈너 역에 성노진, 브루스 델라미트리 역에 이호원, 웨인 헛슨 역에 전익수, 스카웃 역에 박성연, 브룩 다니엘스에 이강, 파라 역에 이명옥, 벨벳 역에 유진주 그리고 커스틴역에 오민정, 빌 역에 황도연이 함께 했다.

매스미디어에 길들여서 평생 텔레비전만 봐도 멋드러진 개소리를 씨부렁거릴 수 있는 사회에 사는 현대인. 극중 대사는 이 모든 것의 현상을 통찰력 있게 지적한다. 여과 없는 표현에 뜨끔한 관객의 양심은 극이 후반으로 전개될수록 더욱 화끈거린다. 그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에서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 대답은 연극 팝콘에서 찾을 수 있다.

충격과 파격적인 연극 팝콘은 오는 11월 4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필링 2관(구 이다2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공연문의 : 이다엔터테인먼트 (02-762-0010)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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