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스캐너를 버리라굽쇼?
흔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오래된 것을 버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란게 잘난 사람들의 똑똑한 구절처럼 되는게 아니지 않던가! 구태여 낡은 것을 없애 버리려 애쓰지 않더라도 어차피 버려야 하는 것들이 수시로 쏟아져 나온다. 낡아서 못 쓰게 되는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버리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 돌아보게 된다. 멀쩡한 것을 버려야 한다는 죄책감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억울하다. 버리게 되는 것이 순전히 내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면 주인의 뜻과 다르게 버려야 하는 것이 많다. 자주 입어 해지고 낡아 버리게 되는 옷이나 닳아져서 한계치를 넘어버린 자동차 타이어, 뒷 굽만 없어져 주인을 몹시도 괴롭히는 신발등 삶 속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잊으려 하면 그 모습 슬그머니 드러낸다. 하지만 그 수명 다할때까지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최첨단 전자기술의 총아라 일컫는 IT 장비들이다.
_지원이 끊겨 더는 그 생명 다하는 날 까지 사용할 수 없게 된 스캐너. 그렇다고 OS를 낮출 수는 없는 일. 이래저래 버려야 할 숙명을 타고난 제품이다. 몇 년은 더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쌩쌩한 제품인데.
# 난 계속 사용하고 싶다. 지원 해주면 안되겠니?
윈도우7 운영체제를 설치하면서 부터 사용할 수 없게 된 품목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새술에는 새부대라고 했던가. 그 속담이 이렇게 쓰일줄을 상상도 못했는데 새로운 OS의 설치와 함께 과거 유물처럼 퇴물로 낙인찍히는 품목들이 책상위 자리만 차지하고 흉물처럼 쌓였다. 때마침 노동부에 제출할 서류를 정리하는데 스캐너가 내 심기를 건드린다. 별수를 다 써도 인식되지 않는 스캐너. 나름 고해상도의 최신 제품이라고 자신했는데 이렇게 인식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니 '너도 별수없구나' 하는 비아냥 거린 속내만 터져나온다.
HP 스캔젯 3770. 몇번 스캔을 하지도 않은 스캐너 이기에 깨끗하고 흠집하나 없다. 구형 필름롤 스캔시 사용 가능한 어댑터도 제공하기에 끝까지 사용할 수 있겠지 라고 여겼지만 아뿔싸~ 나만의 착각이었다. 윈도우비스타 이후로 드라이버 지원이 끊기면서 사용할 방법이 요원해진 셈이다.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책상위에서 언젠가를 사용할 날이 도래할 것이다! 라는 허울좋은 이유로 자리만 떡 하니 차지하던 이 녀석! 지금은 버려야 할지 고민 대상목록 1호에 이름을 올렸다.
어떻게라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HP 홈페이지 내 드라이버 카테고리를 뒤지고 몇 번을 다시 뒤져보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윈도우비스타 외에는 사용할 방법이 없으니 포기하세요. 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진정 널 버릴때가 된 것이란 말인가? 아니 아직도 겉은 흠집 하나 없이 쌩쌩한데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한 자원낭비인 것만 같다.
# '새살림' 때문에 '헌살림' 을 버릴 순 없지
다나와 중고장터를 뒤져보고 가격비교를 통해 최신 스캐너도 찾아보고. 오히려 복합기를 사는 것이 더 싸다고 판단되던 그 순간. 다시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검색을 시작했다. 나 같은 서민의 형편에 누구에게는 비록 10만원 안팍의 복합기에 불과하겠지만 적잖은 부담이기에 그 또한 적절한 대안은 아니다. 막말로 HP에서 드라이버 지원만 해줬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던가!
이렇게 고민을 하다 보면. 아니 OS를 다시 설치해보면 씁쓸한 고민이 금방이라도 화색으로 돌아가 내게 기쁨을 안겨줄 순간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그 고민이 한달 뒤가 될지 아니 1년 뒤가 될지라도 그래서 나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하는 스캐너로 돌면해 다시 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애장품이 될 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직 램프 조차도 쌩쌩한데 버려야 한다니.
한대 구입할까? 아니야 스캔한 장 하려고 다시 사는 건 낭비잖아. 그렇다고 스캔하려고 스캐너 찾아 방방곳곳 돌아다니는 것은 차마 쥐꼬리만한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치고 한대 구입해라는 악마의 유혹을 애써 뿌리치고 있지만 이렇게 된 것은 다 HP의 지원이 지속되지 않았기에 발생한 것임을 HP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야속한 HP 그래도 오랜시간 언론과 기업으로 원수지간이던 내게 퇴직 선물로 전달 된 노트북은 참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