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 곧 태어난 막내아들 까지 합하면 총 4명의 가족을 뒤로 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집을 떠나는 안중근. 그가 남긴 한 마디는 “곧 돌아올게” 하지만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눈을 감은 뒤에도 여전히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가족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안중근의 내적 갈등이 뮤지컬 장부가를 통해 표면으로 부각됐다. 집을 떠나는 한 장면에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심경이 묘사된다. 아내 김아려 표정과 행동에도 지아비를 향해 절을 하지만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더 큰일을 하러 나서는 남편이 무사히 뜻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 게다가 곧 태어날 막내아들 김준생에 대한 걱정까지 여실히 드러난다.
보는 이 마저도 다양한 만감이 교차하는데 100년 전 당시 가족은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영웅으로 칭송되어 단지 영웅으로만 알려졌던 장군 안중근. 그를 소재로 다룬 콘텐츠는 드라마를 시작으로 뮤지컬과 연극 그리고 만화까지 다양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영웅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우리가 아는 안중근은 한 가정의 아버지가 아닌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던 대한의병 참모총장일 뿐이다.
그렇게 100년이 지난 2010년에 접어들어선 지금 안중근이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인간 안중근에 대한 고뇌와 민족의 영웅이며 동시에 아버지였던 그가 가족과 조국을 사이에 두고 겪어야만 했던 혼란과 표현하지 못했던 슬픔 그리고 선택하기 까지 겪어야 했던 결코 녹록하지 않은 고민이 연극 무대 위 소재로 다뤄진 것.
한 편의 연극과 한 편의 뮤지컬을 통해 많은 이의 시선을 집중시킨 인간 안중근을 다룬 공연의 시작은 연극 ‘나는 너다’로 알려졌다. 안중근의 막내아들인 안중생의 시점에서 다뤄진 공연은 약 한 달간의 공연을 끝으로 지난 8월 막을 내렸으며, 뒤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뮤지컬 장부가는 가족의 시점에서 다뤄졌다. 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인간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가 뮤지컬로 각색되어 그려지는 장부가는 오는 10월 3일까지 공연된다.
익숙했던 영웅 안중근의 일대기가 아닌 인간 안중근의 고뇌와 심리를 다룬 뮤지컬로, 가족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했던 아버지 안중근과 아내의 입장에서 섬겨야 했던 지아비 안중근. 마지막으로 국가적인 영웅이 아닌 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안중근이 국가와 가정 둘 모두를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갈등이 적절히 섞여있다.
집을 떠나기 직전을 시작으로 민족의 암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후 까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주변 사람이 겪어야 할 갖은 고초 그리고 자신이 일로 인해 떠나게 될 경우 이후 빈자리로 인해 남은 이가 감당해야 할 시련.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하며 인간 안중근은 복잡한 심리를 드러낸다.
영웅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던 안중근. 익히 들어 익숙한 안중근의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다른 시각에서 묘사된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 연극 ‘나는 너다’를 통해 앞서 다뤄졌음 에도 뮤지컬 장부가를 통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해지는 것은 바로 인간 안중근의 시점에서 안중근의 심리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 아리랑 속에 녹은 뜨거운 민족애
뮤지컬 장부가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백미는 공연 내내 귓가를 맴도는 뮤지컬 장부가의 주제곡인 장부가 음악이다. 전통 민요 아리랑을 4/4박자 편곡한 곡이지만 한국인의 영혼이 담긴 아리랑에 대한독립을 위해 애쓰다 순국한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기 위한 뜻이 담겨서인지 느낌은 물론 감동까지 흔치 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중반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부각되며, 연극 중반에는 아리랑 민요를 시작으로 관람객을 상대로 교육하는 별도의 시간까지 마련되는 뮤지컬 장부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꼽힌다.
장부로 태어나 그 뜻이 크도다.
기개를 펼쳐라 큰 뜻을 이루리라
만세를 불러라 대한의 동포여
힘차게 모두 불러라 대한독립만만세
<뮤지컬 장부가> 가사 中
무대 구성 또한 지극히 실험적이다. 무대를 가운데 두고 객석이 양쪽에서 마주보는 형태로 기존 공연이 단면 형태라면 뮤지컬 장부가는 입체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물론 일장일단은 있다. 프로젝션 형태로 빔을 투사할 수 없기에 화려한 효과나 무대 배열을 바꾸는 등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에 뮤지컬 장부가는 무대 벽면을 하단과 상단으로 나누었으며, 문을 부착해 노출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인간 안중근을 다룬 공연이기에 소재 자체가 다소 어둡지만 오히려 장부가는 이를 역 이용. 발상을 달리했다. 모던 록의 선구자인 이승열과 뮤지컬 작곡가 조원영의 손을 거친 음악은 독립군의 내용이 다뤄질 때는 애절함이 녹아 있으나, 억지를 부리는 일본인 등장 장면에서는 비아냥거리는 느낌으로 살아나며 통쾌함으로 이어진다. 민족의 애환과 넋을 억지로 살리기 보다는 당시 시대상에서 차마 말로 하지 못했던 일본을 향한 격한 감정을 음악으로 순화시켜 표현한 것이다.
| 잊혀서는 안 될 역사의 재발견
영웅이기 이전에 사람이었고, 사람이기 이전에 한 아버지와 남편으로써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러한 시대상을 딛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큰일을 해낸 안중근.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100년이다. 아직까지도 나라를 찾거든 고국에 묻혀 달라던 안중근의 바램은 후손인 우리 모두가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잊혀서는 안 될 역사.
그와 함께 소홀히 다뤄졌던 그의 가족 이야기. 영웅 안중근을 아버지와 지아비로 두어야 했던 후손은 결코 편치 못한 삶을 살아만 했으며, 더욱이 그의 막내아들은 친일파라는 낙인 찍혀 오늘날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연극 나는 너다에서는 자진이라도 해야 옳다는 식으로 강조 되었지만, 뮤지컬 장부가에서는 막내아들에 대한 애환이 녹아 애절함으로 다가온다.
인간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 뮤지컬 장부가(丈夫歌)는 오는 10월 3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평일 1회 20시, 토요일은 오후 3시와 7시, 일요일에는 2시와 6시에 2회 공연된다. 주요 배역에는 안중근 역에 김찬·김성환·조태일, 김아려역에는 장유희·조수정·박민지, 미조부치 역은 안덕용·유영진·김창회가 맡았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3인3색 인터뷰. 뮤지컬 장부가 안중근(김찬, 김성환, 조태일)
“단연컨대 누구보다 공연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자신합니다. 공연을 즐기고 있으며, 아직은 어렵지만 이 일이 제게는 천성이다고 생각하며, 최고의 배우가 되고자 정진하겠습니다”는 뮤지컬 장부가에서 안중근 역을 맡은 김찬, 김성환, 조태일 3명.
콘서트 뮤지컬 장부가에서 안중근 역을 맡은 주연 배우 김찬, 김성환, 조태일 3인은 장부로 태어나 큰 뜻을 품은 안중근 배역을 맡아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는 공통점을 내비쳤다.
사랑 이야기 일색이던 대학로 공연계에 보기 드문 역사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며, 서거 100주년을 맞아 영웅 안중근의 뜻을 기리는 특별한 뮤지컬이기에 더욱 쉽지 않았다는 것. 그렇기에 꼭 한 번은 하고 싶었던 배역이며, 힘든 오디션을 거쳐 주인공인 안중근 배역을 맡게 되어 행운이다고 생각한다는 것.
공연에 대해서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조태일 배우의 대표작은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이며, 김성환 배우는 뮤지컬 주유소습격사건, 세 배우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으며 화려한 경력을 보이는 김찬 배우는 지하철1호선, 스칼렛, 햄릿의 한여름 밤의 꿈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김찬 배우는 이번 뮤지컬 장부가를 통해 자신을 진정한 배우의 길로 일깨워준 뜻 깊은 작품이라는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한 동안 공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으며, 슬럼프에 빠져 갈등도 많았으나 뮤지컬 장부가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 특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장부가라는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어 벼랑 끝에 있는 나를 끌어주는 특별한 작품이다는 말로 소감을 밝혔다.
물론 감성환, 조태일 배우 또한 장부가는 뜻 깊은 작품이다. 그동안 널리 알려졌던 영웅 안중근이 아닌 인간 안중근에 대해서 자신들이 연기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했으며, 연기 초반에는 쉽지 않은 배역을 맡아 힘들었으며, 특히 감정 조절이 안 돼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마음속에 삭혀가며 대의를 실행하는 안중근의 감정이 뮤지컬 장부가를 연습하는 내내 떠나지 않아 초반에는 눈물을 지울 수 없었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배우가 관객과 같이 울면서 연기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 며 안중근 배역은 결코 쉽지 않았던 배역이라고 강조했다.
평소 선후배 사이였던 세 사람의 맏형인 김찬 배우는 오랜시간 경험에서 우러나온 능숙한 연기로 안중근 역을 소화했으며 아직도 연기가 가장 자신 있다고 했으나 젊은 후배 배우의 열정에는 당해낼 수 없다며 체력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면 김성환 배우는 선배인 김찬 배우의 연기와 무대 매너는 결코 따라갈 수 없다며 아직도 선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뮤지컬 장부가 안중근 역의 막내인 조태일 배우는 공연이라는 것이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열정을 아낌없이 불태우기에 손색없다며, 최고의 배우가 되고자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