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공연 성수기인 연말의 최고 작품으로 단연 빠질 수 없는 것은 ‘호두까기인형’이다. ‘차이코프스키’와 ‘마리우스 프티파’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탄생된 고전발레의 대표작임과 동시에 ‘백조의 호수’‘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더불어 3대 명작으로 손꼽힌다.
처음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지난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초연 공연이다. 하지만 당시 공연은 대실패를 기록했다. 당시 어린아이들이 등장하는 발레가 파격적이며 낯설었기 때문. 하지만 이후 안무가 보완되고 다양한 버전으로 발전되면서 약 1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이맘때면 크리스마스와 함께 무대 위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올해는 상식을 벗어난 호두까기인형이 등장했다. 원작 동화책에 따른 익숙한 장면은 아기자기한 발레 동작에 딱딱 장단에 맞춰 떨어지는 듯 한 절도있는 군무. 동화책에서 보던 내용을 그대로 무대위로 올린 것이 기존의 무대를 360도 바꿔버린 것.
2009년 하반기 선보인 호두까기인형은 퓨전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무대로 꾸며졌다. 마치 이전 무대가 정적인 호두까기인형이라면 동적인 재미를 더한 것이다. 초연 공연의 실패가 낯선 경험이었다면 또 한 번 호두까기인형은 낯선 시도라는 과감한 결정을 선택했다.
아트서커스와 클래식 발레의 절묘한 조화‘시르크 넛’이 바로 문제의 작품이다. 고전발레 최고의 레퍼토리로 지적되는 ‘호두까기인형(Nutcracker)’을 원작으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더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기획사 측은 클래식발레와 아트서커스의 예술적 융합을 시도한 복합장르라고 설명했다. 오는 4일부터 31일까지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한얼광장에 설치된 천막극장 빅탑시어터에서 공연되는 이번 작품은 전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초연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 고전발레와 아트서커스의 예술적 융합
J&S인터내셔널이 제작하고 KBS의 공동 주최로 우리 곁에 온 시르크 넛의 출연진 50여 명은 벨로루시 국립 발레대학 수석무용수 캐서린 올레이니크도 등을 비롯하여 국립 서커스단 출신으로 구성됐다. 세계적인 현대무용단인 머스 커닝햄 댄스컴퍼니의 수석무용수를 지낸 다니엘 스콰이어는 드로셀마이어역으로 출연해 발레니로로 변신했다.
아트서커스 부분에서는 ‘태양의 서커스’ 출신들이 대거 출연한다. 율리야 라스키나(에어리얼 후프), 드미트리 쥬코프(러시안 스윙) 등은 태양의 서커스를 빛낸 주역들이다. 율리야 라스키나는 벨라루스 국가대표 리듬체조선수 출신이기도 하다.
연출은 아이슬란드 출신 연출가 기슬리 외른 가다슨이 맡았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서커스의 요소를 도입한 데뷔작 '로미오와 줄리엣'(2002)으로 주목받은 신예로 지난해 내한해 ‘변신’과 ‘보이첵’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초의 과감한 시도라고 알려지면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내용에 큰 변화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기본 틀은 고전발레 최고의 인기 레퍼토리이자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으로 친숙한 ‘호두까기인형’을 답습하고 있다.
배경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저녁. 드로셀마이어는 대녀인 마샤를 위해 인형 선물을 만든다. 마샤는 예쁜 인형을 제쳐두고 못생긴 호두까기인형을 고른다. 잠이든 마샤는 꿈속에서 생쥐들과 호두까기 병정의 전투에 관여하고, 위험에 빠진 호두까기 병정을 구하려고 생쥐대왕을 향해 칼을 던진다.
호두까기 병정이 생쥐대왕을 물리치려는 순간 생쥐대왕은 가면을 벗는데, 생쥐대왕은 다름 아닌 드로셀마이어이다. 못난이 호두까기 병정은 온데간데없고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고, 마샤는 아름다운 공주가 된다. 드로셀마이어는 모든 사람을 크리스마스에 초대하고 마샤와 왕자도 참여한다.
그의 친구들은 예쁜 눈꽃송이들과 함께 춤을 추며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환상의 나라에 도착한 마샤와 왕자를 맞이하는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왕국에서는 귀한 이들을 위한 환영의 춤이 시작된다. 스페인, 페르시아,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인형 등이 축하의 춤을 추고 마샤와 왕자는 화답의 춤을 춘다. 모든 인형이 사랑하는 한 쌍을 축하해준다. 절정으로 이르는 순간 음악과 왕국이 사라져 가고 마샤는 잠에서 깨어난다.
이 모든 것이 꿈이라니!
기획 단계부터 문화 수출을 겨냥해 제작됐으며 이번 첫 서울 초연에 이어 내년에는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40회 공연이 확정됐고 영국, 스페인, 중국 등에서의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벨라루스 국립 발레대학은 엄격한 교육과 매년 2회씩 실시되는 테크니컬 오디션, 비주얼 오디션으로 최고의 기량, 체격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세가 넘으면 입학할 수 없다고 알려진 이곳의 인재가 ‘시르크 넛’ 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공연은 세계 첫 초연. 이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꾸며질 클래식발레와 아트서커스의 예술적 융합 공연. 호두까기인형의 오랜 인기를 이어받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어떠한 반응을 받을지 내심 기대되는 작품이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기존의 호두까기인형을 지루하거나 딱딱하다고 생각했다면, 시르크 넛은 보는 내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 다는 사실이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