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많은 남녀 한 쌍이 반듯한 차림에 휴대폰으로 통화 중이다. 들어보니 두 사람은 면접을 끝내고 나오는 길. 얼굴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보니 결과가 좋지 않았나 보다. 왠지 이 둘의 모습이 최근 경기상황에 처한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다.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기보다도 어려운 2009년. 연극에 등장하는 두 청춘남녀는 대학을 갖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는 초년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초반부터 대한민국 청춘남녀의 아픈 구석을 가볍게 찌르면서 시작하는 연극 ‘상처와 풍경’
김훈의 기행산문집 ‘풍경과 상처’의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 졌다는 이번 작품은 지난 1999년 처음 발표된 이후 10년간 검증과정을 거치며 수정과 보완이 이뤄졌다.
대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연출가 위성신의 작품으로, 지난 2001년 ‘위성신은 거북이를 좋아한다’, 2002년 화성연극제 그리고 2003년과 2008년 무대에 연이어 오르면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청춘 남녀의 고민, 애환, 근심, 걱정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연극은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며 1시간 30분 동안 사랑에 얽힌 스토리를 쉴 새 없이 풀어나간다.
연극이지만 끊임없이 웃기며, 떠들 수 있는 마치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특히 연극 대사에서도 언급되지만 ‘사랑이란?’ 문장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 청춘에게 적극 추천하는 작품이다. 연극속에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때문.
정규 교육과정처럼 자리 잡은 대학을 졸업하면 가장 먼저 현실로 다가오는 취직. 그리고 연애도 해야 하고. 하지만 남녀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 한다면 싱글과 커플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 할 듯.
누구나 꿈꾸지만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사랑’
이 같은 사랑을 갈구하는 청춘 남녀가 취업이라는 문턱이 계기가 되어 만나고, 이를 배경으로 사연을 풀어 놓는다.
| 사랑이란?
시작부터 병나발을 부는 연극 ‘상처와 풍경’ 사회생활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젊은 남녀가 소주와 맥주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에게 호감을 표현하며, 만남이 시작된다. 너무도 익숙하지만 다소 진부한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장면은 연극이 진행되면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차곡차곡 무대 위에 쌓여가는 각종 병(소주, 맥주, 양주, 보드카 등 종류도 다양하다)들. 하지만 이 속에도 관객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두 주인공이 만나는 과정에 만들어가는 추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이라고. 술잔에 담긴 추억이 아닌 술병과 함께 쌓여가는 추억인 것.
이처럼 긴 대사나 복잡한 표현이 아닌 절제된 표현 그리고 춤과 음악이 적절해 들어간 장면이 연극에서 수시로 반복된다. 덕분에 연극이 끝난 이후에도 긴 여운으로 남는 후유증을 감내해야 한다.
과연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보는 사람까지 힘들게 하는 것일까! 또 왜 주인공들은 사랑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일까!
사랑을 표현하는 다양한 장면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어께 춤을 들썩이게도 만든다. 병나발을 부는 장면을 마치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희화시킴으로써 웃음까지 선사한다. 사랑을 시작하면 겪는 설렘을 극적으로 표현한 ‘상처와 풍경’은 초반에는 사랑을 시작하면서 겪는 감정이 소재로 다뤄진다.
| 이별이 다가왔다.
최근 사랑의 유통기한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 IT 발전 속도와 함께 사랑의 변화 속도 또한 빨라졌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짧은 만남 이후 남게 되는 이별은 어떻게 다를까?
초반의 사랑이 끝나고, 헤어짐이 다가온 두 주인공. 연극 속에서는 서로를 부정하며 대화 단절을 알린다. 무언가 맞지 않는 코드. 그렇게 이별을 경험한 여자는 자신의 방에 고립된 채 ‘사랑’ 이후에 남겨진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피자와 콜라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통해 점점 망가져 가는 자신의 모습도 모른 체. 그리고 점점 지저분해지는 주변 환경. 두 사람의 사랑은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창밖의 빗물과 같아요!” “편안함을 가질 수 있는 것” 이라고 말하는 극중 배우 민성욱, 황래은, 최두순 3명의 피와 땀이 담긴 연극은 1시간 30분 동안 참관객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사랑이라는 내용으로 물들인다.
초반의 아쉬움은 후반에 들어가면서 헤어짐의 슬픔으로 남게 되고, 그 사랑을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애절함과 참관객의 간절함이 더해져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진다.
그렇다면 연극 '상처와 풍경'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기억 “아 나도 저랬지. 나도 헤어졌을 때 저런 느낌이었지” 라는 누구나 겪게되는 이별 혹은 사랑의 경험이 있다면 더욱 즐겁게 볼 수 있다고 힌트를 제시하는 배우들.
“공감할 있는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면 훨씬 더 즐겁게 볼 수 있다”며, 연극 ‘상처와 풍경’에 대한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그리고 만약 지금 연인과 헤어졌지만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자존심을 세우면 안 된다”고 사랑에 대한 조언도 남겼다.
김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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