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라면, 나이를 초월한 결혼스토리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한다. 그래도 이것은 좀 심했다.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의 딸이 결혼 상대자라며 데려온 남자는 무려 40세 연상. 흰 백발의 노인이 장인어른이라며 큰 절을 올리는데 알고 보니 나이가 무려 70이다.

아뿔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통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건 대낮에 벌어지고 있는데, 엄연한 현실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을 이겨야 할 상황이다. 평생을 이발사로 살아온 아빠 눈에는 딸의 이런 행동을 쉽게 납득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남자친구라고 박박 우기는 딸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빠가 아니다.

내심 탐탁지 않지만 딸 의견을 지는 척 수긍한 아빠와 달리 엄마는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대 사건이 분명할 터. 다행히 아직 딸의 남자친구를 마주치지 않았다. 기회는 지금이다. 70대 노인을 딸의 남자친구로 소개하느니 일단은 숨기는 것이 집안 평화를 위해 좋은 판단이 든 것.

숨기자. 이것은 집안의 평화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다. 난 가정을 지켜야 할 가장인 것.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악의적인 의도를 내포한 거짓말과는 엄연히 다른 제스처다. 과연 20대 딸과 70대 남자친구의 결혼이 순탄하게 성사될지. 아무리 봐도 결코 순탄치 않아 보이는 데 계획은 예정대로 시행된다.

| 미타니 코우키의 두 번째 웃음 바이러스

미타니 코우키의 두 번째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앞서 공연되었던 웃음의 대학(이하 웃대)에 이어 두 번째 시리즈인 ‘너와 함께라면’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전작인 웃대는 권력과 그 권력을 이겨내야 하는 검열의 상황속에서 말도 안되는 웃음을 만들어 관객의 폭소를 자아냈다면, 두 번째 시리즈 또한 철저하게 계획된 사건이 수시로 터지면서 관객의 웃음보를 예리하게 자극한다.

작가의 의도가 일련의 사건 속에서 치밀하게 펼쳐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기발하다는 생각 외에는 여타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미타니 코우키 특유의 스토리 라인 전개는 ‘너와 함께라면’에서도 돋보인다.
내용인 즉 전형적인 일본 가정. 평범하게 살아온 딸은 세대를 3바퀴는 뛰어 넘는 연상과 사랑에 빠지고 비밀 연애를 시작한다. 이름만 들으면 일본의 유명 배우와 다를 것 없는 기무라 켄야. 멋질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딸은 남자친구를 숨기려고만 한다.

알고 보니 ‘아뿔싸~ 띠동갑의 차원이 아니라는 데’ 12살은 우습게 넘기는 요즘 연예인의 결혼을 비웃기라도 하 듯 이들은 무려 40년이라는 나이차를 뛰어 넘어 결혼을 꿈꾼다. 게다가 남자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 여유로운 삶까지 보장되고. 반면 여자 집안은 너무도 평범한 일본 가정.

그렇다 보니 자칫 사람의 손가락질도 비웃어야 할 상황. 딸자식 팔아 부귀영화 노리고자 했다는 누명이라도 쓴다면 속상하지 않겠는가! 청년사업가 인줄 알았던 켄야가 70대의 노인인 것 또한 충격이긴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스물아홉 먹은 딸 코이소 아유미(이세은)가 남자친구인 기무라 켄야(송영창)를 집으로 초대하면서 시작됐다. 아버지 고이소 구니타로(서현철)는 백발의 노인을 보고 딸 남자친구의 아버지로 생각하고 “오늘 아드님은 안 오시나요?”라고 말을 건네지만, 딸의 남자친구인 켄야는 “나이보다 젊게 보이지 않냐”며 실소를 건네면서 급속 냉각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한 발 먼저 이 사실을 접한 아유미의 동생인 코이소 후지미는 엄마인 코이소 요리에(추귀정)가 장을 보러 나간 사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펼치지만 하나같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게다가 켄야의 아들인 기무라 겐야(박준서)가 집을 방문하면서 일은 더 꼬이기 시작한다.

겐야의 눈에는 아유미 엄마인 코이소 후지미가 자신의 아버지인 켄야와 재혼하는 상황이며, 엄마인 코이소 후지미의 눈에는 딸의 남자친구인 켄야의 아들인 겐야가 딸의 결혼상대자로 지목된 상황. 이유인 즉. 모든 것은 29세의 딸이 40년 연상인 70대의 백발노인 기무라 켄야를 데리고 오면서 시작됐다. 모든 것이 꼬여도 한참 꼬였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 세대를 서너 바퀴 뛰어넘는 사랑 그리고 갈등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설정에서 시작된 연극. 그렇지만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묘한 연극이기도 하다. 70대의 노인 역의 송영창이 펼치는 능청스러운 연기에 오랜 공백기를 끝으로 연극무대로 컴백 신고식을 치른 이세은의 천연덕스러운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닭살 돋게 한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동년배인 사위를 상대로 어쩔 줄 모르는 아빠 코이소 쿠니타로 역의 서현철은 이번 연극에서 감초 역을 자청했다. 다소 과장되었다고 생각되는 액션을 선보여 억지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시종일관 잠옷차림의 게으른 모습이며 안절부절 못하는 행동 그리고 동년배인 켄야와의 사이에서 중간 조율자 역할을 적절하게 해낸다.

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연극 종료를 앞두고 벌어진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가나 싶더니, 엄마인 코이소 요리에가 내 뱉은 한 마디. “겐야~”

아뿔싸, 지금까지 착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 같은 일을 또 반복해야 될 것을 생각하니 우선 걱정이 앞선다. 사랑이라는 토대를 기반 삼아 만난 이들. 가정이라는 든든한 둥지를 꾸릴 수나 있을지 염려된다.

4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고 결혼을 꿈꾸는 요절복통 29세 딸과 70세 노인의 애뜻한 사랑 이야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간단히 비웃어 버린 연극 ‘너와 함께라면’의 모요한 감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문의 02-766-6007

김현동 cinetiq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