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머리 위로, 흥겹게 리듬에 맞춰 몸 흔들어!
콘서트 혹은 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뮤지컬 무대에 옮겨졌다. 등이 파인 짧은 스커트차림의 여성이 오가는 이곳의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술병이 가득 쌓여있다. 담배 연기를 의미하는 뿌연 스모그. 누가 보더라도 클럽임이 확실하다. 게다가 화려한 조명을 배경삼아 흥겹게 몸을 움직이며 흥을 돋우는 댄서.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뮤지컬 위해 치밀하게 준비된 배경이라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공연장 입장을 위한 대기선도 다를 바 없다. 관람객들 사이로 배우가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이고 귓가에는 빠른 테크노 댄스 리듬이 맴돈다. 게다가 관람 후 퇴장하는 문 앞까지 동일하게 마중 나온다. 조명 조차 몇 개에 불과한 스포트라이트로 매우 어둡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다면 클럽을 잘 못 찾아온 착각이 들 정도다.
이 같은 톡톡 튀는 설정 탓에 20대 인기를 한 몸에 독차지하고 있다. 클럽을 그대로 옮겨온 문제의 뮤지컬 클럽 ‘십이야’가 지난 9월 3일부터 오는 10월 26일까지 일정으로 대학로 아트홀 스타시티 3관 오픈을 알렸다. 단순한 뮤지컬이 아님을 스스럼없이 알린 뮤지컬 클럽 십이야는 즐길 줄 아는 신세대 젊은이를 타깃으로 그들의 눈 높이를 맞췄다.
| 현대 감각으로 구성된 셰익스피어 원작
분명 뮤지컬임은 확실하다. 다만 관객과 배우가 한데 어우러져 반응해야지만 완성되는 작품이며, 셰익스피어 원작이라고 주장하기에도 애매하다. 제작사는 현대 감각으로 재구성했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재구성 보다는 새롭게 꾸몄다는 표현이 정답에 가까울 정도로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뮤지컬 클럽 십이야를 관람하기 전에 셰익스피어 원작을 사전에 검토해본다는 것은 잘못된 우를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 행동이다.
그렇더라도 클럽 십이야를 설명할 때 셰익스피어(Shakespeare) 원작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라는 설명의 근거는 알아두는 게 좋다. 뮤지컬 클럽 십이야 에서 거론되는 셰익스피어 원작 ‘Twelfth Nights’는 1599년과 1601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3막 희극 작품으로 부제목으로 ‘Twelfth Nights’ ‘What You Will (written in 1601)’의 두 가지가 쓰인다.
첫 번째 문구로 거론된 Twelfth Night 는 크리스마스를 기준으로 12일 지난 1월 6일 축제 밤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현절(Epiphany)축제일은 당시 시대에는 크리스마스만큼이나 큰 의미를 두는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실제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는 중요한 경축일의 하나인 1월 6일 밤에 특별한 축제가 자주 치러졌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두 번째인 What You Will은 대본과 공연의 의미를 독자나 관객이 마음대로 해석하라는 의미에서 차용된 것. 혹자는 르네상스 시대에 벌어지던 십이야 축제를 전후한 카니발 같은 분위기를 의미하며, 축제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혼란과 혼동이 뒤섞여 정상적인 것과 벗어난 것과 비슷한 쓰임새의 문구다고 설명한다.
클럽 십이야 제작사는 셰익스피어 원작 십이야를 근간으로 쓰였다는 것을 줄 곳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 공연장에는 첫 번째 문구인 Twelfth Night가 표기되어 있다. 원작과는 다소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축제를 현대적인 의미의 클럽으로 해석했으며, 12번째 밤이 지나면서 이뤄지는 만남의 완성과 그리고 새로운 사랑의 시작에 남다른 의미를 더한 결과다.
이 때문에 다소 거리는 있지만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제작사의 주장인 곡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설명이 무조건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종합해보면 뮤지컬 클럽 십이야는 12일간 벌어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랑이라는 것을 완성시키는 멜로 뮤지컬이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클럽은 촉매제 정도라도나 할 까!
| 잘 짜인 한편의 시트콤
하이퍼미디어 아트 기법을 처음 도입했으며, 법률 자문까지 거쳐 원작을 새롭게 각색해 저작권까지 확보한 클럽 십이야. 시트콤으로 만들어도 손색없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가 특징이다. 남장여자로 나오는 세린, 변장한 세린의 모습을 보고 반한 클럽 사장 역의 올림, 올림을 6개월간이나 짝사랑한 시우의 삼각 라인이 클럽을 배경으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영화 ‘쉬즈 더 맨’을 떠올리게 하는 전개라인은 취업을 하고자 했으나 여자라서 안 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남자로 변장하는 사연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남장을 한 여자에게 여자가 반하며, 남자 역의 시우가 여장을 하고 클럽 여 사장 올림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하지만 이 부분이 극중에서는 여성 관객에게 상당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웃음을 선사한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고 회유하는 직원. 그 같은 조언에도 1개월 만남으로 헤어지고 무려 6개월간 짝 사랑이라는 기나긴 기다림을 선택한 남자. 오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예전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랑을 마주하고 고민하는 여자 그리고 우연히 스친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여자. 얽히고설킨 만남과 이별속에서 이들은 새로운 사랑을 찾고 12일의 기간동안 서로를 알아간다.
이 외에도 상투적이며 다소 거친 대사도 클럽 십이야의 몰입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극중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어눌한 외국인으로 등장하는 앤드류는 사랑을 ‘씨벌’이라는 경박한 단어로 비유하는 등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남발하며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여기에 클럽 직원의 노골적인 표현과 지배인의 착각이 만들어낸 에피소드 또한 흥미로운 볼거리다.
현대적인 설정은 등장인물의 직업과 환경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장 여자로 등장하는 세린과 세린의 오빠로 등장하는 세찬은 아버지의 부도로 사체 업자에게 쫒기는 신세다. 돈 많은 사장 시우는 짝 사랑한 클럽 십이야의 여사장 올림에게 마음을 보이기 위해 남자로 위장한 세린을 고용하고, 올림의 고모와 클럽 직원인 미미는 클럽 지배인으로 등장하는 마봉수를 골탕먹여 변태로 만들고 법의 잣대를 들이민다. 게다가 돈 많은 앤드류는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등 현실적인 현대모습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 클럽에서 보는 한 편의 뮤지컬
클럽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조명과 흥을 돋는 빠른 비트의 음악 여기에 공연 중간에 펼쳐지는 배우의 공연 참여 유도는 여타 뮤지컬에서는 보기 힘든 뮤지컬 클럽 십이야 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게다가 공연 초반에 스크린에 펼쳐지는 샌드아트와 디제잉은 클럽과 경망스러운 대사로 인해 추락할 수 있었던 공연의 품격을 더욱 높이는데 일조한다.
음악도 주목할 만하다.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작품으로 알려진 음악은 뮤지컬 음악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공연 내내 짜릿한 전율로 전해진다. 여기에 시우 역으로 등장하는 클릭비 김태형의 목소리와 앤드류 역으로 나오는 남성 그룹 파란의 에이스 목소리가 감미롭게 어우러져 여성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그렇다 보니 뮤지컬 클럽 십이야 관객 비율은 여타 공연과 견주어도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 2003년~4년 대학로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2010년 기존 작품의 고정 관념을 완벽하게 무너뜨리고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돼 돌아온 뮤지컬 클럽 십이야. 지나친 현대 감각의 설정이 특정 연령대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게 할 가능성이 높고, 12일간의 진행 중 11일 간의 진행이 느리게 된 탓에 마지막 1일의 급작스런 마무리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뮤지컬 업계에서도 좀처럼 생소한 파티컬이라는 장르를 표방한 새로운 시도와 원작을 새롭게 해석시켜 탄생시킨 실험정신 거기에 소규모 뮤지컬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영상효과와 더불어 짙게 깔리는 탄탄한 음악이 2% 부족한 점을 충실하게 보완한다. 게다가 공연 초반부터 몰아가는 클럽 분위기는 개성 넘치는 신세대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뮤지컬 클럽 십이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이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