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연극 마누래 꽃동산 아픔마저 그리운 사랑, 당신에게.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2. 10. 23:38

본문

기른 정, 낳은 정, 살아온 정 때문에 차마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했다. 자식 걱정에 마음 조린 삶, 망나니 같은 남편 뒷바라지에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뙤약볕 아래 산이며 들에서 캔 약초와 농산물을 팔아가며 지내온 세월에 어느 덧 머리에는 하얀 백발이 내렸고, 손은 거북 등처럼 거칠게 갈라졌다.

자식 걱정에 속 태우고, 남편 때문에 서럽게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 마누래 꽃동산에서 어머니 역의 순자씨는 그날도 단 돈 만원을 벌기위해 손수레를 끌고 장으로 향했다. 이곳저곳 무릎도 성하지 않지만 그게 인생이고 살아온 날 이라고 여기는 어머니.

당신 먹을 것도 줄여가며 자식과 남편위해 살아온 한 평생. 첫째아들은 사고로 죽고, 둘 째 딸은 하루가 마다하고 남편과 싸우고 금방이라도 이혼할 기세로 집을 나온다. 얼마 남지 않은 텃밭까지 팔아가며 식당 차리는데 쓰라고 보태줬더니 사위는 밖으로만 나돌고, 장사는 시원찮은지 딸은 그날도 시골 장으로 찾아왔다.

마냥 푸념만 늘어놓는 철없는 딸. 행여 상할까봐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워 분가 시켜놨더니 오히려 품안에 있을 때 보다 더 신경 쓰인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찾아온 딸은 순자씨의 유일한 낚이던 소주까지 뺏어 홀짝이고 있으니, 더욱 찹찹해지는 순자씨. “언제까지 내가 너희들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을까?” 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친한 지인에게는 술로 생긴 속병이라고 얼버무렸지만 병원에서는 이미 치료를 포기한 지 오래. 2년 전에 죽어야 했던 그녀를 지금까지 지탱하게 할 힘은 ‘손자 돌잔치는 보고 가야 한다’는 소소한 바램이었다. 첫 째 아들은 야속하게 떠나버린 지금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은 둘 째 딸. 그리고 태어난 증손자. 내심 손자 학교 들어가고 결혼 하는 것 까지는 보고 싶지만 그녀의 바람은 욕심이었을까, 그녀는 돌잔치를 치르고 며칠 뒤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곱게 가셨어요.” 나이 들어 고생하던 그녀 얼굴을 보고 주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평생을 원망과 죄책감에서 살다온 그녀에게 죽음도 모든 것을 떨쳐버릴 순 없었나보다.

북망산을 저 멀리에 두고 지나가면서도 남편 끼니 걱정,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걱정 그리고 유일한 가축이라고 있는 닭 걱정에 입을 잠시라도 쉬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떠나간 순자씨가 남긴 곗돈 1천만원. 자신이 떠난 이후 아무도 챙겨주지 못할 가족 걱정에 덜 먹고 덜 쓰며 품 팔아 번 돈 이지만 이게 불화의 씨앗으로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하나 밖에 없는 딸자식에게는 돈 때문에 소리친 아버지로 낙인찍힌 순자씨 남편 박씨. 영순씨의 아버지는 뒤늦게 아내가 아프다는 소리에 산과 들로 병에 좋다는 민들레 캐러 다녔지만 아무런 소용없었고, 떠난 빈자리에 남기고간 1천만원만 두손으로 부여쥐고 눈물만 훔친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놓고 피 같은 돈을 떠나간 당신의 영전에 바친다. 하지만 철없는 둘 째 딸은 아버지를 돈에 환장한 짐승으로만 취급했고, 하나 뿐인 며느리는 새 출발 하라는 시아버지의 권유에도 떠나지 못하고 늙은이 뒷바라지만을 자청한다.

딸내미하고는 천만원 때문에 의상하고. 며느리는 미안해서 얼굴 볼 낯이 없다.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건만 이제서 달라진다 한 들 누가 알아주랴. 게다가 아내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졌을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 박씨도 아내 순자씨가 있는 곳으로 말없이 향한다.

평범한 가족 이야기. 내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온 지난날을 다룬 소박한 연극 무대가 오는 10월 3일까지 강남 동양아트홀에 마련됐다. 구수한 강화도의 사투리에 황토 먼지 풀풀 날릴 것만 같은 무대는 누가 봐도 영락없이 시골 외딴 오지를 연상시킨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릴 쯤이면 실제 떨어지는 물방울. 시골 5일장이 펼쳐질 쯤이면 광대가 나와 흥을 돋운다. 그렇게 펼쳐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는 애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손수건을 꺼내게 만든다.


| 가승 뭉클한 우리 이야기

사랑 이야기 일색이던 연극 무대에 ‘인생’을 소재로 다운 공연이 등장했다. 연극 마누래 꽃동산은 강화도에서 한 평생 살아온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로 순자와 박씨를 중심으로 박씨의 친구로 등장하는 최씨와 순자씨를 짝사랑 했던 김씨. 그리고 순자씨의 딸인 영순씨. 이 외에도 명숙, 창수네, 김씨의 젊은 시절 마지막으로 광대로 등장하는 용팔씨 9명이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맛깔나게 연기한다.

마누래 꽃동산은 지난 2007년 파파프로덕션 창작희곡공모 대상수상작으로, 30대 젊은 작가 장윤진의 작품이다. 40대부터 80대의 배역으로 표현되는 등장인물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그리고 주변인의 삶을 통해 인생에 대한 진한 통찰력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산다는 건 누구나가 다 똑같다는 의문을 던지고 시작하는 연극 마누래 꽃동산은 내일 되면 당장 어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어떻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답변으로 돌려준다. 어제 저지른 일은 오늘 해결해야 할 숙제로 돌아오고 해결하지 못할 경우 내일 다시 더 큰 짐으로 돌아온다는 철학 같은 이야기.
 
등장인물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가슴 뭉클한 진한 감동을 느끼는 것은 마누래 꽃동산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도 평범하고 흔하기에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바라보는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

참어… 그러믄, 너도 닳아. 좀 더 살면, 닳고 닳아 뭉툭해질 거다.
깎여야지. 깎이고 깎여 닳디 닳음은 암 것도 아닌게 많어.
그 때 되면 속도 바윗돌처럼 단단해지고, 바람 섶처럼 가없어지지 않겠냐.
그게 남남으로 모인 부부연이고 가족이란 거지.
너 맘대로 맺고 끊을 수 있는 건 암 것도 없다.
발에 채는 돌부리도 내 발이 닿아야 움직이고, 그러고 나야 패고 닳지.
…. 그냥 그렇게 되니까, 니가 한 번 더 눈 질끔 감어.
<마누래 꽃동산> 中 순자의 대사

무던히도 쏙만 썩히는 자식의 잘못도 그저 모든 것이 당신이 잘못한 탓이라고 감싸는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마누래 꽃동산의 대사가 등장할 때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그저 한낮 눈요기 거리에 불과한 사랑이야기에 점령당한 공연계에 오랜만에 등장한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야기. 연극 마누래 꽃동산.

올해 강남 동양아트홀 무대에서 선보이게 된 마누래 꽃동산은 친정엄마와 2박 3일, 고곤의 선물, 이름을 찾습니다, 심판 등을 통해 감성 연출로 인정받은 구태환이 연출을 맡았다. 등장 배우 또한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조순이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배우 이현순을 비롯해 고인배, 이영석, 배상돈 등 관록이 돋보이는 장년층 배우들과 거창국제연극제 여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한 황세원 등의 젊은 연기파 배우들이 합세해 삶과 그 둘레의 애잔함을 표현한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