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김현동(cinetique@naver.com)
[2016년 12월 19일] - 나 또한 공인된 덕후다. 내가 처음 만져본 PC는 체리 키보드를 사용하고 모니터는 허큘레스 화면의 회색 일색이었다. 286도 아닌 XT라 불리던 당시. 구닥다리 기종을 가지고 코볼, 포트란, 베이직을 배웠고 인터넷이라는 것조차도 생소하던 시기에 넷스케이프를 이용해 제한적으로 인터넷을 접했고 하이텔과 유니텔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했다.
성년이 되어 공대에 진학했고 이후 IT 전문 기자를 했고 지금은 다양한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렇기에 일방적으로 덕후에 대해 안 좋은 편견을 가진 것이 사실이고 루머에 대해 부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필요 없는 곳에 정력을 쏟을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렇기에 덕후를 향해 있는 여전한 편견을 좀 바꿔보고 싶었다.
덕후를 표현하는 문구도 오덕, 마니아 등 제각각이다. 간과하기 힘든 사실 중 한 가지가 이들이 곧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는 전문가라고 하여 은둔형 ‘전문가’라고도 불린다는 사실. 마음속에서 매우 격렬하게 부정하고자 하는 기운이 샘솟고 있다면 부디 열린 마음으로 자신에게 자문해보라. 각종 커뮤니티에서 특정 카테고리에서 펼치는 이들 덕후의 덕력(능력)은 놀라움 그 이상으로 실제 전문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
그러한 덕후를 한자리에 모이겠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시도가 사상 초유의 프로젝트로 계획됐다. 정말 스팩타클했다.
물론 행사가 논의되던 초창기부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고. ‘과연 모일까?’ ‘뭔가 사고가 터질 거야~’ ‘통제가 되면 이정현이 손에 장을 지진다.’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리스트를 빼곡하게 장식했다. 나조차도 또 한 명의 덕후였으니 가능성에 대해 ‘상당 부분 인정’으로 쿨한 모습을 보여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행사가 열리던 당일.
현실에서의 놀라움은 ‘덕후의 성실함’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편견의 전환은 이때부터 시작했으리라.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뒤로하고~ 스텝보다 먼저 8시 반에 도착한 성실 덕후의 등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물론 추후 안 사실이지만 모임 시간이 9시로 안내됐다고. 그래도 1시간이나 먼저 나온 소식을 접하고 무전기에서는 빨리 출발하면 일정이 꼬인다며~ 정시 출발을 강요하는 으름장이 들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나와 DPG를 통해 ‘덕후’를 대동단결하고자 공지가 공개됐고, 미션을 성공리에 끝내야 한다는 굳은 결의를 한 스태프는 전국에 은둔한 덕후를 부르기 위해 촉을 바짝 세워 ‘만랩덕력’을 지닌 덕후의 참여를 유도했다. 그렇게 모집이 끝나 간신히 출발할 수 있게 된 당일 날 아침.
이들 덕후는 그제야 아주~ 오랜 시간 온라인이라는 배경 뒤에서만 드러내던 신비한 존재감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아~ 편견과는 달리 너무나 평범했다. 키보드만 두드리기에 뚱뚱할 거라는… 비범한 기대도 무참히 무너졌다. 물론 이 중에는 행사 참석을 목적으로 회사에 월차까지 소진하신 덕후님도 물론 계셨다.
# 덕후님 단체 나들이 가던 날. 조낸 추웠다.
경기도 양주의 한적한 공터에 위치한 ‘딱따구리’ 연수원. 청소년 연수원에~ 모인 덕후는 각자 챙겨온 가방을 들고 신교대 입소 기분으로 대강당에 모여~ 짤막한 설명을 듣는 자세를 취했다.
▲ 캠프장이신 드렁큰허~ 님의 숨막히는 뒤태 ⓒ김현동
“자~ 군대에 입소(X) DPG 캠프에 입소(O)하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사회자의 친절한 안내 멘트와 함께 한 손에 들려진 정체 모를 가방 하나씩. 그리고 주황 라인이 선명한 후드점퍼가 한 장씩 손에 들렸다. “각자 숙소에 짐을 두고 옷도 갈아입고 다시 이 자리에 모입니다.” 는 말과 함께 행사가 시작됐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점심은 간단하게 만두전골. 물론 만두는커녕…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행사를 준비해야 했던 1인에게~ 맛이 어쨌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강당에서 교육이 펼쳐진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보겠다고 사회자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멘트를 남발했고 이날 참석한 덕후님은 사회자의 꾀임에 청춘을 불태웠다. 당시 사회자의 포즈를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한 손에는 경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흡사 서커스장에서 동물을 조련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랬다. 우리는 조련당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배치했던 상당수 스태프도 사회자의 호령에 휩쓸려 경품을 노려 참여하는 만행이 자행되었으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한 명의 스태프도 획득에는 실패했다는 사실. 자칫 주최 측의 농간이라는 딱지와 함께 대참사가 될 뻔했던 이야기를 시간이 지났으니 꺼내본다. 스태프여 경품에 아쉬워 마라~ 그게 스태프의 운명이려니~
1교시는 그렇게 얼룩지고 2교시는 본격적인 수업시간.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내가 서울대를 가지 않았겠나 싶을 정도로 쓸데없는 학구열을 불태워야만 했던 시간이 무려 2시간가량 계속됐다. 좁은 교실에 가둬 놓고~ 초코파이에 코카콜라 한 캔이 지급됐다. 당 떨어지면 까칠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묘안이지만 내심 스니커스~ 땅콩! 초코바 하나라도 더 주어졌으면 했다. 그래 다음 행사때는 필히 준비해야겠다. 스니커즈(땅콩)
# 4개 브랜드를 통해 편견을 무너 뜨리던 행사
처음 이런 행사가 기획됐을 때 주변에서는 뜬금없이 왜 그런 덕후 워크숍! 이냐며 부질없는 눈총을 보내왔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장에 몸담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던 뒷 이야기가 행사를 추진하게 된 발단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편견이지만 해명할 기회를 놓치거나 오해가 더욱 깊어질 경우 브랜드 입장에서는 큰 손해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 이유를 오랜 시간 고민했고 ‘소통의 부재’라는 것에서 답을 찾았다. 모든 업체는 제품 출시 전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준비하지만 늘 미흡한 것이 지금까지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미 출시한 제품을 물리거나 차기 제품 출시를 앞당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 그래서 각 업체 담당자에게 물었다. 무엇이 제일 어렵나요?
‘사용자와 소통하는 방법’ ‘우리 제품은 이렇습니다.’ 와 같은 진솔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다. 마음을 터놓고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만나야 하지 않겠냐! 는 결론을 실행에 옮겼다. 겉으로는 덕후 워크숍으로 보였지만 나 또한 한 명의 덕후였기에 ‘뭔가~ 남자들만 가득한 행사’가 되리라 예상은 했지만 참석하는 이들 모두의 편견을 전환할 수 있다면 행사의 취지는 충분하리라 봤다.
▲ 본 행사의 백미는 도전 골든벨~ 아쉽게도 최후의 1인은 실패했지만 우리 모두는 승자였다. ⓒ김현동
총 4개 브랜드가 1차 행사에 참여했다. 씨게이트, 캔스톤, 이엠텍, 마이크론. 각각의 아이템을 대표하는 이들 브랜드의 동참에 첫 행사는 기대 이상으로 알차게 진행됐다. 제 자리를 마지막까지 지켜준 스태프와 남자들만의 워크숍을 위해 열혈 단신 목이 터져라. 외친 사회자 그리고 그러한 구호에 맞춰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준 우리는 모두 이날 행사의 주인공으로 손색없었다.
물론 이제 한 걸음을 뗀 1회 행사가 지금까지의 모든 편견을 무너뜨렸을 거라는 기대는 아직 이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행사를 통해 담당자와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이 자주 마련되고 오해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면 담당자의 오래된 고충도 해소되고 사용자 또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해 제품 구매에 효율적인 가이드로 자리 잡으리라 자신한다. 진정으로 그리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