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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 살려주던 백수 총각 ‘나물이네! 김용환’ 요리비법 남기고 떠나

시사/정치/사회/행사/취재

by 위클리포스트 2015. 6. 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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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 부고 ]
입맛 살려주던 백수 총각 ‘나물이네! 김용환’
요리비법 남기고 15일, 심장마비로 별세




- 그의 나이 44세, 단 돈 2천 원 요리 레시피로 수많은 팬 애도
- 옥탑에서 인생역전 이룬 파워 블로거의 안타까운 사연
- 불과 얼마 전까지도 업데이트, 안타까운 발길 ‘믿을 수 없다’

미디어얼라이언스 / 김현동 기자 cinetique@naver.com
나물이의 생존전략 블로그 바로가기(http://www.namool.com/)


[2015년 06월 16일] - 살면서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는 아마도 먹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살기 위해서는 먹을 수밖에 없고, 현대 사회에서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닌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가 바로 먹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혼자 사는 독신에게 무엇인가를 먹는 문제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고민이자 거를 수도 있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을 지도. 하지만 ‘나물이네 총각’ 김용환 씨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 선구자였다.

그리고 김용환 씨의 인생에 ‘요리’가 등장한 것이 2002년(당시 35세)이다. 당시 첫 직장이던 웹디자인 업체를 6개월 만에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궁핍한 삶을 이어가던 김 씨의 한 달 평균 수입은 고작 30~40만 원 선. 옥탑에 거주하고 있던 김 씨에게는 월세 내기에도 빠듯한 수익이기에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2005년 8월 매경이코노미의 인터뷰에서 ‘나물 총각’블로거인 김용환(44) 씨가 밝힌 내용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김 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수입이 거의 없다 보니 그날그날 궁핍하게 만들어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경험이 오늘 같은 날을 가져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라는 내용만 봐도 요리가 본인의 인생을 이렇게 뒤바꿔놓을지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는 것.


당시는 김 씨의 블로그 ‘나물이네(www.namool.com)’가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던 시기다. 중앙대 안성캠퍼스(미술학과) 출신인 김 씨는 어려서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이것저것 만들어 먹곤 했다. 우연은 필연으로 뒤바뀌었다. 공사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님의 등 뒤에서 배운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자취생활 당시 자취방을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던 것이 요리 블로거로 전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 달 2,000원 안팎에서 맛있는 밥상 차리는 방법이 없을까?’는 고민은 2003년 ‘2,000원으로 밥 상 차리기’라는 책으로 결실을 보았다. 옥탑에서 거주하던 김 씨의 인생이 책 한 권을 통해 뒤바뀌던 순간이다. 매경이코노미 2005년 8월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에 팔려나간 책은 약 50만여 권이며, 인세로 벌어들인 돈이 3억 원이 넘는다고 하니 옥탑에서 단꿈을 꾼 셈이다.


나물이 총각은 동시에 효자였다. 연신내 옥탑방은 응암동의 원룸으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경기도 광주 퇴촌에 널찍한 텃밭이 딸린 근사한 전원주책도 마련했다. 김 씨의 성공을 목격한 주요 언론은 ‘프로튜어(Proteur)’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 당시 김 씨의 블로그 1일 방문자는 평균 1만 명이 넘었고, 김 씨의 요리비법은 자취생 사이에서 필독서이자 바이블로 통한다.

제대로 된 요리교육 한 번 받은 적이 없는 아마추어 요리사의 요리를 배우기 위해 누리꾼은 김 씨의 요리 장부를 뒤적이며 노하우 전수를 마다치 않는다. 그렇게 김 씨의 손을 탄 요리 솜씨는 600만 명이 넘는 이들에게 요긴하게 쓰였다. 하지만 2015년 6월 9일 마지막 게시글 이후로 김 씨의 블로그는 애도의 발길만 이어지고 있다.


# 요리하는 남자, 자취하며 먹는 즐거움을 깨우치다.



나물이네 ‘김용환’씨의 요리 필독서는 불황일수록 선호됐다. 요리가 직업이 아닌 자취를 하던 투박한 30대 독신 남성의 섬세한 요리실력이 대중의 공감대를 자아낸 것. 김 씨는 2004년 1월 한겨레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요리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게 아니다. 소박한 음식을 손수 만들어 사랑하는 식구들과 둘러앉아 함께 먹고 이를 통해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찾는다.”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한 김 씨의 요리 비법이지만 김 씨의 요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불러일으키며 일부는 좌절을 경험해야만 했다. 물론 따라 하는 초보 요리사가 한 번은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집에서 해먹는다는 것을 목적으로 구매하는 과정에 채소와 육류와 생선 등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해 남긴 음식물이 변질하는 부작용이다. 이 또한 배우는 과정에 거쳐야 하는 ‘시행착오’라며 ‘잘 먹고 잘살기’가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진한 공감대로 이어졌다.

수많은 구독자가 생겼고 독신 자취생부터 신혼부부까지 김 씨의 레시피가 요긴하게 쓰였다. 하지만 2015년 6월. 한겨레신문을 통해 한 통의 비보가 전해졌다. ‘총각 요리 블로거’로 유명한 ‘나물이네’ 김용환(44) 씨가 하루 전인 15일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것. 빈소는 경기도 양평군 길병원 영안실 2호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7일 오전 9시,


한겨레는 김 씨의 지인과의 전화 내용을 토대로 “사인은 심장마비다. 가족들이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고 싶어한다.”고 지나친 관심은 부담스러워 할 것 같다는 뜻을 비쳤다. 고인의 블로그에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요리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봤을 법한 ‘나물이 총각의 요리 비법’ 필독서. 그가 떠난 이후에도 누리꾼 사이에서 화자 되는 것은 그 또한 누리꾼과 같은 시대에 거주하던 다포세대이자 옥탑에서 힘든 삶을 견뎌냈으며, 그 당시 먹는 문제에 대해 똑같이 고민했고 힘들어했을 우리내 이웃이라는 공감대가 통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물이네 총각 김용환’ 씨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나물이님 레시피로 인해 풍성한 밥상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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