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2015년 05월 17일] - ‘우걱우걱~ 허겁지겁~ 쩝쩝’ 아줌마 공기 하나 추가요!
밥이 나오고 5분도 안 돼 밥을 비웠다.
처음 식당에 들어올 때부터 난 “밥 추가는 셀프입니다.”라는 문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래~ 밥을 배불리 먹어도 된다는 말이지.’ 나름 흐뭇한 미소와 함께 어떻게 먹어야 많이 먹을 수 있을까? 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몸소 실천하던 중
“왜 그렇게 많이 먹어요?”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미팅 스케쥴이 연기되면서 점심 시간이 겹치던 날이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가 한 마디 꺼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업무상 마련된 식사 자리라면 분명 반 정도 여유롭게 먹고 우아하게 ‘잘 먹었다~’는 말을 꺼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리라.
단지 난 그 짧은 몇 분이 안되는 사이에 밥공기로 3그릇 분량을 먹었을 뿐이고 다 비운 이후에도 더 먹을까를 고민했던 것일 뿐. 이 모습이 괴팍하게 보였을지라도 내 이미지가 ‘깨작깨작~’ 먹고 수저 내려놓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지 않던가!
이런 것이 용산의 미덕이라고 해도 될지~
용산에서 밥 무제한 식당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
반나절 박스 손수레에 실어 힘들게 나른 이들에게
한 끼 6천 원에 배불리 먹이려는 식당 주인의 마음이라 치자
이런 상황에 월급쟁이의 궁색한 형편을 대입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돈을 좀 아껴보자는 심산에서 시작됐다. 노래의 한 소절처럼 “집 떠나와 버스를 타고 강남터미널에서 내리던 날~♬”내 수중에 있던 돈은 5만 원이 전부이던 그때.
당시에는 도와줄 사람도 그렇다고 도와달라고 할 형편도 안되었고 나를 도와줄 친인척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계획 없이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지금 이러한 나의 고민을 꺼내면 일부 형님들은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나의 확신은 단호하다. 분명 ‘말을 했더라도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 ‘서울 하늘 아래’내 보금자리가 있을까?
그러한 환경에서 나의 서울 생활은 오직 혼자 견뎌내야 하는 고된 일상의 반복과도 같았던 것.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월세를 계산해보건대 사실상 사회 초년생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수준에 근접했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고시원도 보증금이 없이 지낼 수 있는 조건 외에는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기에 어디든 내 몸 누울 공간만 있으면 좋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고시원에서 ‘나의 독립생활은 시작’되었고 1평의 위대함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됐다. 문을 열면 책상이 나오고 책상 끝은 침대 위로 올라가는 구조. 누우면 발 위에 책상이 있으니 자다가 꿈속에서 발차기라도 하면 그날 나의 발은 온종일 ‘시큰시큰’했다.
자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끼니 해결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겠다고 새벽부터 전전긍긍
도시락에 담아와 책상 위에 두고 다시 잠을 청하는 생활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나서 먹는 한 끼 만찬에 만족을
자는 것은 대충 해결한다고 쳐도 먹기는 쉽지 않았다. 고시원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라면과 밥은 반나절이 지나면 바닥을 보였고 이 때문에 일부 고시생은 아침 일찍 라면과 밥을 도시락에 담아 방으로 챙겨가는 웃지 못할 헤프닝을 반복했다.
나라고 달랐을까! 주말이면 일찍 일어나 마트에서 구매한 가장 저렴한 ‘락앤락’ 통에 밥을 담아 방에 두고 다시 잠을 청했다. 늦은 점심 즈음 일어나 식은 밥을 꾸역꾸역 먹기를 몇 개월째.
처음에는 3분 카레부터 시작했다. 좀 더 강한 맛이 그리워 볶음 김치를 구매했고, 좀 더 강한 맛이 필요할 경우에는 고추 참치를 구매했다. 어쩌다 한 번씩 특식이 생각날 때면 한솥 도시락을 들러 별도 판매되는 제육 볶음이나 소고기 불고기 반찬만 구매했다.
생활이 이렇다 보니 업무상 마주하는 식사 자리가 내게는 유일하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자리이자 평소에 접하기 힘든 너무도 일상적인 반찬이지만 그게 그리도 감사했다. 본업의 특성상 얻어먹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열심히 먹었을 뿐인데 “참 맛있게 먹네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이미지가 ‘복스럽다’로 굳어지기도 했다.
▲ 집 나오기 전에는 몰랐다. ‘하루 한 끼 먹는 소중함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난 고시원을 나와 나만의 공간을 확보했다. 그 차이는 보증금이 생겨 월세로 옮겼다. 일뿐 지금의 공간이라고 나의 삶의 질 향상과는 하등 연관이 없다. 단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비굴한 마음으로 비축해야 하는 것만 없을 뿐 나의 삶은 ‘오늘 뭘 먹지?’라는 고민을 해결해야 하는 일상의 반복은 매한가지다.
‘다포세대’가 된 이후 포기한 인간관계
이런 내게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밥 사주고 돌아가
힘내라고 격려하는 말 들을 때면 “난 왜 이렇게 살지?”
고민에 서러움이 북받치곤 해.
요즘 미디어에서 떠드는 용어 중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가 남의 일이 아니다.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하면 삼포, 여기에 인간관계와 집을 추가로 포기하면 오포, 여기에 꿈과 희망을 포기하면 칠포세대라고 하지 않던가! 내 나이 30대 중반을 넘긴 지금. 추하다 못해 궁색한 모습에 그저 진저리를 친다.
▲ 싫었던 ‘백반집 식사’가 맛있더라
“밥을 왜 그렇게 빨리 드세요?” 라는 질문에 설명할 길이 없는 이유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밥을 먹을 유일한 기회. 지금 아니면 언제 다시 밥을 먹을지 기약할 수 없는 삶이기에 난 밥을 먹는 것조차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뭐라고 해명하겠는가! 금요일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분량까지 미리 섭취하고 주말을 보내는 숙명. 주말에는 굶는다는 말을 하면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빠른 식사 속도, 성인병 위험 높여”라는 기사가 나온 바 있다. 따져보면 난 5분 이내에 밥 한 그릇은 비우고 30분도 안 되어 세 그릇은 먹는 셈이니 굉장히 안 좋은 식습관이다. 나름대로 합리화를 시키고 있는 모습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지만 ‘다포세대’로 접어든 내게 가장 현실적인 생활 방식을 난 찾았을 뿐이며, 이런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면 그건 서로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포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포기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면 그건 숙명과 다름없다. 그렇다고 자포자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단지 피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이 진저리가 나는 궁핍한 삶에서는 벗어나리라는 한 줄기 희망을 붙잡고 지금 난 발버둥 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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