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브라이언 K · 김현동(cinetique@naver.com) / 사진: 브라이언 K
+ 파워풀한 디젤엔진의 성능 만끽할 수 있는 2도어 쿠페 모델
+ 제로백 8.1초에 달하는 시로코 R라인은 드림카 인가?
대표적인 2도어 스포츠 쿠페 차량을 찾다보면 쉐보레 카마로와 함께 폭스바겐 시로코 R라인이 4,000만원 대 반열에 올라있다. 다만 두 모델이 2도어 쿠페라는 분류만 놓고 본다면 비슷한 성향이라 볼 수 있으나 속내를 살펴보면 전자는 미국의 머슬카 계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후자는 전형적인 도심형 스포츠 차량이라는 것에 있어 본질은 전혀 다른 차량이다.
게다가 폭스바겐 시로코 R라인은 디젤이라는 점도 따져봐야 하는데, 정숙성에 있어서 가솔린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가 지닌 상징성도 남다르다. 아우디, 포르쉐, 벤틀리 등의 굵직한 차량 브랜드를 폭넓게 아우르고 있는 단일 회사로써는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에서 출시한 2도어 쿠페의 한국입성은 아무래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개인적으로 IT 바닥에 몸 담고 있지만 사실,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가솔린보다 디젤엔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는 차세대 연료가 시대를 지배하겠지만 현재로서는 가솔린(하이브리드)이냐 디젤이냐로 갈리고 있고 점차 승용 디젤의 점유는 증가할 것이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마침 시승이 예정돼 있던 차량이 있는데, 크기가 작아 자신이 타질 못하니 한 번 시승을 해보고 소감을 얘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사 제작 용이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도 곁들어져 상대적으로 부담은 적었기에 흔쾌히 승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타려던 시승차는 예상과는 달리 문짝이 두 개가 달려 있었다. 그것이 나와 폭스바겐 시로코 R-라인과의 첫 대면이었다.
나에게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는 골프나 붕붕카(뉴비틀) 정도만 있을 법한 브랜드, 그래서 덩치는 작은데 가격은 드럽게 비싸고 그다지 실용적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자동차 메이커로 인식되고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파사트, 제타, CC, 페이톤 등 세그먼트를 가리지 않는 풀라인업에 투아렉이나 티구안 같은 SUV 까지 두루 섭렵하고 계시니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버린지 오래.
| SPEC
모델 ------------- 폭스바겐 시로코 2.0 TDI R-Line
길이 ------------- 4,250mm
넓이 ------------- 1,820mm
높이 ------------- 1,395mm
축간거리 --------- 2,578mm
공차중량 --------- 1,442kg
엔진형식 --------- I4 2.0 TDI (디젤)
배기량 ----------- 1,968cc (제로백 8.1초)
최고출력 --------- 170마력 (4,200rpm)
최대토크 --------- 35.7kg·m (1,750~2,500rpm)
변속기 ----------- 전자제어식 자동 6단
CO2 배출량 ------- 정보 없음
구동방식 --------- 전륜 구동(FF)
연비 ------------- 복합 15.4km/L, 고속도로 18.3km/L, 도심 13.6km/L
승차인원 --------- 4명
가격 ------------- 4,13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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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격적이면서 날카로운 느낌... 골프의 형제가 맞나?
이미 시로코 R-라인의 출시는 해외에 오래 전에 이뤄진 바 있다. 국내에는 비교적 늦게 출시가 이뤄졌다. 솔직히 이게 몇세대인지 언제 데뷔했는지 구차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한다. 순수하게 이 차의 느낌에 대해 접근하겠다는 얘기다.
첫 인상은 꽤 날카롭다. 골프와 같은 플랫폼 아래에 태어났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골프는 수 없이 봐왔고 타보기도 했다. 물론 GTI, GTD 모두 섭렵해봤다. 시로코는 이런 느낌과는 동떨어져 있다. 골프보다 더 낮고 넓다. 1.8m에 이르는 긴 루프는 수직의 테일 게이트로 뻗어 있다. 그래서 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달리기 성능에 있어서 기대를 하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전면부는 최신 트렌드를 따르는 유럽 차종과 비교해도 아쉬움이 없지만 출시 시기 때문인지 LED 램프와 같은 데코레이션적 요소는 생략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다. LED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간등이 적용돼 있어 기본에는 충실하다는 느낌은 준다. 전면 그릴은 단순하게 디자인 되어 있지만 하단에 공기 흡입구를 크게 해 스포티함과 냉각 효율을 함께 고려한 흔적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크롬을 덕지덕지 바른 것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시로코의 깔끔한 마무리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일단 측면은 2도어 쿠페라기 보다는 해치백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강인한 전면 디자인과는 달리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는 점이 약간의 아쉬움이랄까. 전면 디자인에 이어 조금 더 강하게 디자인 했어도 좋을 듯 하다. 그러나 지상고가 낮고 큼직한 19인치(루가노 Lugano) 알로이 휠이 매칭되면서 보기 좋게 마무리 해냈다고 평가한다. 18인치 정도만 되어도 좋았을텐데, 19인치는 조금 과한 느낌도 든다. 확실히 16~17인치 휠로 매칭했다면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후면부는 시로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전면부의 날카로움은 적지만 리어 휀더가 화끈하게 나오는 디자인은 정말 과감한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골프와는 다른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했으나 계속 바라보니 스포티한 느낌도 든다.
| 역시 골프랑 한 식구였나... 실내도 비슷
실내는 골프랑 비슷하다. 계기판이나 스티어링, 센터페시아 등 대부분이 골프랑 같다. 이는 시로코가 골프 플랫폼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개성 측면에서는 물음표를 갖게 한다. 물론 사용도 측면에서는 불만은 없다. 화려한 국내 차의 실내와 비교하면 휑할지도 모르겠으나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으니 시로코의 실내는 단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R라인 특유의 포인트라면 도어스커프 정도랄까!
이 차량에는 기본적으로 한국형 내비게이션(지니)이 장착돼 있다.... 있는데... 그냥 겉치레 정도라고 생각해 두면 된다. 반응이 애프터마켓의 그것과는 비교가 될 정도로 느리고 시인성도 썩 좋지 않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제외한 부가 기능은 나무랄 데 없다.
시트에 앉아 본다. 아무래도 달리는 쪽에 초점을 맞춰 그런 것인지 몸을 어느정도 단단하게 잡아주는 느낌이 좋다. 고급 비안네 가죽으로 만들어진 세미버킷 타입의 시트는 달리는 것이 집중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전동식이 아닌지라 처음 전동식에 익숙한 오너는 조금 당황하겠지만 쓰다보면 쉽게 적응된다. 시트는 빠르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상황에서도 충실하게 몸을 지지해 낸다. 여기에도 R 로고가 찍혀있다.
2도어지만 뒷좌석에는 시트가 마련돼 있다. 사람이 탈 수 있기야 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게 좋다. 어린 아이를 태우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성인이 타고 내리기에는 좀 그렇다. 자리 자체에는 불만이 없으나 여럿이 자주 차량을 이용하는 환경에서는 부적합하다. 트렁크 공간은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되지만 골프를 생각하면 약간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 디젤이지만 시동켜자 질주 본능 가진 야수로 돌변해...
시로코 R-라인에 키를 꽂고 시동을 켠다. 디젤 특유의 소리가 살짝 들리면서 약간의 진동이 스티어링에 전달된다. 하지만 소리 자체는 차분하다. 디젤엔진에 맞춰 어느정도 NVH 설계가 이뤄졌음을 예상해 본다. 얼마 되지 않은 디젤 엔진은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 상태라고 한다면 차후에도 꾸준한 관리를 통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동을 위해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이 차의 소리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난데 없는 스포츠카의 소리가 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알아본 결과, 이 차에는 액티브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장착됐다. 디젤 특유의 경운기 사운드를 듣기 좋게 가공해 상쾌한 드라이빙이 가능하도록 돕는다는게 이 장치의 역할이다. 부품을 구할 수 있고 내 차량과 호환된다면 한 번 DIY에 도전해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물론 이를 싫어하는 이도 있으리라...
낮은 차체에 저중심 설계된 차량은 가속 페달에 힘을 주자 파격적이지 않지만 제법 빠르게 바닥을 치고 나간다. 이게 정말 디젤엔진인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내달리는데, 이는 GTD와는 다른 느낌이다. 180km 까지는 막힘 없이 시원하게 가속하지만 그 이후에 도달하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린다.
시로코 R-라인에는 최고 170마력, 35.7kg.m의 최대 토크를 내는 2리터 TDI 엔진이 장착돼 있다. 골프 GTD와 같은 엔진이다. 하지만 낮은 지상고와 약간은 좁은 시야 때문인지 더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같은 플랫폼이지만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0-100km까지 가속하는데는 7.9초 정도가 필요했다. 제원상으로는 8.1초로 GTD와 같았지만 19인치 휠과 235/35 ZR19 규격의 피렐리 P-제로 타이어의 시너지 효과 덕인지 조금 빠르게 측정됐다. 휠스핀을 억제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100km 도달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동력도 뛰어나다. 초반 응답이 후반까지 이어진다는 점이 좋고 브레이크를 많이 전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밀리거나 하는 현상은 느끼기 힘들었다. 단, 브레이크를 살짝만 밟아도 중력의 위대함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으니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겠다.
기본적으로 밸런스는 매우 뛰어나다. 고속 주행 안정감도 그렇지만 코너링이 환상적이다. 낮은 지상고와 큼직한 휠, 타이어의 영향도 있겠지만 탄탄한 차체와 서스펜션 셋팅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게다가 ESC에 추가된 전자식 디퍼렌셜 록 XDS(Cross Differential System)의 채용으로 짜릿하면서도 정확한 코너링을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주행 질감 자체는 정말 그 어떤 스포츠카 못지 않게 재미있고 짜릿하다.
제조사에서 내세우는 최고 안전속도는 220km/h 이며, 측면 및 윈도우에 내장된 6개의 에어백이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물론 이들 장비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은 곤란하다. 그래봐야 2도어 쿠페의 한계는 존제하기 때문이다.
이 녀석의 장점은 달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혹자들은 시로코의 수입이 왜 디젤인 R-라인만 이뤄졌는지 아쉬워 할 수 있겠지만 이 차량 나름대로 매력은 충분하다. 바로 연비. 디젤인 만큼, 연비는 최고 수준이다. 공식 연비는 복합 기준으로 약 15.4km 지만, 실제 달렸을 때의 연비는 이보다 더 좋다.
연료가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무리한 주행을 반복했음에도 약 600km 가까이 주행했을 때의 연료게이지는 1/2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식 연료탱크 용량이 55L고 여기서 약 25L 정도를 썼다고 가정해도 평균 연비는 24km/L 정도가 되는 셈이다. 짜릿한 주행에 하이브리드 뺨치는 연비라니 솔깃하지 않은가?
| 제발 R-라인 말고 레알 R도 출시해주면 안될까요?
시로코 R-라인은 디젤 엔진으로도 충분히 짜릿한 드라이빙 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100% 스포츠카의 재미는 주지 못하더라도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 녀석을 따라잡을 차는 없을 것이라 본다. 물론 약 4,200만 원의 차량 가격은 다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독특하면서 운전 쾌감을 맛보고 싶다면 시로코 R-라인으로의 선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시로코 R-라인과 함께한 내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디젤 R-라인이 아닌 레알 R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니까 폭스바겐 코리아 관계자님... 만약에 이 글을 보시면 제발 레알 R 좀 출시해주세요. 현기증 날 것 같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