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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늘근도둑이야기, 황당한 두 도둑의 한탕 극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0. 2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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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현실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생각하는 머리 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몸을 감당하지 못한 두 도둑은 남의 눈을 피해 담을 넘는다. 그것도 풀려난 지 불과 1주일도 안 지난 짧은 기간을 틈타 벌어진 사건이다.

석방도 아닌 특사로 풀려난 엄연한 유예신분. 사소한 잘못에도 감방행을 면치 못하기에 일반인 같으면 기간만 지나라 하며 외출을 삼가겠지만 대범하게도 큰일을 하고자 알찬(?) 계획을 세운다. “제대로 한탕하고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놓고 걱정 없이 살아보세!” 라는 구체적인 틀까지 잡았다.

허황된 꿈인지 아니면 가능한 계획인지 알 길은 없다. 그렇게 두 도둑은 모두가 잠든 틈을 타 음산한 대저택 진입에 성공한다. 기술은 있다. 문제는 그 기술을 어디로 쓰느냐는 것인데. 누구나 큰 꿈을 가진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오랜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투자 끝에 돌아올 알찬 결실에 기대를 거는 것도 당연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투자가 존재한다. 박수를 받을 수 있는 투자도 있겠지만 비난을 받을 투자도 있다. 안타깝게도 두 도둑은 후자를 선택했다. 이미 불혹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만큼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두 도둑님. 경험이 많다보니 노하우도 제법 탄탄하다. 이제 건물 벽을 타거나 몰래 잠입하는 것에는 도가 텄다. 그것도 자칭 기술이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두 도둑. 누가 더 늙었는가는 중요치 않다. 하지만 더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 가는 중요하다. 지난 세월. 금전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둘의 욕심에 시작부터 티격태격 계획은 틀어진다.

문제는 더 있다. 어렵게 침입에 성공한 집이 좀 이상하다. 관객이 봐도 이상하다. 지나치게 큰 집. 게다가 경비원이 주기적으로 순찰을 다니며, 벽 한쪽에는 장군으로 보이는 대형 동상까지 존재한다. 이쯤 되면 낌새를 맡아야 하지만, 너무 노령화된 탓인지 혹은 눈치가 없는 것인지 그냥 휘젓고 다닌다.

분위기에 압도돼 긴장이 되는지 가방에 챙겨온 소주까지 마셔가며 화려했던 전성기를 회상한다. “내가 말이야~ 과거에는 화려했는데 말이지” 라며. 게다가 안주로는 멸치도 있다. 소주에 멸치 안주. 따져보면 크게 나쁘지 않다.


| 노련한 출연진이 선보이는 감초연기

늘근도둑이야기가 돌아왔다. 21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무대에서 관객을 웃겨가며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든 국가대표코믹연극이라는 팻말을 거머쥔 작품이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두 명의 도둑이 모의범죄를 공모하는 과정인데, 그 과정이 너무 어둡다 보니 눈에 뵈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어두운 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까.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는 그렇게 어두운 배경에서 관객의 눈을 손전등으로 비추는 센스를 발휘하며 시작한다.

늘근도둑이야기 2011년 판은 21년 역사의 결정판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화려한 출연진이 허를 돌리게 만들고 쉴 사이 없이 나오는 속사포 같은 대사에 보는 이 조차도 정신없게 만든다. 그리고 웃어야한다. 웃지 않으면 배우가 민망해 하기 때문일까? 그 것은 아니다.

기막힌 대사와 행동 때문에도 웃게 되지만 두 도둑의 어설픈 연기 때문에라도 웃어야 한다. 바보인지 아니면 바보인척 하는 것인지 좀처럼 구분되지 않지만 늘근도둑이야기는 그러한 호기심마저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것저것 앞뒤 따지면 이해하기 더 힘들다. 연극 속에서는 지금 있는 배경이 어디라는 것을 일절 알려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관객의 무한한 상상력에 맡겨졌다. 고위 재력가의 집이라는 설도 있고 혹은 국가 통수권자의 관저에 있는 미술관이라는 설도 있다. 장소를 집요하게 알아야 겠다면 후자 쪽이 더 어울린다.

늘근도둑이야기에서는 관객도 좋은 소품이다. 주최 측은 벽에 걸린 수많은 액자를 직접 걸어 표현하기 보다는 한명 한명에 달하는 관객을 액자로 표현했다. 두 주인공은 관객의 얼굴을 봐가며 좋다 싫다는 평가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딘가 공정하지 못하다.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후한 점수를 남자 관객이 받아들이기엔 그저 괘씸할 뿐이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감초연기를 선보이는 출연진은 이력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한다.

영화 반칙왕-가문의 영광에 출연한 김승욱, 대물-추노의 이대연, 살인의 추억-달콤한 인생의 김뢰하, 부당거래-드라마 파스타에 이성민, 화려한 휴가-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드림하이에 박원상 등 총 14명의 배우가 얼굴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연기를 펼친다. 여기에 오는 4월부터 지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늘근도둑이야기에서 수사관역으로 진가를 떨쳤던 최덕문이 중도 합류해 노련한 끼를 펼친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역시 프로는 프로답다. 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사회풍자연극의 대표작 이제는 국민연극으로 등극

연극 늘근도둑이야기가 대중에 선보인 것은 지난 1989년 4월 열린 동숭연극제 무대를 통해서다. 그리고 연수로만 22년을 거치면서 다듬어졌다. 극단 차이무의 민복기 대표가 연출까지 도 맡아 선보인 작품으로 특정 연령층의 관객과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은 시사코미디 연극이라는 기반에서 출발했다. 사실 극 내용에서는 시사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기에 시사코미디도 거리가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행이다. 나라 안팎으로 다양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은 이때, 시사까지 다루는 연극이라면 거리를 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게다가 소통이 아닌 불통이 대우 받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가 시사코미디를 통해 무슨 답답함을 풀겠는가!

한마디로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는 22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칭 족보 있는 작품이며, 시사코미디로 출발했지만 결국 2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시사코미디에는 시사는 빠지고 코미디만 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웃어넘기는 호탕함이 요구되는 기막힌 에피소드가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국민연극 반영에 등극했다.

무모한 두 도둑의 인생역전 에피소드를 다룬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제목조차 맞춤법에 맞지 않는 다소 엉뚱한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알아본 결과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냥 읽기 쉽게 풀어썼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그만큼 이해하기도 쉽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향하지만 두 도둑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쉽지만 어려운 연극이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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