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바다에서 생사고락을 다했던 노인은 오늘도 말이 없다. 별자리와 바람의 방향, 날씨, 조류 변화 등 자연의 움직임을 몸소 체감하며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제는 모두에게 퇴물 취급 받은 힘없는 노인일 뿐이다.
게다가 최근 84일 동안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올리지 못했으니 동네에서는 저주를 받았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주변에서는 저주 받은 노인 혹은 재수 없는 노인이라는 입에 담기 힘든 험담까지 내 뱉었지만 노인의 개의치 않았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패배당하기 쉬운 법이지. 하지만 난 절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노인, 오늘도 노인은 바다를 이불삼아 배에 몸을 기대고 오늘도 바다를 향한다.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나긴 싸움의 끝이 모습을 드러낼 쯤. 노인의 곁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거대 물고기가 매달려 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고선에 의지해 난폭군으로 묘사되는 상어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버텨왔지만 결과는 참당했다.
버려도 좋으련만 노인은 기어코 부둣가로 향한다. 그리고 또 한번 중얼거린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보고 깜짝 놀라겠지.” 어쩌면 늙고 허약해진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무언의 표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향한다. 그 모습은 큰 전투를 이겨낸 장부를 연상시킨다. - 노인과 바다 내용 中
/ E.헤밍웨이의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가 연극으로 각색됐다.
1952년 발표된 미국의 작가 E.헤밍웨이의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가 연극으로 돌아왔다. 원작의 딱딱하고 이해하기 난해한 고전 명작이 아닌 원작에서 나오던 소년이 건장한 청년이 되어 노인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각색된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연출가는 “명작 소설을 통해 감동을 안겨주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변화 이유를 밝혔다.
내레이션 기법을 넣어 관객으로 하여금 이해를 돕고 고전 명작에 익숙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 새로운 감동을 전달한다. 대형 무대에 화려한 효과를 기대할 순 없다. 작고 소박한 무대에 소품이라곤 나무로 제작된 고목에 불과하다. 출연진 또한 두 명에 불과하지만 전달되는 감동은 기대 이상이다.
과거 60~7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부모님 세대에게는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노인과 바다. 변변한 대중매체가 없어 도서에 친숙한 과거와 달리 다양한 매체에 노출된 요즘 세대가 접하기에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이제는 옛 추억의 도서로 자리매김 하면서 이름뿐인 작품의 대학로 무대 입성이 남다른 의미를 가진 것은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거처야 하는 정규 교육과정만 12년. 가혹한 학구열에 지식 습득에만 여념 없는 우리 자녀.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암기로 터득한 지식이 아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성이라는 것. 미 대통령 오바마의 연설이 인종 차별이 극심한 미국 시민의 마음을 움직인 것 또한 비슷한 사례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배우기 힘든 감성을 자극하고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연극 노인과 바다는 지식 습득에 지친 우리 자녀에게 부모님 세대의 향수를 간접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세대 차이를 줄여주며, 고전 명작을 통해 삶의 지혜를 제시하는 남다른 의미도 담고 있다. 때문에 관객층 또한 남녀노소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극한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세대가 변해도 변치 않은 가치를 지닌 명작은 우리 곁에 남아 부모세대에게는 지난 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자녀에게는 삶의 지혜 역할을 하며 대물림되곤 한다. 지난 11년 2월 11일부터 오픈런 공연 중인 연극 ‘노인과 바다’는 오랜 시간 선택 받아온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손색없는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해하기 난해하고 딱딱하다고 일컬어지던 고전 명작의 화려한 컴백. 권장도서로써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때문에 사랑받기 힘든 두 가지 얼굴을 지닌 지난 세월의 편견이 한편의 연극으로 인해 금이 가고 있다. 무엇이든 일을 진행함에 있어 거쳐야 하는 순서가 있다면, 경험과 경륜 여기에 지식으로 완성된 바탕을 결코 무시하고는 따라갈 수 없다.
연극 노인과 바다는 지난 세월을 묵묵히 말없이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장년층에게는 아늑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계기로, 절은 세대에게는 사회 진출과 함께 겪게 되는 어려움 앞에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남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게다가 클라이맥스로 지목되는 상어와의 사투는 최고로 손꼽힌다. 결과만 중요시 하는 오늘날의 사회에 비수를 내 꽂는 장면은 관객에게도 만감을 교차하게 하는 최고의 장면이다.
ⓒ글·사진 김현동
cinetiq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