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1월 08일] - 지난 정부부터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손꼽히며 공격적인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를 꼽으라면 역시 3D 프린팅 분야다. ‘제조업의 혁명’이라 불리며 비전문가도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물건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솔깃한 이야기에 대기업, 스타트업할 것 없이 몰려들었다.
작년 1월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시장규모는 2016년 2,971억 원 대비 16.8% 증가한 3,469억 원, 관련 기업 수는 253개에서 302개로 늘었다.
그러나 2019년을 맞이하고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지금, 3D 프린팅 산업 관련 소식은 상대적으로 뜸해진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고유의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중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에 밀리거나, 유의미한 산업을 만드는 데 실패하며 폐업하거나 업종 전환을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업계는 실질적인 3D 관련 기업은 50%도 채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산업에 대한 시각 바꿔야…3D 프린팅이 할 수 있는 분야 따로 있어
2014년 1월 ‘일루미네이드(대표 유현승)’를 창업한 홍찬우 이사는 3D프린팅 산업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존 대량생산 체제의 공정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합니다. 플라스틱 사출방식의 기존 제조업을 3D 프린터로 대신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해요. 3D 프린터가 대신할 수 있는 산업의 장을 찾으면 되는 겁니다. 일정한 패턴이 없는 3D 프린팅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진출해야 해요.”
일루미네이드가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의료기기다. 표면이 불규칙적이고 울퉁불퉁한 비정형적 패턴이 사람마다 다른 인체에 적용되었을 때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창업 전 미국의 장애인 단체에서 휠체어 제작을 했던 경험에서 얻은 발상이다. 그는 “사람마다 장애의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제각기 다른 휠체어를 제작해야만 했다”며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는 기분이라 힘은 들지만, 개인화 바람이 불며 성공의 요소를 봤다”고 말했다.
휠체어 개발로 3D 프린터에 눈 떠…대웅제약 자회사로 편입
캐나다 영주권을 갖고 해외에서 학업과 직장을 이어가던 홍 이사는 한국의 3D 프린팅 투자 열풍에 주목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중소기업청 청년창업사관학교에 합격하며 1억 원을 지원받고 일루미네이드를 설립했다. 창업 초기부터 세라믹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대웅제약의 투자를 받아 자회사로 편입, 맞춤형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3D 프린팅 산업에서 가장 염려하는 것 중 하나는 인재 양성이 어려운 한국의 교육환경이다. 장비만 잘 다룬다고 되는 것도, 소프트웨어만 할 줄 안다고 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산업디자이너를 뽑아봐도 전통적인 디자인에만 사고가 머물러있는 경우가 많다”며 “전체 그림을 보고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를 생각하며 자신만의 융합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이사는 작년 11월 독일의 3D 프린터 전시회에 참가한 후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3D 프린터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산업을 목격하며 시장의 크기에 고무됐고, 장비와 교육이 3년 이상 뒤떨어져 있는 한국의 현실 때문에 동시에 염려를 느낀 것이다.
세계는 3D 프린팅 산업 본격화…근시안적 시각 버려야
“메탈 3D 프린팅 분야는 산업체에 들어갈 80~90%는 준비가 끝나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단순 하드웨어만 전시하는 게 다였는데, 이번에는 소재를 처리해주는 기계, 출력 후 찌꺼기를 리사이클링하는 업체, 소프트웨어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 어떤 프린터를 써야 하는지 컨설팅해 주는 업체 등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었어요. GE 같은 큰 기업은 이 모든 과정을 3D 프린터로 해결하는 수준에 이르렀어요. 우리나라도 당장 실적을 기대하며 근시안적인 접근을 하는 것보다 정부와 기업이 큰 목표와 긴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경영진과 직원 사이에 비밀이 없고, 수익이 생기면 철저히 지분에 따라 나누고, 1원 단위까지도 어디 썼는지 공유한다는 일루미네이드. 홍 이사는 진정한 공유경제는 기업 내에서 철저히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홍찬우 이사와 1문 1답〉
Q. 업계 전문가로서, 3D 프린터 분야가 이토록 ‘뜬’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A. 모든 열풍은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2013년 미국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전 세계적으로 이슈화시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울러 대량생산 시대가 지고 맞춤, 개인화가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3D 프린팅 산업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진 것으로 본다.
Q. 한국의 3D 프린팅 산업에 대한 시각은? 책도 집필했던데.
A. 2014년부터 약 70~80개 업체가 새롭게 마구 생겨났다. 그야말로 붐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력이 없거나 일반인 판매에 실패한 업체들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몇 개 남지 않았다. 해외보다 3년 이상 뒤떨어진 기술력도 문제다. 책은 디자이너들을 겨냥했다.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처음 인풋(input) 데이터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가 많아져야 한다. 함께 일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장비만 갖고 되는 산업이 아니다. 그 부분에 관해 썼다. 3D 디자이너가 전부 다 게임 시장으로 빠지는데 지속적인 결과물을 내는 산업은 아니다. 실제로 모델링을 하는 중간 과정을 알려주는 책이다. 재미는 없다(웃음).
Q. 회사 자랑을 한다면?
A. 공정하고 열려있다는 것이다. 특허를 하나 내면 보통 기업들은 윗사람 이름을 쓴다. 우리는 철저히 담당자의 이름을 위에 올리고, 이를 통해 수익이 나면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고 보면 된다. 1원 단위까지 모든 수익과 비용을 직원들에게 알리고 의논한다.
Q. 예비 창업자들에게 조언한다면?
A. 일루미네이드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고 남들과 다를 수 있는 건 모든 직원이 돈을 좇아 모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연봉을 받아가며 일했다. 조그만 기업이 버틸 수 있는 건 열정적인 노력 딱 한 가지인 것 같다. 대기업과 비교하면 기술이나 자금력 면에서 이길 수 없다. 24시간을 얼마나 집중하고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아울러 이 분야는 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하나의 전문가보다 여러 영역을 넓게 공부했으면 한다.
Q.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A. 은퇴하면 봉사를 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의 현지 무기물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고 싶다. 아프리카는 아직 물통이나 그릇도 없는 경우가 많은데,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현지인들이 필요로 하는 새롭고 지속적인 산업을 만들어주고 싶은 꿈이 있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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