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한 편으로 서스펜스 스릴러의 정석을 체감한다.
+ 드라마인가? 연극인가? 눈앞에 펼쳐진 한 편의 수사반장
연극을 이해하는데 IQ가 뭔 필요가 있겠냐만 이 작품 친절하게도 IQ 100 이하는 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단 말인가 생각하게 되는 그 순간 친절하게도 심혈을 기울여 봐달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연극을 보면서 이해하기 위해 애쓰라고 강요하는 작품은 그 장르조차도 생소한데. 추리극? 액션? 그렇다고 멜로는 더욱 아니다. 그러하면 복합장르란 말인가!
이상하게도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감이 충만하다. 반복되는 긴장감에 한편으로는 짓누르는 느낌의 무거운 압박감. 쓸쓸하지만 순간순간 웃게 만드는 묘한 재치까지 다양한 장르를 고루 섭렵하고 있는 한 편의 작품을 마주한 그 순간 떠오르는 장르가 있으니 “이건 드라마야!”라는 외침이다.
주최 측의 설명을 차용하자면 코믹 서스펜스 스릴러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너무 거창하게 설명한 나머지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막을 순 없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연극을 보면서 드라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은 처음이 아닐까 한다. 딱히 코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한 여운이 남는 것도 아닌데도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묻어난다. 2012년 6차 앙코르 공연을 시작한 연극 ‘그 놈을 잡아라’가 그렇다는 말씀.
공연명: 그 놈을 잡아라
공연장: 드림시어터(구 PMC 소극장)
공연기간: 2012. 05. 11 ~ 오픈 런
문 의 : 드림시어터컴퍼니 070)8780-0096
홈페이지 : http://club.cyworld.com/dtc-g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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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내에 찌든 남자냄새 베어 나오는 작품
시작부터 왠지 모를 비위가 상한다. 바람하나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꽉 막힌 사무실에 목이 다 늘어진 헐렁한 셔츠차림의 형사가 등장한다. 보고만 있어도 ‘더럽다’ 그 모습은 마치 책상 위 재떨이에는 수북하게 쌓인 담뱃재가 가득하고 서랍에 대충 던져 둔 양말은 몇 번은 뒤집어 신었는지 지저분하다 못해 고린내가 풀풀 풍기는 것과 어울리는 이미지랄까! 작품 속 주인공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왠지 너무 캐릭터가 친환경적이다.
성격은 또 얼마나 저돌적인지. 사건을 진득하게 조사하는데 필요한 치밀함과 분석력은 온데간데없이 막무가내로 들이대는데 일가견이 있다.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다. 하지만 이 형사를 통해 관객은 인간냄새 풀풀 풍기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엄연한 사실인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흐트러진 상태의 떡진 머리는 기름져 있고, 표정을 보아하니 마지막으로 집에 들어간 것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지쳐있다. 스트레스 털어버릴 곳이라곤 길 건너 순댓국밥집인데, 먹으면서도 맛없다고 푸념 일색이다. 그러면서도 매번 찾아가는 모습하며 매사가 귀차니즘에 찌들어있다.
여과 없이 표현했기에 살짝 의심도 되겠지만 실제 연극 ‘그 놈을 잡아라’속의 캐릭터가 이렇다. 꾸미고 다듬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극중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큼의 리얼리즘을 발휘하고 있으니 작은 소극장위에서 마주한 관객이 느낄 현장감에 대해 두말해서 뭐하리. 뻔한 사랑이야기나 뻔한 멜로가 아니기에 어디로 튈지 예상되지 않는 극은 점점 남자들만의 세상으로 관객을 이끈다.
| 시작은 살인사건 하지만 살펴보니 자존심 싸움
그렇다 보니 주최 측의 농간으로만 보이던 코믹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구색을 찾아야 할 순간도 마주한다. 해답은 극의 시작에 있다. 비가 오는 날 발생하는 살인사건. 그것도 매번 같은 날 3월 7일. 음력이던 양력이던 개의치 않고 3월 하고도 7일이 되기라도 하면 매년 반복되는 살인사건. 이에 좌충우돌 갈피를 못 잡고 휘둘리는 경찰을 보며 관객은 무능함에 넘어 울분을 삭힌다. ‘그 놈 하나를 못 잡아서’ 라는 화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따져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디까지는 연극은 연극이니깐.
살인사건과 함께 시작된 시나리오는 자신을 드라마 작가라며 신분을 속이고 접근한 극중 배역 남지운 작가를 통해 본격적으로 물살을 탄다. 사건이 발생하는 그 장소마다 등장하고 휘젓고 다니면서 경찰 행세를 하는 남 작가의 신출귀몰한 행각은 결국에는 발각된다. 뒤늦게 눈치 첸 조용두 형사의 배신감을 모를 리는 없지만 ‘그럼 그렇지’하는 안도가 먼저 나오는 건 무슨 연유인지.
타이트하게 짜인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살인사건과 늘 한 발 늦게 도착하는 조용두 형사의 뒷북 행차. 그 투박하고도 거친 말투 속에 묘한 인간미가 녹아 있긴 하지만 동시에 무능함의 전형도 보이고 있으니 암울한 현실이 아니꼬울 뿐이다. 관객에게만 IQ100 이상을 논하지 말고 극 중 형사의 IQ도 살짝 의심되는 순간이다. 앞뒤 꽉 막혀도 저렇게 막무가내로 무식할 수 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만큼 물불을 안가리고 행해지는 무식한 행동과 말도 안 되는 변명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안타까움이 교차하며 극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시작은 살인사건 이었지만 나중에는 신분을 위장하고 접근한 남지운 작가와 조용두 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두뇌싸움이 긴장과 재미 사이를 정신없이 오간다. 여기에 간간히 등장하는 멀티맨과 멀티우먼이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행해지는 입담과 재치 가득한 몸동작을 보는 쏠쏠한 재미가 연극 ‘그 놈을 잡아라’의 숨겨진 코믹요소다. 촘촘한 수사망을 비웃기라도 하 듯 날뛰는 연쇄살인마와 조용두 형사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구심점이랄까!
| 막걸리 한 사발에 섞인 애환 들이켜 보니
하지만 보는 내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연극 ‘그 놈을 잡아라’를 보고 있으면 과거 안방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수사반장’이 그 것. 그때에도 그랬다.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형사의 이미지와 범죄가 예고하고 터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에 무능함을 한탄하며 들이키는 한잔 술잔에 삭혀버린 애환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마찬가지로 연극 ‘그 놈을 잡아라’에서도 막걸리를 둘러싼 애환이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죽네 사네 했지만 결국에는 남지운 작가나 조용두 형사 모두 상처받은 영혼으로 드러난 그 순간 측은함에 두 사람 격려하고픈 마음뿐이다. 초반엔 긴장과 스릴에 관객이 숨죽여야 했으나 후반에 들어선 두 사람 모두 세상에 상처 받고 버림받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웃음 보다는 안쓰러움과 한숨이 짙게 묻어나온다.
한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마음에 묻고 또 다른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추억에 묻어야 했던 사실은 관객의 가슴도 먹먹하게 만든다. 긴장하다가 웃고 어느 순간 애절하게 변하는 분위기 하지만 잠시 후 다시 웃게 만드는 빠른 시나리오 전개는 극의 재미뿐만 아니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초를 다투는 긴박감을 연출한다. 이 작품을 보며 딴 생각 할 여유가 없는 것은 빠르게 급변하는 스토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 진득한 재미와 삶의 해학을 동시에 담았다.
상업 작품의 공통점인 억지웃음이나 허탕함을 남기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렵거나 정신없게 만드는 해학이 숨 쉬는 것도 아니다. ‘범죄’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는 잔악무도한 연쇄살인 사건 또는 실체를 모르는 연쇄살인 범을 쫒는 과정을 그려낸 나름 심오한 작품이다. 구태여 꼽는다면 약간의 코믹요소가 가미됐으며 캐릭터 하나하나가 뽐내는 개성이 어우러져 참신함이 돋보인다는 것.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작품은 연극 보다는 한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대학로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형식 임에도 자꾸만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중독성을 발휘한다. 혹자는 그랬다. 웰메이드 연극이라고. 의미인 즉슨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작품이 주는 진정한 재미를 알고 싶다면 연극 ‘그 놈을 잡아라’가 유일한 대안이다 는 것. 예상컨대 이 작품을 견제할 만한 작품 당분간 등장하기 어렵다. 그만큼 변질된 공연계에서 손꼽히는 몇 안 되는 작품으로 연극 ‘그 놈을 잡아라’는 상업연극이 아닐지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조용두 형사 역에는 정형석, 윤상현이 임형사 역에는 허지나와 김선혜가 더블캐스팅 열연했다. 남지운 작가 역에는 송동환, 이중호 역에는 이윤선, 멀티우먼 역에는 곽수정, 박준석이 참여했다. 멀티맨 역에는 한승수와 하성훈이 최형사 역은 유철중이 연기 했으며 선희역은 박상민 배우가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