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7일] - 유쾌하지만 발칙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그 자를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이같이 불렀다. 당대 최고의 입담꾼 전기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제법 거나하게 취한 상태인데, 무릇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에 술이 빠질 수 없겠다. 주거니 받거니 춤도 추고 음주·가무 한번 제대로 즐기니 분위기 한번 흥이 오를 대로 올라 신명 난다.
오가는 내용이 궁금한 나머지 귀 쫑긋 세워 들어보니 에구머니나~ 그저 망측할 따름이다. 오늘날에나 남녀 간의 사랑이 아름답지 과거에도 그러한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대상이 동성 간의 이야기라면 행여 누가 들을까 싶어 조용한 수군거림이 상식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조차도 한방에 무너뜨리고 욕망을 무대 위에 올리려 한 풀이 하듯 표현해낼 수 있는 자리였으니 사람들은 이곳을 당대 최고의 비밀스러운 공간 금란방(金亂房)이라 했다.
아무리 가무극이라 하지만 극 중 배경인 18세기 조선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는 표현이 역설적으로 가당키나 할 소리인가 싶다. 물론 그 말에 굳이 토를 달고 싶지 않다. 분명한 것은 영조가 엄하게 다스리던 금주령에 민초는 억압된 본능을 풀어낼 곳이 이곳에 유일했다는 것.
좋게 말해 금기가 허용된 공간이지 이곳에 단속반에 들이닥치기 전까지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든 소재라면 일명 ‘야설’이었고 그 수위도 18금을 지나 19금을 코앞에 두던 상태였다. 그렇다면 사대부 정신을 중히 여기고 삼강오륜을 따지던 시대적 배경이 어쩌다 이처럼 추락했을까?
온몸을 똘똘 감싸고서야 외출할 수 있던 당대 여성을 억압하던 모든 굴레는 마치 오늘날 억압하고 탄압받던 여성이 인권 해방을 외치는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 와중에 남성성을 상징적인 권력이라 여기던 궁궐에서는 타락한 임금의 속된 본능을 충족고자 급기야 서간 관리자 김유신이 민가에 내려와 금기를 깨나가는데, 극은 이러한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의지가 있돼 허락되지 않던 시대상에 여자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이 유일했으니 극 중 정희와 해후의 인형극에는 절실함을 넘어서 슬픔까지 묻어있다. 아마도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에 고개 숙여야 할 가련한 여식이자 동시에 얼굴도 모른 채 억지 결혼을 해야 할 여인의 미천한 운명을 표현하기에는 수동적인 움직임만 허락된 인형 이외에는 시대 배경을 녹여낼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은 해석에 혹자는 너무 과도하게 나아간 것 아닌가! 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점에 대해 일부는 인정. 하지만 분명히 짚고 가야 할 점이라면 금란방이 유쾌 상쾌 통쾌를 내세우는 가무극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대부를 상대로 감히 여자가 다그치는 모습 하며 사랑에 얽힌 사연을 꺼내 들고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는 모습, 남자가 여자로 위장해 여성의 본능에 한발 다가가는 시늉은 감히 한마디 하건데 그 어떠한 것도 허락되지 않는 여성의 운명같이 비장하며 동시에 몸 달아올라 추스르지 못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듯 도발적이다. 어쩌면 가무극 금란방이 내세우고자 했던 것이 억압당하던 금기를 무너뜨리고 관리가 아닌 존중을 받고자 했던 여성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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