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만에 돌아온 영화 속 감동, 재현할 수 있을까?
+ 엇갈린 인연에 애간장 태우게 만드는 순박한 사랑이야기
정말 이런 사랑이 있을까 싶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얼마나 사랑했기에 시공간을 초월해 한 사람만을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가정이 있으며 학교 선생님이라는 번듯한 직업을 지닌 자가 게이라는 오명을 써가면서까지 모든 것을 다 버릴 정도라면 더 이상 설명해서 뭐하랴.
마음속에 간직한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모습은 집착 이전에 순수한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다만 행해진 방식에 있어 좀 심하게 비하시켜 표현한다면 집착으로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에 애절했지만 안타까운 사랑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었다.
물론 대중이 접한 영화 속의 영상은 '사랑' 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충분히 아름다웠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었지만 뮤지컬은 우려했던 한계를 넘기에는 글쎄~ 소통했다고 보기에는 시나리오가 다소 빈약한 것. 2001년 작 이병헌, 이은주 주연의 '번지점프를 하다' 에서의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2012년 뮤지컬로 태어난 먼지점프를 하다에서의 사랑은 안타까움이 너무 짙다.
그러서일까! 영화보다 애절함이 더욱 짙었던 두 주인공의 엇갈린 후반부 이야기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비오는 날 시작된 두 사람의 운명 같은 만남 속 이야기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였다면 뮤지컬은 교통사고라는 복선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가깝다. 영화를 먼저 떠올렸다면 다소 느낌이 색달라 보이는 작품은 그렇게 10년이 넘은 세월을 지나 2012년 뮤지컬로 각색돼 우리 곁에 돌아왔다.
영화로도 큰 인기를 끈 작품인 만큼 기본 배경은 익히 알려진 것과 다르지 않다. 첫 만남은 비오는 날 버스정류장 앞에서 이뤄졌다. 갑자가 쏟아지는 장대비에 소리 없이 우산 속으로 들어온 그녀. 같이 쓰자는 말에 목석이 된 것 마냥 굳어버린 남자주인공의 태도는 보고만 있어도 '킥킥'거리며 웃음이 나온다. 긴장하면 딸꾹질 하는 몹쓸 버릇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괜스레 머슴적다. 객석에 앉아만 있어도 사춘기 소년이 풋풋한 첫 사랑을 시작하던 그때의 그 기분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이런 기분 오랜만에 느껴본다.
알듯 모를 듯 옆에서 가슴 설레게 하는 여학생의 고혹적인 매력. 그러다 훌쩍 떠나버리는 뒷모습만 하염없이 보며 가슴앓이 해본 경험이 시작부터 관객의 마음을 쥐어짠다. 풋풋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짝사랑의 애절함이 동시에 교차하며 오글거림을 선사하는데 연애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런 사랑은 십중팔구 질투심 자극할 만한 장면이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봐야 할 작품이다.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건 여타 작품과 다르지 않지만 사랑의 진행은 느리지만 진솔하게 표현됐으며 여기에 시대적인 배경이 더해져 부모세대라면 야릇한 향수에 심취할 수 있다. 눈만 마주쳐도 불꽃이 튀던 현 세대의 화끈한 사랑이 아닌 은근한 불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과거의 진득한 사랑이 관객의 애간장을 태운다. 혼자 본다면 왠지 슬퍼질 것만 같다.
| 동성애를 다룬 비극적인 사랑
다시 배경은 17년이 지났다. 입영영차라는 구구절절한 소회를 뒤로 하고 극은 2막에 들어서 1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시작된다. 이 무렵에도 극 중 손가락 걸고 한 여자만 사랑하겠다는 주인공은 자신의 고백을 지키리라는 굳은 결심을 다짐한다.
여자가 죽던 그날 태어난 아이의 한 마디 "젓가락, 숟가락의 시옷, 디귿 받침이 붙은 이유"를 묻는 장면이 되풀이 되면서 남자는 17년 전의 입대 일을 떠올리는 시점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사제지간에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며 복선의 시작이 예고됐다. 마치 비 오던 그날 남녀 주인공의 인연의 시작을 알렸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의 비극적인 장면도 섬세하게 표현 했다. 대상이 남자라는 것과 수군거리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의 참담함을 극으로 몰아갔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지극히 공감 가지 않지만 오죽 사랑했으면 이라는 심정 전달에는 부족하지 않다. 무엇보다 극은 인연의 고리를 재차 강조하고 있는데 무대를 뺑 둘러싸고 스크린에 투시되는 흰색 선은 시작 전부터 관객을 맞는다. 그렇다보니 아무런 음악도 없이 한 줄기 선만 펼쳐진 공허한 무대를 보며 "저게 뭔가?"라는 의문이 남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 다소 큰 무대가 재미를 반감시켜
다만 중극장이 아닌 소극장에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본 작품은 이병현과 (故)이은주 주연의 '번지점프를 하다'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시작 전부터 관객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5년의 창작 과정이 더 해졌고 지난 2009년에는 시범 공연을 통해 작품의 론칭을 알렸다. 그리고 3년이라는 숙성기간이 지나 정식으로 무대에 오른 작품은 시작부터 기대 하던 것 이상의 대형 캔버스 위에 화려하게 담아져 관객을 맞았다.
인연이라는 매듭 강조하기 위한 의도 이었던 듯 무대를 가로지르는 한 줄기 선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펼쳐지는 일련의 사연들이 연출의 고뇌를 알게 한다. 처음 선보인 창작뮤지컬이기에 그 어려움이 한두 가지에 그쳤겠는가.
그렇게 펼쳐는 효과는 큰 무대를 이분법으로 활용해 퍼즐 맞추기 하는 것처럼 사연이 하나하나 펼쳐졌다. 좌측이 과거라면 우측은 현재 그리고 다시 좌측의 과거 이런 식의 교차효과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집중도 면에서는 반감시킨 요인이다. 큰 무대에서 전해지는 큰 감동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뮤지컬이라는 기본 틀에 영화가 줬던 감동이 섞여 재미를 선사했지만 무대가 지나치게 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조금은 더 작았더라면 관객이 마주했던 일련의 사건이 좀 더 진솔하게 다가갔을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 아름답게 보여야 할 사랑이 다소 우울하게 보이는 점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 부모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
무려 10년이다. 강산이 바뀌어도 서너 번은 바뀌었음직한 세월을 탄 영화 속 작품이 창작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관객 앞에 섰다. 극은 1막을 통해 80년도의 배경을 살려 냈고 2막을 통해 2000년대의 세련미를 더했다. 중년의 부모세대라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일련의 사건이 야릇한 향수를 자아낸다.
입영열차라는 배경을 깔아놓고 막걸리와 장발 그리고 청바지라는 키워드를 놓고 그때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잘 녹여냈다. 공중전화라는 도구를 통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그리움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낯설지가 않다. 그때가 아니면 체감할 수 없던 이야기가 극중 곳곳에서 드러난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세대차이가 난들 이런 장면을 어찌 공감하지 않겠는가.
최고의 명장면은 극 마지막에 나온다. 인우가 입영열차를 타는 그 시점이다. "늦게라도 간다고 기다려 달라는"주인공 태희가 끝내 그 자리에 나오지 못했던 사연이 그 것. 영화 속의 그 장면에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사랑하는 남자를 보기 위해 뛰어가는 여자의 모습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장면이다.
물론 전반적인 작품의 줄거리만 보면 동성애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랑에 목마른 학교 선생이 학생을 통해 과거의 첫 사랑을 회상해낸다는 다소 뻔뻔한 스토리라는 것이다. 비난을 맞아도 부족할 판에 사랑을 이뤄낸다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진행이지만 그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전달코자 했던 의미는 '인연' 이라는 매듭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누구였던 간에 사랑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아름답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는 극중 명대사만큼이나 영화와 뮤지컬로 선보인 '번지점프를 하다'도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극적인 하룻밤, 막돼먹은 영애씨, 풍월주의 이재준 연출, 뮤지컬 스위니토드의 Adrian Osmond 각색/연출의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오는 9월 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무대에 오른다. 인우 역에 강필석, 김우형이 태희 역에 전미도와 최유하가 더블캐스팅 됐다. 현빈 역에 윤소호와 이재균이 대근 역에 임기홍과 진상현이 참여했다. 혜주 역에 송상은, 재일 역에 김성일, 인우아내 역에 김경희에 열연했다. 이 외에도 김성현, 안재영, 김찬호, 황호진, 최종선, 박태영, 이효림, 신혜원, 이경진, 강지혜가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