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김현동(cinetique@naver.com)
방송인 김원해 프로필 바로가기(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9B%90%ED%95%B4)
[2012년 07월 25일] - "전 그냥 평범한 배우인데……. 내세울 건 없어요"(웃음)
여느 배우가 이렇게 소탈한 심정으로 자신을 소개하겠는가. 그럴싸하게 포장해도 부족한 상황에 연거푸 별다른 것은 없다며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소심하게 내 뱉는 말과 달리 외모는 선이 굵은데다가 카리스마 넘치는 무거운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어두운 조직의 두목 캐릭터가 자꾸 떠오르는데, 나만의 착각일까? 의문이 들었다.
혹시나 하고 떠봤더니 "주변에서 권유받은 적 있습니다. 악역이죠."라고 말한다. 사람 보는 건 다 똑같구나 하고 괜스레 멋쩍은 웃음을 지어본다.
그 와중에도 미동도 없는 얼굴 표정. 무대 위에서는 천의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연기력을 펼치는 반면 이 순간은 평범하기 그지없으니 배우는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보다 더 명확히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배우가 대학로에 몇이나 되겠는가!
연극 허탕에서 사기를 쳐 감옥에 오지만 강간범이라는 웃지 못 할 죄목을 뒤집어쓰고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는 장덕배 역의 김원해 배우는 시작부터 남다른 인상을 심어주며 캐릭터를 굳혔다. 배우 같지 않은 걸쭉한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고 싶은 생각은 대화가 중반을 지나면서 부터다.
진솔한 목소리에는 40년간의 오랜 연륜이 묻어 나왔다. 군더더기 없는 대화라는 것이 이보다 더 일치할 순 없다. 맺고 끊음이 정확한 문장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캐묻고 나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 속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동시에 교차했다.
그랬다. 배우라는 직업이 누구에겐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고 누구에겐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으나 배우 김원해 에게 배우란 목표나 선망이 아닌 하나의 삶 자체였던 것. 그래서였다. 본인 스스로에게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다며 채찍질한다.
무대에 처음으로 선 것이 10대 무렵이니 근 30년이 넘은 세월을 연기자로 보내고도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말하는 배우다. 게다가 고등학교 당시에는 뛰어난 연기력을 보인 배우에게만 주어지는 최우수 연기상까지 수상한 이력을 지녔다. 스스로에게는 아마추어라며 평범함을 강조했지만 사실상 고등학교 때 이미 연기력 부문은 프로라고 인정 받아온 것.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배우가 자신을 평범한 배우라고 언급하겠는가. 재차 물어봐도 한결같다. 그렇지만 김원해 배우는 그냥 평범한 배우라며 자신을 치켜세우기 보다는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평범하지 않은 최고의 찬사를 받아도 부족한 김원해 배우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남과 달랐던 유년시기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딱 김원해 배우를 연상시킨다. 아주 어린 시절 무대를 보면 마냥 가슴이 설렜던 아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기도 부족하던 중학교 시절 무대를 보면 왠지 모를 기대감에 끌렸다고 했다. 부푼 마음을 가다듬고 공연 무대에 첫 발을 내딛던 시기 넘치는 끼를 좀처럼 주체하기 못해 중학교 3학년 당시 리틀엔젤스 산하 극단에 입단해 본격적인 공연 수업에 나선 것이 무대와의 인연 시작이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공연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그래서 인지 시작도 일찍 할 수 있었지만 김원해 배우는 이를 계기로 끼를 십분 발휘한다. 공연과의 단순한 인연을 고등학교 입학 후 출전한 연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이라는 결실로 바꿔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면서 두각을 보인 것.
“공연을 하계 된 계기요. 그냥 왠지 모르게 좋았다고 해야 하나. 계기랄 것은 없었어요. 굳이 핑계를 대자면 연기가 재미있다 랄까. 세상에 이런 것이 있나 했어요. 무대란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던 공연으로 고등학교 때 최고의 결실을 맺었고, 인연은 대학까지 이어졌다. 그곳에서 대중에게도 익숙한 장진과 정재형을 동기로 만나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리고 배우 김원해는 장진 감독이 대본을 쓰고 무대에 올린 연극 허탕에 출연해 무르익은 연기력을 뽐내고 있다. 대학동기로 만나 작품까지 함께 하는 우정에 왠지 모를 부러움이 샘솟는 순간이다.
# 남자나이 40대 중반. 도약을 꿈꾼다.
김원해 배우의 인생에 배우가 아닌 적은 없었다. 그래서 실증 난 적은 없었냐고 떠봤더니 연기가 마냥 좋았다고 말한다. 단 한 번도 선택에 후회한 적 없었냐고 물었다. 웬걸, 대답은 흐트러짐이 없다. 매번 매순간이 연기를 할 때면 행복하다고 언급한다. 아무리 그런다고 한 들 후회될 때가 한 번쯤 있지 않겠나? 연거푸 떠봤다.
딱 한번 일탈을 꿈꿔본 적 있다고 조심스레 소회를 밝혔다. 당시의 이야기를 청해봤다.
“연기라는 무대를 벗어나 처음으로 다른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장사라는 것을 해봤죠. 결과는 기대와 달리 엇나갔습니다. 전 장사를 해본 적도 없었고 장사할 줄도 몰랐죠. 남들 하는 모습만 보고 따라 했습니다. 막연히 될 줄 알고 했는데, 절실함이 없다보니 실패했습니다. 장사를 하는 순간에는 새롭지도 그렇다고 마음을 울리게 하는 진정성도 없었습니다. 제게는 연기가 천성이었던 것이죠”
비싼 수업비용을 치르고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온 김원해 배우의 연기는 이후 절실해졌다. 배우로써 겪을 수 없었던 값진 경험이 더해지자 연기력도 무르익었다. 그 무렵 출연한 <늙근도둑이야기> <키사라기 미키짱> 등의 주옥같은 작품이 김원해 배우의 존재감을 관객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김원해 배우의 목마름은 계속됐다.
가장 하고 싶은 연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가까이에 있지만 들을 수 없던 이야기를 연기하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대중에게 익숙한 화려하고 코믹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무대에서 인간 냄새 풀풀 날리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 무대와 브라운관 넘나드는 전천후 배우
대학 동기이자 선후배 사이이며 동시에 절실한 친구인 장진 감독과의 인연으로 김원해 배우의 활동 범위도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재형을 포함 대학 때 동기로 함께 다니던 세 사람을 보면 남부럽지 않은 명콤비였다고 하는데.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연극무대가 전부였던 김원해 배우가 장진 감독을 만났고 이를 계기로 영화에 진출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배우는 늦었다고 싶었다면 더 조바심을 내게 됩니다. 기왕 늦었다고 생각하니까 초연해 진다랄까. 어차피 목표가 저 앞에 있다면 빨리 가다가 쉬는 것 보다는 천천히 가면서 목표를 이루자라고 바뀌었습니다.”라며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겠다고 언급했다.
스스로를 두고 평범하다고 말하는 배우의 이유는 그제야 밝혀졌다. 이 말을 한 이후에서야 웃을 보이는 배우. 그 웃음 속에 인간적인 고뇌가 녹아나왔다.
“저는 늦게 시작한 대신 많이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하나하나 쌓아 올린 경험들이 언젠가는 꽃을 피울 거라는 믿음이죠.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혹시 팬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쉽냐고 물어봤다.
“똑같지 않는 배우랄까! 이것을 맡기면 이것에 녹아나고 저것에 맡기면 저것에 녹아나는 배우가 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라고 말했다. 걸쭉한 배우 혹은 인간미가 넘치는 배우 김원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대 위의 모습을 위해 생활하고 있다. 남보다 늦다고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재갈길 가는 배우의 외고집으로 연기력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가 아닌 가정에서는 늘 미안하다는 배우 김원해.
“미안한 것이 한 가지 있어요. 저의 가족이에요. 제가 연기를 20년 넘게 했거든요. 어머니에게는 댁의 아들은 뭐해? 그렇게 묻던 상황을 이제는 저의 아내와 아이들이 겪고 있습니다. 멋진 가장으로 멋진 부모로써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늘 미안합니다. 아내는 이해를 시켰지만 애들한테 까지는 이해를 못 시키겠어요”라고 미안함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