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문화/리뷰

연극 허탕 :: 통속적인 언어로 비웃는 세상의 허탕함

연극 허탕 리뷰 :: 빛바랜 시대상을 장진의 언어로 해석하다.
- 글: 김현동(cinetique@naver.com)

+ 이상과 현실 속 당신의 선택을 비웃다. 결국은 허탕한 웃음 뿐.
+ 현실 속 짜릿한 대가를 통속적인 언어로 풀이했다.


[인사이드=공연리뷰] 이상과 현실은 늘 상충한다. 그럼에도 어느 한 가지만 충족된다면 인간은 금세 적응하게 되고 더 많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이는 것도 부인한다.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혹은 다수에 이끌려 행동하는 군중심리에 편승하기 직전 까지가 마지노선이다. 그 이후는 안 봐도 뻔하다.

불안한 증상을 띄면서 난폭함까지 표출하니 지켜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모습이지 않겠는가!

여기 럭셔리한 공간이 있다.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구질구질한 사각의 퀴퀴한 곰팡내 가득하고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고 치자. 고급 오피스텔 부럽지 않는 널찍한 공간은 아늑한 느낌을 풍기는 육각형의 형태로 지어졌다. 인정하건 부인한건 그건 관객의 상상속의 세상이다.

신경 써 인테리어를 갖춘 것 마냥 백색의 깔끔한 색상 톤에 듣기 좋은 음향을 품어내는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졌다. 게다가 각종 편의 시설이 즐비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이다. 좋게 말해 별 7개짜리 7성급 감옥이다.

상식에 반하는 감옥에서의 삶이지만 이정도의 시설이라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단지 스스로에게 자유가 조금 억압되고 외출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해 보인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이상과 현실에서 한 가지만 포기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삶. 얼추 빗대어 보니 우리가 생활하는 세상과도 비슷하지 않던가! 이해하기에 다소 난해한 감이 없진 않지만 연극 허탕은 인간의 삶을 감옥이라는 환경에 빗대어 풀이해 놨다.

감옥은 사회며, 인간은 사회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생활하는 구성원이다. 결정적인 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지닌 모순이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순간에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연극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상대로 그 모습은 눈을 찡그리게 할 정도로 끔찍했다.



| 인간의 내면을 후벼 판 작품.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 차례대로 등장하는 3명의 죄수. 남자 둘 에 여자 한명 게다가 그 여자는 임산부다. 이들 모두는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무의미 하게 적응해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삶이자 낙인 셈이다.

모든 것은 다 갖춰졌다.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겠지만 인간의 가장 은밀한 장소까지 비추고 있는 감시 카메라를 통해 모든 것이 드러나는 생활에 하루빨리 적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적응한 죄수 1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곳에 익숙해져 여유를 만끽한다. 부족함도 있겠지만 1번 죄수 스스로는 이 정도라면 충분히 괜찮은 삶이라고 다독이며 안주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관객의 표정에는 “당신 무기력해요”라는 의미가 영력하다.

곧이어 등장하는 죄수 2번.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현실을 알게 된 직전부터 놀라운 적응력을 보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따지면 2번 죄수는 제법 괜찮은 능력을 지닌 셈이다. 모범수라는 타이틀이 어울린다.

그리고 곧 이어진 문제의 3번 죄수 등장. 그것도 여자다. 남자만 있는 세상에 겁 없이 발을 들여다 놓은 여자 죄수. 보는 관객도 ‘뭐하자는 건가’라는 의문이 샘솟는 상황에서 죄수 1과 2도 혼란을 겪는다. 자신과 다른 생명체의 등장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수컷 생명체의 거침없는 몸놀림.

그 모습이 암컷을 향한 구애 또는 자신의 영역을 방어하기 위한 공격적인 성향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분명한 것은 3번 죄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갈수록 관객의 호기심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엉뚱한 극의 진행 방향.

관객이 알고 있는 것은 연극 허탕이 사회 풍자극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허나 다뤄지는 내용을 사회 풍자와 연계시키기에는 다소 난해하다. 도대체 극이 말하고 했던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 허탕한 심정 가득 안긴 허탕한 작품

좁은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을 관객은 360도 개조된 무대를 통해 지켜본다. 그 과정은 때론 적나라하게 때론 음침하게 혹은 수줍게 그려진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는 5개의 캠코더와 8대의 모니터는 그 어떤 사실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차차 적응해가는 죄수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사전에 의도하던 바로 흘러가고 그곳에 순응해 가는 구성원은 생각과 행동까지 세뇌돼 간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변화 과정이다. 이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관객의 눈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행동에 반응한다. 관음증이라고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 외에는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내 모습은 아랑곳 않고 캠을 통해 비춰진 모습에만 급급해하는 또 다른 시선의 등장. 이 순간 드는 생각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사고방식을 풍자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물론 극중 배경이 1990년대인지라 2012년도인 지금과 괴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따져보면 이렇다. 장진 감독이 초연으로 본 작품을 론칭 했을 1995년 당시 시대상에는 사회 세태를 비웃는 사회풍자 성격의 작품이 대세였으며 연극 허탕 또한 그러한 배경에 등장한 것임을. 때문에 지금 시대와 작품을 연계 시켜 풀이하기엔 시대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90년도 포스터모더니즘이 만연한 시대상의 작품을 무려 13년이나 묵혀 다시 올려놨으니 보는 관객이나 이를 표현하고자 했던 연출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 리가 만무하다. 종합해보면 허탕이라는 작품에는 제목 그대로 허탕함이 농후하다!

| 비현실을 통해 관객의 눈을 뜨게 하다.

연극 허탕에서 논한 모든 장면은 분명 비현실적이다. 360도 지켜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관객은 가공된 정보를 접하고 나름대로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여 작품에 접근한다. 비극적 혹은 비약적이라는 단어로 논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감옥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드러낸 속내는 우리가 속세에 찌들어 적응해가는 과정을 비약해낸 것이라 봐도 틀리지 않다.

죄수도 적응했으니 너도 적응해봐라 는 식의 논리도 꺼내들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앞뒤 꽉 막힌 환경에 적응해 허탕한 세상에서 죄수들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자신이 원했던 정보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그 순간 비극적인 결말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가장먼저 허상에 적응했으며 가능 늦게 허상을 깨닫게 된 죄수 1의 선택은 결국 탈출이다. 그토록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고 그리워했던 세상을 향해 내 딛는 발걸음은 기대와 달리 허망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허탕했을지 모른다. 밝은 조명이 비추던 세상은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상상하던 것과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편견과 편협한 사고가 조장한 그동안의 실상은 부정만 해왔다는 그간의 모습이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때문에 옳고 그름이 가려졌을 때 사실을 부인하려 들지 않는다.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가 허탕함을 겪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장진 감독은 연극 허탕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현대에 사는 우리의 치부를 들춰냈다. 1990년도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빗대어 이를 지적했으니 이해 까지는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공산이 크다. 그렇지 않다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철창에 톱질을 하며 탈옥을 꿈꾸는 죄수 역은 연극배우 김원해와 이철민이 연기했다. 저돌적인 죄수2 역에는 연극배우 김대령과 이진오가 더블 캐스팅 출연했으며, 죄수3으로 등장하는 여자 역은 연극 '너와 함께라면'을 통해 연극판에 발을 들여놓은 이세은과 연극배우 송유현이 열연했다.

ⓒ인사이드 (www.dailyinside.net) 

* tag: 연극, 허탕, 장진, 사회풍자
  • BlogIcon 어려워어려워 2012.07.03 15:15

    정말 난해했던 작품입니다. 장르가 코믹이라고 했지만 전혀 코믹스럽지 않았다. 또한 로맨스도 아니였다.
    인간의 무미건조한 삶속에서 행복이라는 착각을 씌어주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던져 주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된다.
    ....편한게 웃을 수 있는 가벼운 연극이 주였는데 오랜만에 본 무거운 연극이었다.

  • 박인선 2012.07.30 16:13

    연극을 한번도 본적은 없어서 잘 이해가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공연리뷰를 읽고나니 흥미가 생기네요! 공연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