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4월 12일] - 인터넷과 케이블 TV(IPTV 포함)를 묶어 선보인 상품을 2000년도부터 16년간 이용했다. 일상에서 당연히 쓰이는 고정비 일부였고 이런저런 할인과 사은품을 내걸며 통신 3사가 돌아가며 꼬드기니 으레 자리 잡은 일상이려니 여겼다. 혼자 사는 남자에게 볼거리는 유일한이자 든든한 친구처럼 존재감이 두드러졌지만, 결정적인 문제라면 많은 직장인이 그러하듯 내가 사실은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는 자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다.
사실 인터넷만으로 대부분의 미디어 소비가 가능하니 TV를 끊어보자 결심했는데, 아무리 많이 보지 않아도 십 수년간 습관적으로 함께하던 TV를 끊는 건 오랜 친구와 이별하는 기분과 흡사한 나머지 살짝 망설이며 마음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 즈음 넷플릭스가 한국에 정식으로 론칭하게 됐고, 시험 삼아 1개월 무료구독을 해보며 TV 없이 살아보기로 작정한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이후로 케이블 TV를 다시는 신청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신청할 생각이 없다. 푹, 티빙 등 많은 국내 서비스를 함께 돌아가며 이용하다가 지금은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두 곳에 완전히 정착한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지상파 TV는 흘러간 유물이 되었고 구세대 유물에 나의 일상을 투자하는 것을 더는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케이블 TV를 끊는다는 표현, 즉 ‘코드 커팅(Cord-cutting)’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을 보면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코드가 잘려나간 자리는 OTT가 대신하면서 내 삶을 변화시켰다. ‘Over the Top’의 줄임말인 OTT는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다. 국내에 정식 선보인 서비스라면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아마존 프라임, 푹, 티빙 정도를 손꼽는다. 여기에서 조금 더 넓게 본다면 유튜브도 OTT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처음 국내에 선보일 때 볼만한 콘텐츠가 없다며 외면받던 넷플릭스는 ‘옥자’, ’범인은 바로 너’와 같은 국내 제작 오리지널 콘텐츠를 시작으로 한국 투자를 꾸준히 강화하다가 올 초 선보인 ‘킹덤’으로 홈런을 쳤다. 2019년 2월 기준 순 방문자 240만 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1년 만에 3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넷플릭스 효과를 제대로 누린 LG 유플러스는 킹덤 공개 후 일일 유치 고객이 3배 이상 증가했다는 효과에 주목하자. 그리고 4월 11일 전격 공개된 아이유의 영화 데뷔작 ‘페르소나’는 넷플릭스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오리지널 콘텐츠보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명작’에 약한 넷플릭스는 국내 서비스인 왓챠플레이가 대체재이자 든든한 보완재 역할을 하고 나섰다. ‘섹스 앤 더 시티’, ‘하우스’, ‘오피스’, ‘빅뱅이론’, ‘왕좌의 게임’ 등 국내에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며 넷플릭스만으로는 갈증을 느끼는 이용자를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방향을 예능으로 틀면서 쿡이나 티빙의 고객까지 흡수하며 순항 중이다.
널린 게 볼거리다. 철저한 기획과 막대한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갖춘 1인 미디어가 빠르게 안착하며 유튜브와 아프리카TV는 기존 콘텐츠 시장이 충족하지 못했던 색다른 재미를 부여했다. 유튜브로 20억 원을 번 스타 유튜버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가 적발된 사례가 우리에게 쓴웃음을 짓게 만들기도 했으나, 결론만 보자면 1인 미디어는 이른바 ‘크리에이터’라는 미래 직업으로 조명받으며 초등학생 장래희망 직업 1위로 뽑히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재미의 요소에 화질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요즘 웬만한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4k 방송을 기본으로 한다. 넷플릭스 역시 4k 콘텐츠에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반면 국내 서비스는 아직도 FHD에서 멈춰있고, 그나마 지상파 3개가 일부 UHD 방송을 선보이는 것이 전부다.
상황이 이쯤 되니 KBS, MBC 등의 채널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물론 충족하지 못한 부분 2%가 마음에 남았는데, 남성에게 인기 높았던 스포츠는 정치적인 이유로 서비스가 요원한 탓이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생중계가 일정 부분 해결책이 되고 있다. 간혹 공중파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되는 드라마는 분위기 탓에 관심을 집중시킬 때면 따로 다시 보기라는 서비스가 있으니 굳이 채널 전체가 있어야 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