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4월 06일] - “주짓수? 갑자기 왜? 그거 남자들이 하는 격한 운동 아니야?” 주짓수를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남자도 아닌 여자가 주짓수를 하는 것에 다들 의아했던 모양이다. 매스컴에서 몇 번 접했던 터라 브라질리언 유도라는 것만 알았기에 그야말로 막연했던 종목을 내가 도전할 줄은 미처 상상도 못 했다. 그랬던 내가 1년 전, 새해 시작인데, 운동이나 해볼까? 생각하던 참에 시야에 들어온 운동을 고른 것. 그렇게 시작한 나의 생에 첫 ‘주짓수’ 도전은 어느덧 ‘작심삼일’을 무사히 넘겼고 1년이 넘은 지금도 난 일과 후 주짓수 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던 나!
주짓수? 배워볼까? 그런데 뭐야?
체육관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신기하게도 주변에 주짓수를 배우고 있다는 지인이 꽤 있었고, 다들 한목소리로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주짓수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 친구, 체육관을 알아봐 준다는 친구도 등장했다. 그렇고 보니 5년 전 캐나다에서 같이 거주하던 한국인 룸메이트도 주짓수를 2년 동안 배웠다는 얘기를 곧잘 했던 기억이 난다. 때마침 같이 일하는 동료 曰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한마디에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주변에서 온통 ‘주짓수 최고야’라고 외치고 있으니 이러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던 것 같다.
시작이라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등록부터 하자는 마음에 거주지 주변 체육관을 물색했다. 한 곳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내외, 다른 곳은 20분 거리에 위치한 체육관이다. 같은 체육관 아니야? 이럴 수 있다. 하지만 주짓수에는 소위 유파라는 계열이 존재해서 교육 방식이 나뉜다. 내게 딱 맞는 체육관을 찾고자 한다면 일일 체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한 가지 요령이다.
고작 2번에 불과한 체험만으로 주짓수에 입문한 나.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 운동이라면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논 것과 학교에서 시키는 체육 시간이 전부였던 내게 주짓수는 커다란 도전 과제였다. 시작할 당시 키와 몸무게는 167cm에 46kg에 불과할 정도로 워낙 마른 체형이라 상대를 누르고 압박하는 동작에 어려움이 따랐다. 주짓수는 ‘탑’과 ‘가드’로 포지션이 나뉜다. 탑은 기술을 사용하여 가드를 제압(가드 패스)하고, 가드는 탑의 기술을 방어하고 탑의 위치로 이동(스윕)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 말 그대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운동이다.
시합이었다면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테이크 다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연습에서는 보통 선임은 가드 위치에서 시작하고 후임은 탑의 위치에서 시작한다. 탑은 가드보다 비교적 유리한 위치지만, 상대적으로 체급이 작은 내게 상대는 넘지 못할 산처럼 느껴졌다. 종일 깔리고, 깔리고, 수없이 깔리기를 반복했다. 타고난 몸치라 동작을 익히기도 쉽진 않았지만, 배운 동작을 실전에서 사용한 것은 더 어려웠다. 첫술에 배부르랴. 당연한 얘기였다.. 처음부터 잘하면 운동선수로 전향했을 터. 깔리면 깔리는 대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일과를 수없이 반복했다. 즐기다 보면, 실력도 늘 거라 생각하며 체육관 문턱을 넘는 횟수가 늘어만 갔다.
3개월 지나고 ‘그레이드’ 레벨 득템
블랙 벨트까지 필요한 시간은 약 10년
첫 남자 스파링 상대 제압 성공까지
매일 3~4가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사이 시간은 3개월이 흘러갔다. 배운 기술을 적절한 상황에서 응용하고자 애썼고, 그러는 사이 나만의 기술이 완성됐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남보다 우월한 긴 다리와 긴 팔을 활용한 기술이 주효했고 익숙해지는 속도 또한 빨랐다. 주 4~5회 이상 퇴근 후 체육관을 향했고, 일상 속 주짓수는 내게도 ‘삶의 즐거움’으로 자리했다. 첫 승급식 날, 드디어 첫 그레이드를 받으며 그간의 고충을 보상받았다. 물론 아직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지만 말이다.
주짓수는 흰색, 파란색, 보라색, 갈색, 검정 순으로 띠가 있다. 그리고 띠를 바꾸기 전까지는 4줄의 급이 존재하는데, 이걸 ‘그레이드’ 혹은 ‘그랄’이라고 부른다. 타 무술과 비교하면 승급이 상당히 느린 편이라 블랙 벨트까지 가려면 족히 10년은 걸린다고. 흰 띠에서 파란 띠로 옮겨가려면 총 그레이드가 없는 상태부터 시작해서 1~4그레이드를 지나야 하며, 평균적으로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원리를 이해하니, 꾸준히 가드 포지션에서 깔리기 바빴던 내가 상대를 쓰러뜨리는 확률도 늘었다. 이전에는 체격이 큰 상대에게 깔리기 바빴다면, 이제는 상대와 대련할 수 있는 정도랄까! 몸에 힘이 하나도 없던 내가 힘이 왜 이렇게 세냐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밑으로 후배 관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난 ‘여자가 유일하게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무술’이라는 것을 처음 증명했다. 키와 몸무게가 있는 남자 스파링 파트너를 상대로 배운 기술을 활용해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실력이 향상되었다지만 어떻게 내가 남자를 상대하지?”라는 두려운 마음으로 임하던 내가 “저 덩치에 난 깔리겠구나”라는 불안한 예상을 뒤집고, 말이다.
주짓수 화이트 2그랄 정도 되면 평범한 성인 남성 정도는 거뜬히 제압할 수 있다고 말을 경험한 그 시기 희열을 느꼈다. 여태까지 깔리고 깔리면서 배웠던 것에 대한 보상과도 같은 느낌 말이다.
주짓수는 여자가 유일하게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무술이라고 말한다. 단, 조건이 있다. 상대가 주짓수를 배우지 않은, 보통의 체격의, 보통의 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약간의 예외는 존재하지만, 여자가 대부분의 성인 남성을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만큼 주짓수는 체격이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관절기, 조르기, 누르기 등 힘보다는 기술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운동이다.
막연한 호기심으로 체육관 문턱을 넘다.
20대 직장인 여성이 주짓수 배우기까지
지금은 내 삶의 낙이 된 운동 ‘주짓수’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마음이다. 운동하며 지방과 근육이 늘어가면서 체중이 증가했고, 삐쩍 마른 몸이 아닌 건강한 몸으로 다져졌다. 팔 근육부터 다리 근육, 복근까지 이전의 나에게 볼 수 없었던 근육이 생기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몸 전체 라인은 탄탄하고 예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다른 변화는 행복이다. 힘들고 지치지만, 운동을 하며 흘린 땀이 개운하게 느껴졌고, 샤워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쳤다는 행복감을 느꼈다. 운동하니 마음 또한 안정됐다. 그렇게 주짓수는 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매일 퇴근 후 운동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주변 친구들의 질문에, “오히려 운동을 안 하는 게 더 피곤하다.”는 답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제야 주짓수가 삶의 낙이라는 직장동료의 말이 이해됐다. 나에게 주짓수는 삶의 낙이 되었고 일, 집만 반복하던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주짓수를 하면서 평일 저녁은 오롯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친구와의 가벼운 약속도 잡을 수 없고, 집에서 개인적인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된 내 모습은 주짓수가 발현한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다.
운동하며 일과 중 스트레스도 해소했고, 밥도 더 잘 먹고 잠도 더 잘 자게 되는 효과는 주짓수가 안겨준 효과이자 비단 주짓수가 아니어도 운동에 기인한 변화일 거다. 어느 순간 이야기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주짓수가 불러온 나의 변화를 떠들어대며, 나도 모르게 신이 나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주짓수는 어느새 나에게, 내 삶의 큰 의미가 되었다. 아직 주짓수를 통해 인생의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조만간에 찾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By 이연우 칼럼니스트 beautifulhouse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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