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로 완성되는 미완성 공연의 진수를 보였다.
배우가 갖춰야 하는 것의 우선순위가 연기력이라면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속 배우는 상황이 다르다. 물론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순발력이 빠진다면 극이 진행될 수 있을까? 여느 작품마냥 대본은 존재하지만 매회 같지 않은 상황이기에 무용지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는 관객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배우를 긴장시킨다. 그러나 '괜찮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것은 배우의 순발력이 말 그대로 기막히기 때문이다.
상식도 예상도 통하지 않는 버라이어티 현장. 말괄량이 길들이기 현장은 아수라장 그 이상의 충격과 감동의 무대 그 것이다. 배우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다시 배우가 되는 요상한 구도의 반복. 패러다임을 정의한다면 파격 그리고 신선이라는 표현 외에는 딱히 어울리는 단어가 없다.
| 정말 이런 작품이 있어?!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제목을 보면 내용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때문에 얼마나 막돼먹은 말괄량이를 길들이려고 제목이 저런가! 했다. 기대와 달리 시작부터 뜸을 들인다. 숨길에 관객을 호도하려는 배우. 거나하게 취한 듯 주정뱅이 역할을 맛깔나게 해낸다. 술 좀 마셔보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는 감정이다.
게다가 불도 끄지 않는다. 심지어 휴대폰까지 꺼놨다면 다시 켜란다. 전화가 오면 받으라는 친절한 멘트까지 덧붙인다. 급한 전화가 얼마나 오겠냐만 배우의 참 친절한 배려에 한동안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사진도 찍으라는데, 관람하고 있으면 좁은 공연장에 퍼지는 카메라 셔터가 나름 운치 있다. 관객은 보란 듯이 전화도 받고 배우는 연기 하다 말고 카메라를 상대로 포즈도 취해준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 같은 모습 제법 신기하다.
공연장에서 카메라나 휴대폰을 쓰는 것은 금기시된 것이 사실이다. 무대가 흔들리니 진동조차도 하지 말고 종료 버튼을 ‘꾹’ 눌러버리세요 라는 것은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단골 표어다. 하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초반부터 다르다는 것을 줄 곳 내세웠고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을 끌어가기 보다는관객의 뜻대로 공연을 진행코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배우 입장에서 보면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은 작품이다.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은 관객을 상대로 매회 새로운 이야기를 엮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터. 재치만점의 관객이 온다면 그래도 순탄하게 이야기가 진행되겠지만 눈동자만 우로 좌로 움직이는 퉁명한 관객이라면 그만큼 배우도 힘에 벅찰 가능성이 크다.
보기 힘든 시도인 터라 참신했지만 2008년 오픈 런으로 관객을 맞이한 이후 벌써 공연이 시작된 지 횟수로만 4년이 넘었다고 한다. 매회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시도를 거듭했고 작품을 성황리에 끝냈다니 그 열정은 합격점을 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아무리 봐도 스타일이 독특해 찾아 봤더니 제작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펙-액터 작품이란다. 용어조차 골치 아프다. 그러나 막상 접하면 관객을 참 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시간 15분 전에 입장을 하라고 적혀 있는 티켓. 다쩌고짜 커피 한 잔 내밀며 마시고 추위에 얼어버린 몸 푸세요 라며 공연장에서 손수 커피를 나눠주는 센스. 음료수 반입 금지에도 부족해 과감하게 뺏어 보관하는 여느 공연장과는 격을 달리한다.
| 관객을 몰입시키는 극중 극
극 속에 극이 있는 형태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극이 시작되면서 또 하나의 극이 극 중 펼쳐지는 형태다. 무대와 객석을 최대한 가깝게 하기 위해 앞좌석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야 할 상황이다. 게다가 공연 시작 전 한 잔의 커피로 관객의 호감을 산다. 곧 이어 발생될 상황에 만반의 대비를 하라는 계시다.
몇 개의 탁자와 술이라도 담겨 있음직한 텀블러. 그리고 남자 배우에 여자 배우 한 명……. 참 단출한 구성이지만 이들의 하모니와 재치가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묘미다. 반전은 배우의 개성에 숨겨져 있다. 남자 배우의 여장 연기. 그런데 제법 잘 어울린다. 남자인데 여자 뺨칠 정도로 뛰어난 미모.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여자 배우가 필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하면 잘생긴 남자 배우의 열연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훈남들의 수다’도 아닌 것이 남자 배우는 시작부터 목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다. 스스로의 외모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생각 외로 여성 관객의 비중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좀 무모한 시도라고 보이는 것이 현란한 조명효과나 음향도 없이 모든 것이 100% 라이브 연기라는 것. 방송에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익숙한 음악이 사람의 목소리로만 재현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천연덕스럽게 재현하는 넉살까지.
지금까지 이 같은 관객의 반응을 목적한 적도 없다. 부족한 캐릭터가 있거든 즉석에서 캐스팅 하는데 극의 진행을 위해 관객이 알아야 할 대사도 있다. 공연에 너무 몰입한 결과 쉽게 생각나지 않아 만천하게 암기력을 탓하게 하지만 그 또한 흥미롭다. 관객의 참여가 절실한 이유다. 다행히도 매회 관객의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참여 후에는 짜릿한 경품도 주어진다는 소문의 후광 덕인지 극중 캐릭터를 자청하는 관객도 보통 내기는 아니다.
| 별난 재미와 통쾌한 웃음~ 유별난 배우
별난 감동에 별난 진행으로 눈길을 모은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기본 뿌리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있다. 이런 캐릭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별난 배우의 열연과 관객의 참여가 만들어낸 독특한 개성이 물씬 풍긴다.
내용만 따지면 고루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간추려 본다면 소문난 말괄량이 숙녀 캐더린을 순종적인 아내로 만들기 위해 길들인다는 것인데 연극은 이 과정을 흥미롭게 이끌어냈다.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는 약간은 자존심 상할 듯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안쓰러울 정도로 땀 흘리며 관객을 요절복통하게 만드는 페트로치오의 열정에 흠뻑 빠진 것일까!
단방향 공연에 익숙한 우리에겐 양방향 공연을 호소하는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낮선 장르임에 분명하다. 관객과 배우가 혼연일치해 움직여야만 작품이 완성되는 묘한 공식은 공연 시작부터 끝나는 마지막 1분까지 묘한 매력을 풍긴다. 아주 천천히 관객을 흡수하는 것이 아닌 빠른 속도로 끌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극중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흡입력까지.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참여라는 단어 밖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참여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미완성 작품. 그랬다. 애초부터 미완성이던 작품을 무대에 올려 관객가 배우가 합심해 온전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작품. 완성시켜가는 과정은 생각 외로 짜릿했다. 대본은 그저 이렇게 가라는 신호일 뿐.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의 관객은 관객이 아닌 주인공 그 자체인 것이다. 가슴 뭉클한 진한 감동이 없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지만 통쾌한 재미라는 요소를 쫒는다면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대적할 만한 작품을 찾긴 힘들다.
별난 배우와 별난 관객의 하모니가 유독 돋보이는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페트로치오 & 슬라이 역에 장승우, 그루미오, 호텐쇼 트라니오 역에 최상림, 비앙카 역에 이종대, 루첸티오 & 연출 역에 하연수 캐더린 역에 김태형, 호텐쇼 역에 정준교 그리고 백티스터 부인 & 시슬리 & 미망인 역에 이경옥이 열연한다. 공연은 오픈런 공연으로 대학로 다르게 놀자 소극장에서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4시와 7시, 일요일은 3시와 6시 두 차례 공연한다. 문의 킴스컴퍼니 02)747-4222
writtened by Oskar (cinetique@naver.com) ⓒ인사이드 (www.dailyinsi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