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택시에서 뒤바뀐 가방. 그 속에는 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액수 현금이 담겨 있다. 실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일명 ‘비자금’
문제는 돈의 출처가 야쿠자라는 것. 쫒고 쫒기는 가방 속 현금 쟁탈전. 뜻하지 않게 개입된 비리 경찰을 간신히 돈으로 매수했지만, 아동 성추행 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비슷한 시간 또 다른 경찰까지 개입하면서 점점 궁지에 몰리는 데.
사건의 행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꼬여만 가고 급기야 그토록 두려워하던 검은 그림자가 집 안방까지 들이닥친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현금은 총 백억 하고도 4,000만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냥 넘겨주기에는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다. 이 돈을 마지막까지 사수할 수 있을 것인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 하지만 그보다 오랜 시간인 무려 12년간 대학로 한켠을 장식한 고전 연극 ‘라이어 3탄’은 2010년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라이어 시리즈는 시대를 타지 않고 남녀노소, 청소년부터 중장년까지 폭넓은 사랑을 누리고 있는 대표적인 대학로 연극이다.
| 가방속 거금, 이게 꿈이나 생시냐?
3탄 배경은 한국이다. 문제의 주인공은 이영호. 어리바리한 이 씨는 말단 농협창구 직원이다. 한 손에 늘 지니고 출퇴근하는 그의 분신 같은 가방. 쌍팔년대 연극에서나 볼 수 있는 가방은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뜻하지 않는 횡재를 불러들이는 행운의 가방으로 돌변한다.
가방 속에는 서류를 비롯하여 명함, 먹다 남은 샌드위치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다 담겨 있어 버려도 아무도 손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야쿠자의 손을 거치면서 현금 가방으로 뒤바뀌는 마법을 발휘한다. 가만히 보니 우연히 합승했던 야쿠자와 가방이 비슷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볼을 꼬집고 술을 마셔도 이건 꿈이 아닌 현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을 뜨는 일만 남았다. 그래 친구 좋은 것이 뭐냐? 주인공 이영호는 인맥을 동원해 VIP 공항 대기실을 예약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돈 앞에서 평등하다고? 웃기고 있네~ 돈은 재력이라도 보는 주인공 이 씨. 돈을 보고 이성을 잃어버린 이 씨는 돈을 가지고 해외로 출국해 장밋빛 인생을 그려본다. 다만 소심한 아내 한은영은 두려움에 자꾸 술을 마시고,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하는 안색을 띄는데.
사랑하는 아내지만 이때만큼은 왠지 밉상으로 보일 것도 당연한데. 순순히 공항으로 향해줄 것이지 뭐가 그리도 두려웠는지 결국 만취해 인사불성이 되고 만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현금 쟁취 스토리 ‘라이어 3’ 믿었던 아내까지 주인공의 발목을 잡고야 만다. 주인공은 이 어려운 난관을 순조롭게 벗어날 수나 있을까?
결국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생각해낸 꼼수가 거짓말이지만, 이로 인해 더욱 꼬여버린 이 씨의 인생사. 마다 못해 아내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아내 절친한 친구인 백선혜와 떠나는 거짓말까지 동원하지만 이제는 택시 운전기사가 발목을 잡는다.
처제가 되었다가 친구가 되었다가 다시 해외에서 여행온 가족으로 둔갑한 상황.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1인 다역으로 능청스레 허풍을 떨어야 하는 충격적인 반전이 100분간 펼쳐진다. 보는 이 조차 마음 조리게 하는 빠른 전개는 몰입감을 높이기에 그만이다.
| 야쿠자 돈으로 인생 설계하기 쉽지 않네~
라이어 3탄의 부제는 ‘튀어’다. 야쿠자와 뒤 바뀐 돈 가방을 들고 외국을 ‘튈’계획을 세운 주인공이 얼마나 안전하고 신속하게 튀는 가에 초점이다. 물론 라이어 연극의 주된 특징인 빠른 진행은 3탄에서도 변함없다.
숨 가쁘게 펼쳐지는 거짓말 속에서 찾아가는 진실. 그리고 진실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상대방에 따라 끊임없이 거짓말을 만들어가는 순발력은 라이어를 여러 번 보더라도 실증나지 않게 하는 원천이다.
그렇다보니 라이어 시리즈는 특이하게 재관람률 40%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영화 퍼니 머니(Funny Money)에서 모티브를 따온 연극 라이어 3탄. 시리즈를 다합치면 대학로에서만 무려 11년째 4,500회 이상 공연되었던 국민연극.
1탄, 2탄, 3탄으로 구성된 총 3개의 에피소드로 나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3가지 에피소드가 연결되지 않기에 어떤 것을 먼저 보더라도 결코 어색하지 않다. 물론 공통점이 아주 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편을 먼저 보더라도 어색함이 없다. 또한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과 일단 보고나면 행복 증후군에 걸린다는 것.
지난 한 해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워 스트레스 받아온 직장인을 비롯 청소년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극을 권해달라면 바로 라이어 3탄을 빼놓을 수 없다.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남는 여운이 감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극의 결과라면, 라이어 3탄은 좀 다르다. 숨 막히는 웃음 폭탄에 배를 움켜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부작용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대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많이 웃는 게 그 대답이다. 또한 건강까지 지킬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효과 뛰어난 만병통치약이 있을까! ‘잘 고른 연극 한 편, 열 연극 부럽지 않다’는 것은 라이어를 두고 한 말이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