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초연에 이은 2010년에 두 번째 무대를 마련한 뮤지컬 영웅. 해당 공연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표를 구한다는 것은 기적과 가깝다. 제작사의표현을 빌리자면 “전석 매진” 이라는 것. 물론 약간 과장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영웅 안중근의 영향력은 크다는 말이다. 2010년 한해 연극 나는 너다, 뮤지컬 장부가에 이어 연말인 12월 대미를 장식할 뮤지컬 영웅을 통해 안중근 열사에 대한 재조명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만 다수 연극과 공연을 통해 다뤄진 영웅 안중근임에도 공통점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영웅 안중근의 일대기에 정확성은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 만큼이나 어렵다.
문헌을 따르고 있다 한 들 그것 또한 다방면의 고증을 통해 검증과정만 거쳤을 뿐 100%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유일한 증거였던 민족영웅의 주검까지 행방불명인 상태이니 대략적인 추측을 종합하여 연극과 뮤지컬로 다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처럼 사연 가득한 영웅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가 2010년 연말 대미를 장식한다. 귀중한 목숨을 바쳐 어렵게 독립이라는 대사를 이뤘지만 그 과정을 차마 눈으로 확인 못하고 떠난 영웅 안중근의 넋을 기리기 위한 한편의 뮤지컬 영웅이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온 것.
제대로 된 레퍼런스 하나 없기에 연출가에 따라 전개 방식 까지도 확연하게 나뉘는 안중근 일대기. 그렇다면 뮤지컬 영웅에 선 민족영웅 안중근은 어떤 사람으로 묘사됐을까? 안타깝게도 뮤지컬 영웅에서 나오는 안중근은 기계와도 같다. 인간미 넘치는 안중근은 이곳에 없다.
감정보다는 철저히 교육되고 훈련받은 한 남성이 무대에 서있다. 목표가 있었기에 묵묵히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렇기에 또 다른 뮤지컬 장부가에서는 가족의 시선에서 표현될 수 있었다. 이보다 앞서 공연됐던 연극 나는 너다는 막내아들의 시선에서 진행됐다. 제목이 다른 만큼이나 내용도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뮤지컬 영웅은 이도저도 아닌 전개과정만을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역사속의 방대한 사료를 단시간에 다룬 탓에 몰입도마져 떨어진다. 종합하자면 강렬한 의미 전달력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제작사도 창작뮤지컬이라는 참신한 시도를 더했다는 표현으로 뮤지컬을 일축했다.
그 외 사운드와 전율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는 뮤지컬을 보는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화려한 캐스팅도 볼거리다. 주연 배우에 따라 전반적인 분위기도 확연히 나뉜다는 것도 흥미롭다. 다양한 시각적, 음향적, 효과적으로 변화해나가는 무대 변화와 대형 무대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군무도 인상적이다.
| 음악적 완성도는 단연 최고
주옥같은 명곡도 빼놓을 순 없다. 영상효과와 함께 들리는 음악은 절로 숙원한 마음을 이끌어낸다. 안중근이 부르는 1막에서 들리는 영웅, 2막에서 들리는 장부가 등의 곡은 방대한 규모의 대극장을 가득 매운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명곡 하나하나가 도입-전개-변주-절정을 차례대로 밟아가며 관객을 공연에 몰입시킨다. 내용 없이 음악만 듣더라도 뭉클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뮤지컬 영웅의 일등공신이다.
주옥같은 명대사는 뮤지컬 영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전개 방식도 흥미롭다. 주인공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보다는 주변인을 통해 나오는 대사가 더 멋지다. 다수 뮤지컬이 주인공을 위주로 사건이 펼쳐지는 것에 비해 뮤지컬 영웅은 모든 출연진이 주인공이며, 진행되는 사건 하나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잠이 들어야 아침을 맞을 수 있는 법”
“쉽다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렵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등 짧지만 함축력 있는 대사 하나 하나가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오랜 시간 귓가를 맴돈다. 중독성도 강하다. 핵심 구호를 중심으로 사건 하나하나가 펼쳐진다. 거사를 치르기 전에 매번 반복되는 의미가 축약되어 있는 특별한 문구 전달. 바로 뮤지컬 영웅을 설명하는 주요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한 가지는 명대사를 꼽아보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 기립박수. 찬사. 환호. 그 이유는?
뮤지컬 영웅을 단순히 좋은 공연,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은 공연으로 설명하기에는 어패가 있다. 이보다 앞서 2010년 6월 7일 치러진 뮤지컬 어워드에서 영웅이 총 19개 부문 가운데 10개 부분 수상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성과를 거머쥐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작품/배우/창작/무대/관객 등 5개 섹션을 석권했고, 창작뮤지컬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무대미술상, 조명음향상, 음악상까지 휩쓸었다. 더 이상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럼에도 뮤지컬 영웅은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다. 창작뮤지컬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에 모호한 공연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일부 사건은 관객들로 하여금 다소 실망감을 안겨준다. 실제 공연 관람 중간에 일부 관람객 사이에서 특정 영화를 언급하며, 공포물과 비유되는 우스갯소리가 지적되면서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링링과의 러브라인과 어머니의 등장은 대표적인 흠이다. 쫒기는 과정에서 링링과의 키스신이 연출되는 것 또한 억지스럽다. 인간 안중근이 아닌 영웅 안중근으로 묘사한 뮤지컬에서 부자연스러운 인간 안중근을 억지로 묘사함으로써 흐름을 깨버린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영웅으로만 묘사되던 그가 어느 순간 인간으로 관객에게 비춰지는 억지스러운 모습. 다소 당황스럽다.
| 당신은 진정한 영웅임이 틀림없다.
종합하자면 2009년에 이어 2010년까지 두 번째 무대에 오른 앙코르 뮤지컬 영웅. 인기만큼이나 잡음도 많다. 다수 전문가는 제작 기간만 5년이 투자된 본 뮤지컬 설명에 뮤지컬 명성황후를 빼놓지 않는다. 종합하자만 전개 방식이 상당 부분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제작사가 같으니 검증된 영향력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으리라는 이유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 보니 대형 무대에서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한 비주얼로 관객을 매료하고 아직 남아있는 애국심과 민족 영웅 안중근을 절묘하게 매칭해 이끌어낸 상업화의 결과물이라는 것.
이 같은 지적에도 뮤지컬 영웅은 점차 잊히는 애국심이라는 것을 고취하기에 충분한 교육적인 효과를 담고 있다. 2부 공연까지 막을 내린 이후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찬사. 기립박수와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관객. 100년이 지나 이제야 영웅 안중근이라는 이름이 이렇게라도 조명되는 것은 이 같은 공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가적인 효과다.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 영웅은 후세대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던 안중근은 역사가 잘못 진행되는 것을 되돌리고자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를 영웅으로 칭송코자 한다. 뮤지컬 영웅은 우리 모두의 영웅을 다룬 작품이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