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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일회용 컵 사라진 카페,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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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클리포스트 2018. 9. 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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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일회용 컵 사라진 카페, 현실은?
커피 공화국 대한민국 보고서




[2018년 09월 01일] - “매장 내에서 드실 건가요, 아니면 테이크아웃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1회용품 규제 두 달째, 지루한 설명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 1일을 기점으로 일제히 시작된 모습이다. 정확히는 자원재활용법 시행으로 몸 사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자는 명목으로 카페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만약 위반 행위 적발 시 해당 사업장은 5만 원에서 200만 원 상당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당근은 애초에 없고 채찍부터 휘두르는 모양새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건데 제대로 정착되고 있을까?

서울 시내 주요 커피숍을 돌아봤다. 앉아있는 손님은 익숙한 일회용 컵 대신 유리잔에 음료를 담아 마시고 있고, 나가는 이의 손에는 일회용 컵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물론 일부 테이블에는 여전히 일회용 컵으로 음료를 마시거나, 멀리서 힐끗거리며 다가가길 주저하는 점원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정착하고 있는 모양새다. 카페 점주는 자원재활용법이 시행되고 1회용품 쓰레기가 현격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환경도 보호할 수 있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으니 좋은 정책이라는 거다. 하지만 취지는 취지일 뿐 상당수 카페 점주의 생각은 부정 일색에 가까웠다.


공문 한 장, 전화 한 통 없는 시행 강제


점주는 소위 ‘까라면 까’라는 정부의 자세에 불만을 토로했다. 계도 기간도, 홍보도 없었고, 공문이나 안내 전화도 없이 뉴스를 통해 통보하듯 보도한 것이 다였다고 했다. 서울 충무로에서 40평 규모의 카페를 운영하는 신 모 씨(44)는 “딸이 뉴스를 보고 말해줘서 알았다. 시행된 지 모르고 있다가 단속이 나와 그 자리에서 5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 옆 가게 사장도 있다. 취지도 좋고 이유도 알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장들이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공문 하나 없이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비용 절감 효과, 과연 있을까?

점주들은 일회용 쓰레기가 줄어든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경영상의 비용 절감과는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컵의 위생관리가 새로운 이슈로 대두되면서 설거지를 위한 추가 인력이 필요해졌고, 유리잔은 일회용 컵보다 값은 비싸면서 깨질 우려가 높아 효율이 저하됐으며, 나아가 일부 손님은 예쁘다는 이유로 가져가는 등 도난의 우려에 난색을 표했다. 정작 종이컵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점주들을 혼란케 만드는 경우마저 있다.

마포구 신수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나 씨(32)는 정부가 모든 책임은 점주에게 돌리면서 어떠한 지원도 해주지 않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나 씨의 매장은 100%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판매해오다 자원재활용법 시행으로 건조대, 식기세척기, 유리컵 등을 새로 장만했다.

“작은 개인 매장은 커피의 품질, 인테리어 등이 생명이기 때문에 컵 하나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들처럼 커피에 어울리지도 않는 아크릴 컵을 쓸 수는 없어요. 건조대 하나 없는 매장도 많을 겁니다. 작은 지원 하나 없는 무성의가 싫었어요. 이런 법을 시행하려면 과태료를 내는 주체인 점주들이 무엇이 필요할까, 어떤 걸 도와주면 좋을까 하는 고민을 정부가 조금이라도 해봤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준비 없는 정책, 정부 신뢰 도마 위로


나 씨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법 시행에 대한 안내문을 직접 제작해 주문하는 곳에 걸었다. 다행히 효과가 있어 대부분의 손님이 쉽게 이해해 주었지만 정작 나 씨가 분통이 터졌던 때는 엉뚱하게도 실제 단속반이 매장에 찾아온 날이었다.

“이야, 여기는 이런 것도 안내해서 붙이네요,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이건 환경부가 준비해줘야 할 일 아닙니까? 안내판을 제작해 나눠주면서 이렇게 시행하게 되었으니 준비를 부탁한다, 양해를 바란다도 아니고 그런 말을 듣는데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치 않는 손님의 반응에 난감함은 오롯이 점주의 몫이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고, 1분이라도 매장에 머물 경우 유리잔에 음료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해당 문화가 자리하기 전까지는 불가피한 충돌이다. 그 기간 동안 준비되지 않은 손님을 대하는 모든 스트레스는 점주의 몫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손님이 1회용 컵을 들고 나가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점주가 진다.


기자가 취재한 5개의 매장 모두에서 ‘잠깐만 있을 건데 그냥 일회용 컵에 주면 안 되느냐’를 묻는 손님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위생 때문에 다회용 컵으로 줄거면 마시지 않겠다’며 몽니를 부리는 손님도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단속을 마주하고 있는 점주들은 고객관리와 과태료 위험의 딜레마에서 줄타기하고 있다. 단골손님이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나가는 손님의 남은 음료를 유리잔에서 일회용 컵으로 옮겨주는 과정에서 손님의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편, 우리의 주먹구구식 정책과 달리 이웃 나라의 시행 분위기는 우리와 다르다. 일본 정부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재활용 사업자를 대상으로 새 설비를 도입할 때 드는 비용을 최대 50% 지원하기로 했다. 영국의 경우 플라스틱 혁신을 위한 새로운 연구 자금 마련, 개발 도상국의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를 돕고자 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전 세계가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원정책도 함께 준비하는 모양새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맥도날드는 2025년까지 모든 포장을 재사용 또는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고, 던킨도너츠는 플라스틱 컵 사용을 올봄에 중단하고, 2020년까지 재활용 가능한 종이컵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타벅스는 친환경 컵 디자인 공모전에 무려 1천만 달러를 걸기도 했고 조만간에 종이 빨대를 배치할 계획이다.

이러는 사이 점주들의 불만은 정책 시행이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상에 대한 어떠한 배려나 고민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데 서운함이 담겼다. 정부 정책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보다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접근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업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한 기술개발, 친환경 스타트업 지원, 의식 개선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 전개 등을 통해 국민들이 ‘준비되었을 때’ 각종 금지 정책도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물론 그러한 희망은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급조한 정책이 지니는 근본적인 문제다.

By 김신강 에디터 merrybun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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