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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중심에 선 한국 라면,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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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클리포스트 2018. 9. 24.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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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중심에 선 한국 라면, 어디까지 왔나?
면식수행(晝寢夜活) 보고서





[2018년 09월 24일] - 수많은 남녀를 설레게 하는 말, “라면 먹고 갈래?”

처음 시작이야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여주인공이 던진 대사였지만, 이 영화는 개봉한 지 20년이 가까워가고 있는 작품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유효한 말은 단순한 영화 대사 한 줄이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말은 두 사람이 함께 밤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힘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왜 하필 라면인가? 어쩌면 이는 라면 시장에서 한국이 세계의 중심에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전 국민의 주식과 부식 사이 어디쯤엔가 있는 라면. 삼양이 최초로 한국 인스턴트 라면을 출시한 것이 1960년이니 어느덧 한국 라면의 역사도 환갑이 목전이다. 한 사람의 생애만큼 오랫동안 국민 삶에 녹아 들어온 라면은 연간 2조 원의 시장규모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의 인식과 달리 라면의 기원은 일본이 아닌 중국이다. ‘당겨서 만든 국수’라는 뜻을 담고 있는 중국 랍면은 송나라 때 수타 기술이 개발되면서 등장한 국수의 한 형태인데, 흔히 말하는 수타면이 라면의 시작이다. 하지만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답이 일본으로 바뀐다.

1958년 닛산식품이 만든 ‘치킨라멘’이 그것인데,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이 건면을 튀겨서 휴대하고 다니던 것이 일본으로 유입되며 힌트를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 후에 한국도 출시한 것이니 사실상 한국의 라면 역사도 일본 못지않게 오래된 셈이다.


한국인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한류 속 세계시장 이끌어
위축되는 내수시장…바쁜 한국인을 위한 건강상품 개발에 매진해야


한국이 세계 라면 시장 중심에 있다는 근거는 한국이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통계 하나 때문이다. 바로 1인당 연간 소비량으로, 한국 국민 한 사람은 1년에 약 76.1개의 라면을 먹는다(2016년, 세계 인스턴트 라면 협회). 2위인 인도네시아가 52.6개, 3위 베트남이 50.5개니 20개 이상 더 많이 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라면 사랑이다.

라면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과 중국의 2배 규모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은 1인당 GDP가 한국의 1/10 수준이고, 일본은 1인 가구가 40%에 육박하는 나라다. 적어도 한국에서 라면은 형편이 넉넉지 않거나 혼자 살아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진짜 좋아하는’ 음식인 셈이다.

유튜브에 ‘라면’을 검색하면 단순 먹방부터 라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 라면 많이 먹기, 군인들이 좋아하는 라면, 라면 맛 비교, 외국인 친구 반응 등 수많은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히 기술이 발달하고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한국 라면은 수출 규모도 연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건강을 중시하면서 국내 매출이 주춤한다고는 하나,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라면 수출 기록은 3배 이상 커졌다. 말레이시아의 한국산 라면 점유율이 2013년 0.7%에서 2018년 13.4%로 20배 가까이 성장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말레이시아 라면기업 ‘마미더블데커’의 최고전략책임자인 뷔통 팡은 한국 라면의 퀄리티가 한류 열풍과 만나 폭발적인 인기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 기업들은 할랄 인증 등 동남아시아 시장 개척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나날이 진화한다.

한국 특유의 매운 라면 역시 글로벌 열풍을 이끄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 중국 조사기관 즈옌컨설팅에 따르면, 삼양 ‘불닭볶음면’은 2017년 중국 온라인 라면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농심 ‘김치라면’이 3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한국의 매운 라면을 얼마나 잘 먹는지를 경쟁하는 ‘코리안 스파이시 누들 챌린지(Korean spicy noodle challenge)’가 하나의 놀이처럼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1,400만 건을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유튜브 영상이 있을 정도다.


이렇듯 한국 라면은 상상 이상으로 세계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시판 중인 라면 종류만 100가지가 넘는다. 일본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발명품이 인스턴트 라면이라고 하니, 왠지 모를 승리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내수 시장은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농심, 오뚜기, 삼양, 팔도 등 국내라면 제조업체 4곳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 9,87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6% 감소하며 2조 원 규모가 무너졌다.

업계는 대형 히트상품이 나오지 않고 라면을 대체할 수 있는 가정간편식 상품이 급증하고 있는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으나, 흥미로운 점은 용기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29.2%를 차지하던 용기면 판매 비중은 지난해 37.4%로 뛰었다. 비중뿐 아니라 판매액도 동 기간 5,400억 원에서 7,900억 원으로 46% 증가했다.

업계에서 분석하는 대로 히트 상품이 없고 간편식으로 사람들이 넘어가는 것이 라면 시장의 위축 원인이라면 용기면도 라면인 이상 판매량이 줄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배달 시장의 성장을 고려해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셈이다.


라면 시장의 위축은 단순히 상품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OECD 평균보다 38일 더 일하는 워커홀릭 국가 대한민국


우리나라 근로자 한 명의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멕시코에 이어 2번째로 길다. 하루 법정노동시간인 8시간으로 나누면 한국 근로자는 OECD 평균보다 38일 더 일한다. 정부는 올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 시대를 열었다.

기존 68시간에서 16시간을 줄여줬다.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지 일의 ‘양’이 줄어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52시간 시대에 맞게 기업들이 업무 효율화를 이뤄내야 할 문제지만,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업무 부담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점심시간,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해야 하고, 때로는 가정이나 제 3의 장소에서 ‘변칙적인’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간편식 시장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용기면 매출이 계속 오르는 것은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워야 할 정도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서울 역삼동에서 변리사로 일하고 있는 김 모 씨(37)는, “3일 만에 52시간 중 45시간이 차버렸다. 이것이 한국 근무환경의 현실이고 컵라면조차 먹을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전하며 “근무 환경에 맞게 기업의 업무량도 현실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전자레인지 용기면을 용기면 시장의 미래로 보고 있다. 끓여 먹는 라면에 비해 맛의 깊이가 부족하고 환경호르몬 논란이 있는 용기면 시장을 판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 진동을 통해 100℃ 전후로 조리할 수 있어 봉지라면과 같은 맛이 난다는 것이 업계의 논리다.

농심은 첫 전자레인지 용기면으로 ‘신라면블랙’을 꺼내 들었고, 오뚜기 ‘진라면’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바쁜 직장인들을 겨냥해 맛과 간편성을 모두 잡겠다는 복안이다.

업계는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통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고, 설비를 늘려가며 라인업을 대폭 확장해가고 있다. 다만 종이용기면도 재활용이 어려워 환경오염 논란이 있다는 점, 이미 2009년 오뚜기가 ‘오동통면’을 전자레인지 겸용으로 개발했으나 시장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는 점,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될 경우 대체할 먹거리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성공 여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늘 모든 업계에 새로운 숙제를 던져준다. 많은 논란과 문제를 안고 있지만 좋든 싫든 농심, 삼양, 오뚜기, 팔도는 한국 먹거리 시장의 중심이고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기업이다. 이들이 기꺼이 새로운 숙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소비자들의 건강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또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때다.

많은 업무량과 부족한 시간 속에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건강이 몇 개의 대기업에 달린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불어 이들 기업은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라면 시장의 리더 역할까지 겸해야 한다. 응원과 격려, 철저한 감시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By 김신강 에디터 merrybun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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