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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식남(麵食男)의 오늘, 기승전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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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클리포스트 2018. 9. 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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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식남(麵食男)의 오늘, 기승전 라면
면식수행(晝寢夜活) 보고서




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2018년 09월 24일] - 출출함이 시작될 새벽 무렵이면, 얼큰한 라면 한 그릇이 그렇게 생각난다. 조리법이라면 모름지기 임창정 주연의 영화 파송송계란탁에서 나온 그것이 정석이다. 양은냄비에 계란 한 알 노른자가 풀어지지 않게 수저로 탁! 깨트려 넣고 강한 불에 보글보글 끓인 후 송송 썬 파 올린 라면은 반찬 없이도 밥 한 공기 뚝 딱 한 그릇 비우기에 더할 나위 없다.

심지어 학창시절 때는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와 연탄불 아궁이에 올려 양은냄비에 끓여낸 라면이 없었다면 질풍노도의 시기가 평온하지 못했을 게다. 라면이야말로 허기진 자에게는 한 끼 식사요, 출출한 자에게는 간식이 돼주었던 최고의 메뉴였다. 물론 그러한 라면에 얽힌 추억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했으렷다.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좋은 라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 나~
하루에 열 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짭짭 후루룩짭짭 맛좋은 라면~

Chorus 가루 가루 고춧가루~

맛좋은 라면은 어디다 끓여~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이 나네~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좋은 라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좋은 라면~!!!

- 아기공룡 둘리 ‘라면과 구공탄 ~♪’ 中


한때 즐겨본 아기공룡에서 들렸던 라면과 구공탄 송~ 에서도 등장하는 라면. 국민 간식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먹어본 라면. 사실상 라면을 안 먹어본 이가 있을까 싶다만, 먹어봤다면 무릇 한 개만 먹어본 이는 없을 거다.

나쁜 이미지이자 매운 라면의 대명사인 농심 신라면을 필두로 착한 이미지로 농심 라면을 대적하며 사랑 받는 오뚜기 진라면, 짠맛이 특징인 안성탕면에 제대로 된 조리법 논란이 십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짜파게티, 술 먹은 다음 날 생각나는 틈새라면 혹은 무파마라면까지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다양한 라면이 오늘도 주식인 쌀밥 대신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난 라면이 참 싫다.


나에게 면식은 눈물 콧물 범벅인 삶의 여정

언제 라면을 처음 맛보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떠오르는 거라면 내가 먹었던 라면은 그 어떠한 음식보다 맛있었던 유일한 메뉴였다. 그 당시 내게 선택할 수 있던 인생 라면이라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삼양 쇠고기 라면. 그리고 농심 안성탕면 두 종류다. 이 들 라면을 선호하던 이유도 떠오른다. 가격이 저렴했고, 특히 쇠고기 라면은 라면 중에 저렴하기로는 따라올 제품이 없었다.


하나만 끓이면 부족했기에 2개를 끓여냈다. 국물 위로 둥둥 뜨는 기름까지 행여 남길세라 라면에 찬밥을 말아 싹싹 비우면 표정에서도 뿌듯한 포만감이 묻어나오는데 그야말로 세상 남부러울 게 없었다. 안성탕면의 조리법은 조금 다르다. 물을 최대한 적게 넣고 자박하게 끓여내다가 면이 익기 전에 계란 두 알을 넣고 막 휘젓는다.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그 비주얼이 썩 훌륭하지는 않으나 먹어보면 입안에 도는 고소함과 짬 맛의 절묘한 조화가 내뿜는 풍미는 라면 고유의 맛을 잘 잡아내는 조리법이라 자찬하고 싶다.

남자라면 피하기 힘든 그 당시에도 라면과 함께했다. 말 그대로 행군 혹은 유격 등 연례행사에서는 까라면 까야 하는 정신으로 임하는 훈련이다. 힘들일 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만 여하튼 지급받는 농심 사발면 하나. 분명 사회에서 라면은 뜨거운 물에 익혀 먹어야 한다고 배웠거늘 군대에서의 라면은 뜨거운 것은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온기가 느껴지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정도의 호사였다.

게다가 물도 부족하다. 한 방울이라도 떨어질까 조심히 미지근한 물을 부어, 한 5분 아니 그 이상을 기다리면 딱딱한 면에 조금이라도 유연성이라는 것을 기대할 만 하지만 젊은 혈기로 똘똘 뭉친 데다가 막 훈련을 끝내고 돌아온 터라 배는 꼬르륵거리고, 몸은 천근만근 피곤하니 어서 먹고 자야겠다는 마음에 제대로 불지도 않아 똘똘 꽈리를 튼 채로 감겨있는 면을 우걱우걱 뜯어 먹었다.

그리고 자대 배치가 된 후 취사반과 친해진 덕에 후춧가루 진하게 풀어 먹을 수 있었던 라면 하나는 산해진미 부럽지 않을 맛이었다. 그렇게나 추억이 다분한 라면이 내 인생에 참 맛없는 음식이 된 것은 26세 이후 서울 생활을 시작할 무렵이다. 88올림픽 당시 브라운관을 통해 들었던 ‘서울서울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노래 가사와 달리 내 생에 서울은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던 매정한 도시였다.

매정한 도시에서 버텨야 하는 자취생에게 면식도 난이도가 있다. 비교적 여유를 지닌 자취 초보라면 먹기 쉽고 처리에도 유리한 컵라면이 답이다. 물 끓여 붓고 3분 지나면 딱딱하던 면은 꼬들꼬들한 면으로 탈바꿈해 짭조름한 국물 품고 구미를 당긴다.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에는 계란 한 알 풀어 넣기도 하나 뜨거운 물만으로는 익지 않는 것을 경험한 이후 컵라면에 계란은 금기시됐다.

이 단계를 지나면 양은 냄비에 끊이는 전통적인 방법에 진입한다. 유독 라면과 양은냄비가 최적의 찰떡궁합 자랑하는 이유인즉슨 열전도가 범인이지만 동시에 가장 싼 조리도구라는 이유도 한몫한다. 게다가 매스컴에서 연일 라면은 양은냄비로 끓여내야 제맛이라고 현혹하니 당해낼 재간이 있을까! 물론 양은냄비는 현존하는 조리 도구 중 가장 빠른 시간 안내 재료에 열을 전달해 끓어오르게 만들며, 꼬들꼬들한 면발을 구현하는 핵심인 온도를 전달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해낸다.

대망의 마지막 단계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조리다. 물 끓여, 라면 넣고 스프넣고 계란 넣고 할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찬물에 면과 스프 넣고 돌리면 끝인 아주 간단한 조리법이다. 단 용기만 준비된다면 꼬들꼬들한 면제대로 익혀낸 라면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함정. 물론 난 전자레인지 조리법까지 다 마스터했다. 자의 반 타의 반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해야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조리도구라면 전자레인지 하나 달랑 주어진 사무실 탕비실에서 난 1년을 버텼다.


서울 생활 20년, 난 아직도 라면이 주식이다.

지난 1963년 9월 15일. 라면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 먹는 모습을 보고 선보인 라면은 꿀꿀이 죽 두 그릇 가격인 10원에 달했다. 물론 당시 된장찌개가 30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1/3 가격에 한 끼 해결이 가능했으나 나름 라면 좀 먹어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포만감은 분명 달랐으렷다. 그러한 것을 당시 사람들이 몰랐을까! 출시 당시 라면은 대 실패한 품목이었다.


그리고 98년 이후로 난 태초에 라면을 선보일 때 삼양식품 고 전중윤 회장이 마음에 품었던 뜻을 내 삶 속에서 실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 면식 수행을 하고 있다. 내가 라면을 먹는 이유는 한 가지다. 김치찌개 한 그릇도 7~8천 원에 달하는 작금의 물가 상황에서 라면은 고작 1,500원에 불과한 가장 저렴한 한 끼 대용이다. 여기에 삼각김밥 한 개를 먹어도 한 끼 식사에 소진하는 총금액은 3천 원이 안된다. 편의점 도시락도 4,500원인 상황에서 라면의 몸값은 정말로 요긴하다 못해 파격적이다.

간혹 라면을 가지고 사치를 누려본다. 라면에 이것저것 잡다한 것을 넣고 끊여내는 일명 황제라면 이다. 마트에서 구매한 맛살을 넣고 육수를 낸 후 건 표고버섯과 라면과 스프를 넣어 끓여 낸다. 그리고 계란 한 알을 탁 깨 넣고 살짝 끓여내면 라면 본연의 맛은 더욱 진하게 육수는 더욱 구수하게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들어가는 재룟값 덕에 한 끼 끼니 비용은 5천 원 이상으로 수직으로 상승한다.

차라리 밥을 사 먹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오늘도 라면으로 하루 식사를 해결했다. 요즘 주로 즐기는 라면은 오뚜기 진라면 순한 맛이다. 어쩌다 보니 서울 생활 20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도 라면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야말로 면식(麵食)의 달인이 된 셈이다. 면은 익힌 것을 좋아하게 됐고 가는 면을 되도록 선호하나 진라면은 굵다는 것이 흠이랄까! 그래도 자극적이지 않은 국물에 선택한다.

어린 시절 라면은 내게 한 끼 대용이 됐다. 성인이 된 지금도 라면은 한 끼 대용이 돼주었다. 머릿속에서는 마블링 화려한 한우가 떠오르지만 언제나 그렇듯 간당간당한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나면 내 마음을 손에 넣고 뒤흔들던 잡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래도 라면을 먹을 때만 늘 마음 한구석 아쉬움을 달랠 수 없다. 내년에는 라면보다는 좀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머리는 모르겠다는 신호만 보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라면은 삶을 지탱해 준 한 축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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