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김현동(cinetique@naver.com)
[2015년 07월 09일] - 올해 6월 초 페이스북(SNS)에 소위 아몰랑 해석기라고 알려진 ‘박근혜 번역기’가 등장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번역해 준다는 페이지는 박 대통령 특유의 알아듣기 어려운 화법을 일반적인 수준의 상식을 지닌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페이지가 본격 가동되자 서비스를 접한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아냥거리던 여론은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원뜻을 알게 되면서 더욱 격앙된 반응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대통령의 횡설수설 언변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기에 당연히 풍자 거리도 넘쳤는데요. 이를 지켜본 청와대는 심기가 불편했나 봅니다
얼마 못 가 ‘박근혜 번역기’ 운영자가 청와대 공식 트위터로부터 차단을 당했다는 사연을 공개하면서 또 한 번 ‘박근헤 대통령’은 조롱의 대상으로 등극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박 대통령의 일거수가 재미를 안겨주는 1등 소재로 손색이 없던 것. 그렇다 보니 누리꾼은 해당 서비스의 운영자를 ‘오늘만 사는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몸조심해줄 것을 당부하며 안위를 걱정했습니다.
뜬금없이 운영자의 안부를 걱정하게 된 누리꾼의 행동. 무슨 이유 때문일가요? 환영과 걱정이 교차하는 묘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된 것은 과거의 사례가 주효했기 때문. 실제 박근혜 대통령의 풍자 그림을 그린 작가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보수시민단체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하면서 이를 안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해당 사건이 더욱 수긍하기 어려운 점은 고발 주체가 당사자가 아닌라는 배경 때문인데요. 보수 성향의 단체나 개인이 대통령과 국가기관을 대신하여 명예훼손죄로 고발장을 내며 여론을 옥죄이는 역할을 자청한 것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수 없는 것은 비슷한 사례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고발장에 대해서 기존까지는 실제 법적 잣대를 들이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명예훼손성 글에 대하여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신고를 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그나마 접수되는 경우도 정치인과 같이 공인의 지위에 있는 이들이 대신 요청하는 경우였기 때문이죠. 이는 현행법 기준에서는 당사자의 신고가 명예훼손의 성립 유/무를 좌우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고발이 된 사건에 대해서도 떠들썩 했던 것과 달리 대부분 경고수준에서 조용하게 마무리되는 형국으로 종료 됐습니다. 하지만 이의 처리 방식을 뒤엎을 수 있는 개정안이 등장했습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글에 대하여 당사자의 신고 없이도 심의를 개시하고 삭제,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심의규정 개정에 착수한 것.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10조 제2항 상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해야 심의를 개시한다”는 규정에서 ‘당사자 또는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해야’라는 부분을 삭제하여,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의 요청 혹은 직권으로 명예훼손성 글을 조치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른바 명예훼손 법리를 남용하여 당사자의 신고가 있기 전에 제3자가 ‘선제적 대응’을 내세워 온라인 공간에서의 대통령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지론입니다.사실상 입막음을 위한 또 하나의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인데요.아직 발생되지 않은 시점이라 성급하게 걱정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 정의로는 선제적 대응? 악의적인 선제적 대응?
작년 10월 사이버명예훼손전담팀은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발언한 후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하여 ‘선제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다수 누리꾼은 이에 저항하여 카카오톡을 탈퇴하고 텔레그램으로 망명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망명사태가 과열되자 검찰은 국감에서 선제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이 발의되면 선제적 대응의 근거가 마련되는 셈인데요.
이러한 ‘선제적 대응’은 주로 공인 혹은 고위공직자가 자신에 대한 비판하는 글에 대하여 직접 고소‧고발을 하여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이 없이 제3의 국가기관이 직접 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남용될 여지가 큽니다.
그렇다 보니 시민단체는 이러한 맥락에서 “방심위가 간이한 시정요구 제도를 통해 검찰이 못한 선제적 대응을 대신하여 대통령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이 금번 심의규정 개정의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수석비서관 회의 모습(사진=청와대 트위터)
실제 박 대통령의 풍자 그림을 그린 작가와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모두 제 3자에 의해 고발당한 상태이므로, 심의규정이 변경될 경우 악용될 여지는 불 보듯 뻔하다는 것. 게다가 다수 대중 사이에서 발생한 명예훼손 글을 제삼자가 신고하거나 선제적으로 방심위가 신고 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 자발적으로 인지할 가능성은 거의 닫혀있기에 ‘구제’라는 명목이 힘을 얻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최근 돌아가는 여론도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악제로 작용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되지 않겠냐는 의심의 눈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가령 대통령, 고위공직자 등 공인들에 대한 비판이 난무하게 될 경우 해당 글에 비관적인 의견을 남긴 이를 상대로 제3자인 지지자나 단체가 고발에 나서 비판 여론을 신속하게 삭제 또는 차단하는 수단으로 남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서적, 음반, 영화, 방송 다른 어느 매체에서도 명예의 당사자가 가만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특정 콘텐츠를 규제했거나 특정인의 명예를 구제하려 했던 사례가 딘 한차례도 없다는 점이 이번 개정안을 더욱 의심케 합니다.
과연 이번 개정안은 무엇을 목적으로 둔 것일까요? 인격권이나 지적재산권 등 개인의 권리 침해에 있어 개인의 적극적 의사가 없음에도 행정기관이 먼저 나서서 이를 해결하는 것은 국가 후견주의의 다른 모습이며 효율성 측면에서도 매우 비효율적인 방침입니다. 비방과 차단을 목적으로 남용된 고소·고발 사건으로 사실상 대중이 누릴 수 있는 것도 이득이 될 것도 없습니다. 진흙탕 싸움에 불과하기 떄문이죠.
시민단체의 주장도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위임에 따라 공직에 있는 자가 국민의 표현을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함에, 이를 촉발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소지가 높기에 이번 개정안의 의도를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민에게 유익한 제도라면 반대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방심위의 심의규정 개정은 그 대상이 국민의 구제가 아닌 국민을 역으로 겨냥해 효과적인 제압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모습이기에 최근 청와대의 심기를 연이어 건드린 여론의 길들이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듣기 싫으면 차라리 ‘닥치고 있어!’ 라고 하세요. 역시나 본심은 저랬어 하고 위안이라도 삼죠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감안히 있어!’라고요? 여튼 됐고~ ‘알아서 할테니’ 신경 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