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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인 백수, 2년 3개월 조기전역하다.

시사/정치/사회/인터뷰/칼럼

by 위클리포스트 2014. 1. 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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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뽀 / 정리해고  ]
대한민국 공인 '백수'가 된 30대의 B급 에세이
2년 3개월 조기 전역을 신고 합니다.




- 이유도 모르고 쫓겨나 친구 만나 하소연
- 기업의 추악한 모습 경험하니 정떨어져
- 믿을 놈 하나 없던 기업의 자본주의

글·사진 : 김현동(cinetique@naver.com)



[2014년 1월 2일] 누구에게는 뜻싶은 한해를 정리하던 무척이나 낭만 가득한 시기였을지 모른다. 성인남녀 대다수에게는 로맨스가 현실에서 표출되는 연말이겠지만 나에게는 지옥으로 향하는 헬게이트가 열렸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던 10월의 중순경 회사에서는 나에게 '권고사직' 을 슬며시 내밀었다. 좋게 말해서 권고이지, 사전 예고도 없었고 선택권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통보했기에 '강제해직'이 더 어울리는 말이다.

평소와 같이 출근했던 오전. 이 회사를 다닌 지 횟수로만 2년을 약간 넘긴 3개월 차에 접어들던 날. 2주만에 출근(2주간 출근을 안함)한 팀장은 나를 호출하고, 좁은 쪽방으로 부르더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말을 돌리다가 '권고사직'이라는 통보를 받으라고 으름장을 놨다. TV에 나오는 그러한 모습이 내게도 찾아올 줄이야! 라는 생각쯤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넘어간 사이 난 통보를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며 갈등하는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그 순간에도 다른 대안을 찾았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잡아볼 심산으로 물어본 말에 팀장은 "이게 모두를 위해 좋은 결정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무슨 모두를 위한 좋은 결정?'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좋지 않은데, 좋다고 하니 이해가 안 갔다. 좋게 표현해서 권고사직이지 그 상황에서는 내겐 협박과도 들렸다. 나가야 할 때가 되었으니 나가라는 메아리만 귓가에 환청으로 앰돌았다.

엄연히 상식을 벗어난 통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내겐 이 같은 현실을 항변한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냥 험한 꼴 더 보기 싫으면 순순히 나가라고 할 때 나가라는 독촉을 받아들이고 체념한 상태였으니까!

간신히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나니 내 책상 위에 가득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가져갈 것과 두고 갈 것을 나누고 이 중에서도 버려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으로 재분류했다. 그러고 나서 복사기 옆에 널브러져 있던 종이상자를 들고 자리에 돌아와 담기 시작했다. 하나둘··. 주섬주섬주섬 그 순간까지도 버텨볼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그건 나의 희망일 뿐이었다.

그렇게 난 2만 3개월의 복무를 끝으로 원치 않은 강제 조기 전역을 당했다.


# 회사에서 제시한 당근
거부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는 팀장
기업의 추악한 배려. 비참했다.
나가야 하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나가라고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뽑혔던 기업이다. 불과 내가 권고사직으로 쫓겨나기 몇 개월 전에 서울시에서 표창을 내린 기업의 행태가 '일하기 좋은 기업'이라니 의아했다. 한편으로는 '일하기 좋은 기업'도 이런 식인데, 일반 기업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야! 라는 의문도 생겼다. 더욱 불만을 높인 것은 사람을 나가라고 해놓고 나가야 하는 명쾌한 이유조차도 설명하지 않는 회사의 행태였다. 총괄팀장은 함구했고, 부서 팀장은 자신이 뜻이 아니라는 말 뿐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딱 그 형국이다.

이런 억울함을 아는지 '권고사직'이라는 것을 빌미로 달콤한 당근 이랍시고 미적지근한 조건을 제시하며 못 나간다고 버티고 있는 나를 달랬다. 회사 사정에 따른 권고사직이니 보상하겠다는 의미다. 1개월 급여에 해당하는 위로금과 실업수당을 받고 모양 구기지 않고 나가던가 아니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한번 해보자는 협박이다.

다른 팀으로 발령이라도 내 달라는 요청에 팀장은 딱 잘라 말했다. "어차피 옮겨가도 내(팀장)가 팀장으로 가는 팀인데 결국은 정리하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며 실업급여를 받게 해줄 때 나가는 것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라는 것이다.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하는 제안이란 말인가! 자발적인 퇴직도 아닌 강제적인 퇴직을 하게 된 직원에게 당연하게 해줘야 하는 조치를 회사는 선심 쓰듯 제안했다. 하지만 난 거절하지 못했다. 이것이라도 받아야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현실과의 타협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회사는 '갑'이였고, 난 '을'도 아닌 '병'도 아닌, '정'의 입장에서 이용당하다가 필요가 없어지니 버리게 된 카드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니 매월 1명씩 동료가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심지어 인사도 안 하고 나간 동료도 있어 찾아보니 사정이 생겨 나갔다는 말만 반복한다. '회사를 그만 둬야 하는 무슨 급한 사정이 생겼길래 말로 안 하고 나간 것일까?'

언제인가 내가 나가야 하는 차례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시크하면서도 쿨하게 나가겠다. 고 생각을 한 적 있었지만, 이렇게 닥치게 되자 비굴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하게 되니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딱 2년 3개월이다. 2011년 7월 1일 첫 출근을 한 이후 2013년 10월 30일까지 난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된 중견기업에서 일했다. 밖에서는 고등학생을 상대로 꿈을 펼치라고 말하던 기업. 겉과 속이 다른 기업. 나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이 기업의 이미지는 아주 상식 외로 몰상식했다.


# 커피 한잔 하자던 동료
남의 일 같지 않다던 동료
연달아 5잔째···. 밝게 웃자.
일하기 좋은 기업의 추악한 이면


시간이 지나 내가 나가야 하던 날 아침. 정리 다 됐으면 화요일에 나가도 좋다던 회사에서 난 무력하게 내 주변 정리를 시작으로 업무를 말없이 동료에게 인계했다. 그 와중에 내가 나간다는 소문이 퍼졌나 보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내가 짐을 싸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여 불안했다고 귀띔 해줬다.

여기저기에서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이야기 좀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동료) 그만 두는 거에요?
(본인) 팀장 통해서 통보받았어요. 나가라고 하는데 저도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동 : 언제 나가라고 하던가요?
본 : 월요일이요. 목요일에 나가겠다고 했는데, 화요일에 다시 부르더니 준비 다 했으면 바로 나가도 좋다고.
동 : 어디 갈 곳은 있어요?
본 : 당연히 없죠. 멀쩡하게 출근하던 직원에게 예고도 없이 사직 처리를 했는데···.
동: 힘내세요. 잘 될 거에요.
본 : 허리를 다쳐 힘도 못 쓰는데 이 몸으로 당장 어디에 취직하겠어요.


잠시 후 또 다른 동료에게 커피 한잔 하자는 청을 받고 이야기 나누고, 또 다른 동료와 이야기 나누고. 회사에 대한 환상이 깨지던 그 날 날 격려하던 동료의 한 잔 커피에 빈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다. 매월 자존심을 판 대가를 입금해주던 회사에서 열정을 불태운 대가는 매정했다. 결과는 내게 권고사직으로 돌아왔고, 난 회사가 이렇게 비 매너리즘을 보여야만 했던 연유가 궁금했지만,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다.

이런 것이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고 끊임없이 이윤을 챙겨 기업을 생존할 수 있게 했던 비법이겠거니 라는 추정뿐이다.


# TV 속 그 모습, 오! 틀린 것이 아니네.
상자에 적당히 담긴 소모품
비참한 심정까지 담아 엘리베이터로.
마중나와 준 동료께 고마움을


드라마 속의 실직 가장이 나올 때면 등장하는 단골 장면이 있다. 하루아침에 사직 처리가 된 가장이 자신의 물건을 박스에 담는 모습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여길 때에는 상자 하나에 불과한 짐을 보며 "저것보다 많을 것 같은데~" 이랬지만, 막상 내가 겪어보니 상자에 넣을 만한 것이 없다.

빼곡하게 적힌 회사다이어리는 들고 나올 수가 없었다. 열정적인 기록도 인정받지 못하고 나왔으니 지금은 슬픈 기록 아니던가. 이곳에서 몸담으며 빼곡히 담긴 메모는 내 삶의 일부였지만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명함은 가방에 담았다. 자비로 사들인 품목은 빼놓지 않고 주섬주섬 담았지만 반도 못 찬 상자와 소지품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무리 찾아도 발견하지 못한 보이스레코더. 누군가 가져간 것 같다. 부디 버리지 말고 잘 써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불 꺼진 사무실 문을 열고 누구 보다 가장 먼저 불을 켜고 하루를 시작하던 이 회사에서 그렇게 3년이 되지 못한 세월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사실상 근태 부문에서는 꼬투리 잡을 것이 없었는지, 그 외의 것에서도 이유도 못 만들었는지 팀장이 내게 전한 마지막 말은 "나도 이러기 싫어요···." 라며 말끝을 흐린 구절이다. 누군가는 나가야 하는데, 그게 내 차례가 되었으니 나가주세요. 부탁이에요 라는 요청으로 들렸다. 여지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단호했다.

인사팀에서 호출을 받고, 한 장의 서류에 서명을 했다. 회사 재직당시에 알게 된 보안 사항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니네들이 업무라고 자초한 일련의 대처방식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긴 하나보네…" 하긴 어떤식으로 입막음을 했는지, 어떤식으로 외부 이슈에 대응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식으로 매체의 서열을 나뉘었는지 그것에 대해 내게 자문을 구했으니 내가 모를수가 없고 그게 알려질까봐 두려운거야? 염려마… 적어도 한때 같이 몸담았던 사람으로써 최소한의 매너는 지켜주마.


# 고용보험의 혜택을 누리다.
나와 같은 사람들, 그래도 나는 젊다.
자신을 자위하며 내 탓이요
대출 상담원도 무시하는 백수


"자랑은 아니지만 알겠어요~" 졸지에 상담원에게 비아냥 당한 기분이다. 이렇게 된 것이 내 잘못은 아닌데 왠지 내가 죄지은 것 같아 어디론가 숨고 싶다. 2014년 1월 2일 목요일 오후 15시경.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내 기분을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난 오늘도 발버둥을 쳐본다. 언제쯤이나 벗어날 수 있을까. 내겐 대안도 대책도 없다.


실직과 동시에 각종 대출금 상환 독촉이 시작되다. ⓒ김현동


뜬금없이 울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SC은행에서 하는 햇살론 상품으로 대환대출하라는 상담원의 조건은 이랬다.

상담원 : "하는 일이 있다면 누구나 햇살론 가능합니다." 설명을 가로막고 낭랑한 목소리로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 : "어쩌나요~ 전 하는 일이 없는데. 하하하" 상담원 왈 : 하는 일이 없어요? 나: 그렇게 됐어요. 전 지금 놀고 있답니다.

곧 이은 상담원의 답변은 내가 왜 재를 붙잡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지 라는 투의 푸념이 가득한 목소리로 전달됐다. 상담원 : "자랑은 아니지만 알겠어요~" 뚝

회사에서 나오게 된 것이 내 잘못도 아닌데, 한 통의 전화로 인해 나의 바이오리듬은 무참히 조각났다.
그렇게 끊긴 전화기를 한 손에 들고 잠깐 멍하게 있었다. "나 취업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다시 어지러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리고 실직은 너의 잘못이야~ 라는 비난이 앵앵거린다. 내가 잘못한 걸까?


# 백수로 시작하는 하루
3개월째 러브콜 없는 일상
연말은 무참하게 조각나
기억해라! 언젠가 기필코 돌려주마


난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공인한 자칭 '공인 백수'가 됐다. 2013년 11월 1일 자로 직장이 없다는 것을 인정받고 국가의 녹을 축내는 실업자 신세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회사를 나가지 않으니 노동을 하지 않지만 이런 게 국가는 하루 4만 원에 달하는 소정의 위로금을 지급해 시름을 달래주고 있다.

한 달을 약 30일로 계산하면 약 100만 원이 조금 넘어가는 큰 금액으로 생활을 돕고있다. 무한정 주는 것은 아니다. 최대 6개월 이내에 실업에서 취업으로 상태 값이 변경되지 않으면 지원금을 끊어버리겠다는 엄포도 받았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계추는 틈을 주지 않고 왕복운동을 하며 초침을 올리고 있다. 그렇게 두 달째 급여를 수급했으니 이제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9년간 열심히 고용보험을 냈다는 실적의 보답인 셈이다. 기록을 보니 무려 88회 납부 했다. 32 회만 더 내면 난 국민연금을 죽을 때까지 수급할 수 있는 명예로운(?) 자격까지 주어진다. 일찍 사회에 발을 내디뎠고 그 결과 10년 내야 하는 연금을 7년 넘게 낸 것이 이렇게 되었으니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셈이다. 하지만 부족한 횟수를 채우기 위해서는 취업을 해야 하는데 내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잘못된 전산오류와 함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일상의 연속 ⓒ김현동


집에서 머무른 지 벌써 3개월째에 접어들지만 아직 러브콜은 없다. 눈높이를 낮추라고? 그것도 말이 쉽지 낮춰서 갈 수 있다면 그 짓을 왜 마다하겠는가. 대한민국에서 나 하나 건사하자고 내 자리를 찾고는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아직은 발버둥 칠 힘이 있으니 이런 글이라도 적는 것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이런 모습을 보며 부러움 반, 안타까움 반으로 위로를 했다. 구속되지 않은 영혼의 자유로움이 부러운 것일 테고, 젊은 녀석이 집에서 빈둥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표하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게 쉽지 않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닌데.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서류를 접수하며 갈 곳을 물색하고는 있으나 세상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걱정을 모르는 몸뚱이는 살만하지만, 마음은 몹시도 불편하다. 대기업만 지원한 것 아니냐고? 에이. 설마 그랬겠어. 말을 못해서 그렇지 속은 바싹 타 버린 지 오래다. 나 어디 지원했는데 탈락했다. 말하기가 그렇잖아.

하필 그 많은 타이밍 중에 낭만이 무르익어야 할 연말 즈음에 회사에서 나온 터라 사방에서 연말 모임에 참석을 종용 받았지만, 선택은 마음이 안 가는 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으니 결국은 '불참'.

이런 행동의 결과는 지인의 걱정까지 발동시켜 놓게 되었다. 혼자만의 인생인 줄 알았지만, 실직은 나를 아는 모든 이의 걱정으로 변모해 일파만파 퍼졌다. 우려가 더욱 커지기 전에 진화시켜야 할 텐데 아직은 모르겠다. 효과 좋은 소화기는 어디를 가야 구매할 수 있을까? 세상의 삶은 내가 이해하던 상식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 no.1 media rePublic '위클리포스트' (www.weeklypost.org) / 보도자료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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