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6월 23일] - 여름을 상징하는 국가별 대표 음식에 한국의 냉면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이웃 나라 일본에서 물 건너온 메밀소바(蕎麥) 되겠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한 젓가락 들이키며 목으로 넘기는 메밀소바의 미덕이 소리에 있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정통 메밀소바는 한 번에 삼키는 것이 제대로 먹는 정석이라고.
라면과 국수에 익숙한 까닭에 쫄깃한 면을 선호한 우리와 달리 일본 소바 특유의 툭툭 끊어지는 식감은 굳이 여러 번 씹지 않아도 소화에 무리가 없기에 자연스럽게 발달한 문화다. 그러하기에 필히 기억하시라. 소바를 먹을 때에는 '후루룩'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 일본 전통음식, 아는 만큼 맛있다.
다만 우리에게는 일식집에서 기본 메뉴의 한 종류인 것처럼 선택권 없이 세트메뉴로 나오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을뿐, 일본에서는 국민 음식이라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자 나름대로 역사가 깃든 전통 음식이 소바라는 거다. 게다가 냉면도 함흥, 평양식 등 다양하게 나뉘는 것처럼 소바 또한 다양할진대, 가장 대중적인 3가지를 꼽아보면 ▲야부(藪) ▲사라시나(更科) ▲스나바(沙場) 되겠다.
일식 조리사도 아니고, 뭐가 뭔지 알 길이 없으니 말 나온김에 찾아봤다. 먼저 밀가루와 메밀의 비율을 2:8로 맞춘 소바이자 우리에게 익숙한 그 소바가 바로 ▲야부(藪)라는 소바라고. 밀가루가 들어가는 까닭에 탄력 있는 찰기를 지니고 동시에 메밀 특유의 향을 머금고 있는 가장 대중적인 거친 메밀 소바라고 한다.
반대로 메밀 소바 특유의 거친 식감에 거부감이 있다면 ▲사라시나(更科) 소바가 대안이다. 메밀을 50% 이상 정제해 면으로 만들다 보니 목 넘김이 부드럽고 삶는 시간도 아주 짧다. 일반적인 소바를 삷는데 필요한 시간은 약 2분 이상이지만 제대로 만든 사라시나 소바는 1분 미만에 불과하다. 이 두 가지에 거부감이 든다면 ▲스나바(沙場)가 위 2가지 소바의 중간 성격인 면으로 기대볼 만 하다.
최근에는 이들 면에 유자나 매실을 첨가해 기능성 소바 면을 선보이는 형국이다.
면도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나뉘는데, 먹는 방식이라고 매 한 가지일까?
어떨 때에는 종지에 면 넣고 살 얼음 낀 차가운 육수를 그 위에 부어 나오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면 따로 육수 따로 내는 것을 눈여겨봤다면 바로 이와 같은 방식에 주목하자. 그점에서 면과 쓰유가 따로 나오는 것을 봤다면 그것은 자루소바이며, 국물에 풍덩 담겨 나오는 형태라면 가케소바의 한 종류다.
좀 더 배불리 먹어야 하는 이와 젊은 층을 상대로 한 소바집에서는 덴뿌라를 얹고 내기도 하는데 이를 덴자루소바, 채소와 고기를 넣어 철판에 볶는 야끼소바, 참마가 올려진 도도로소바 등 취향과 개성 그리고 최근 젊은 층의 입맛에 따라 진화하다 보니 그 종류도 점차 다양해지는 중이다. 가령 칼칼한 육수를 넣은 온소바와 매콤한 소스를 곁들인 냉소바 또는 비빔소바도 퓨전의 한 종류로 자리를 넓히는 중이다.
# 한국서 맛보는 일본정통 소바 향연
종류도 형태도 그리고 특징도 남다른 소바라고 하지만, 잡다한 종류와 달리 애초에 시작은 한 가지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소바의 본고장이자 장인의 국가인 일본에서도 소바원조를 보존하고자 대를 이어 명맥을 유지하는 데 힘쓰는데, 그중 9대째 소바의 대를 이어온 227년 전통을 계승한 '호리이 사라시나'가문의 오너 셰프의 솜씨가 때마침 한국에서 발휘된거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가만히 있을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향했다.
22일과 23일, 단 2일 동안만 한다고 했으니 이때 아니면 언제 먹을 수 있나! 는 생각에 도착한 곳. 소바의 정수를 선보일 호리이 요시노이 오너셰프가 내세우는 주력은 시라시나 계보를 잊는 소바렸다. 밀가루처럼 새햐얀 색이 될 정도로 정제한 메밀가루를 사용해 소바 국수가 소면과 흡사한 흰색을 띠고 있어, 한때에는 밀가루 비중이 높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사기도 했던 바로 그 면발이라고. 메밀을 사용한 소바라고 해서 꼭 흑갈색일 필요가 없다는 오해가 풀린 것은 최근이 돼서야 발생한 일이다.
그 와중에 웨스틴 조선호텔이 나서 대를 이어 소바의 명맥을 이은 일본 소바장인을 초빙해 소바의 참 맛을 한국인에게 선사할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는 하더라만, 과연 그 마음이 제대로 전해진건가? 라는 질문에는 욕을 안 먹었으면 다행이겠구나! 라는 대목이다. 일본에서도 굉장히 실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장인을 모셔다가 본토 맛 그대로를 전달하는데 집중할 것이지 꼼수를 부리는 통에 초장부터 실패였으며 동시에 소바가 맛있다라는 인식 조차도 그와 반대로 전개해놨으니 참담하다.
장인이 직접 나서 메밀가루를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밀어 수타로 탄생한 면을 볼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게다가 이렇게 만든 소바면은 약 40초만 삶아 나가야 한다는 설명이 더해지니 더욱 우~와 하던 상황으로 향했다. 기본적으로 거친 느낌이 특징이라 부드러운 면을 원하면 더 삶을 수 있으나, 메밀 가장 안쪽만 사용해 반죽했기에 짧은 시간에도 제대로 삶아진다는 설명 또한 무언가 대단한 기세를 몰아가는데 일조했다. 게다가 이번 기획전은 일본 본토의 소바 맛을 그대로 호텔에 옮겨온 것으로 알려졌기에 고작 2일 뿐인 행사이기에 굳이 찾아온 이도 상당수라 본다.
단 2일 일정을 위해 소바장인은 칼부터 밀대까지 전부 일본에서 사용하던 그것을 공수해왔다. 소바면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반죽부터 재단까지 약 20여 분 가량. 가루가 덩어리가 되고 덩어리가 면이 되는 신기한 모습에 참관객은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기대를 모아겠는가!
그러한 노력에도 호텔측의 미흡한 준비에 취지가 엇나갔다. 가쯔오부시와 다시마를 넣어 고유의 방식으로 숙성시킨 일본식 소스인 쓰유는 일본 현지에 맞췄다고는 하는데, 짜도 너무 짜 거부감이 들 정도였으며 그러한 의견이 분분한 와중에도 주방은 별다른 변화의 기미가 없었다. 본지 또한 이점에 대해 질문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주방에서 장국을 부워 나가는 가케소바로 내면서 발생한 일이며, 그점을 감안해 사전에 간을 약하게 했음에도 짜게 느껴진 것이라는 구차한 설명이다. 그렇게 할 거라면 차라리 찍어먹을 수 있게 했던가! 돈은 돈대로 쓰면서 소금물 먹는 느낌 딱! 그 정도였다.
호텔측의 이 같은 변명을 듣고나니 내가 짠맛에 길들여지지 않은 식습관이 문제였나? 일본인은 원래 짜게 먹나? 하는 불필요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고급 호텔에서 때아닌 내적 갈등에 갈팡질팡하던 그 순간 누군가 종지에 각기 담아 이동하는 그 형태는 마치 자루소바를 연상시켰기에 아~ 뭔가 문제가 있구나 하며 안도했다지. 밤 9시가 다 되어 들려온 이야기로는 초반에 선보였던 쓰유의 간이 좀 더 연해졌다는 의견이다. 애초에 일본 정통을 선보이고자 했더라면 형태 조차도 일본의 그것을 답습함이 옳았지만 호텔측은 뷔페랍시고 그저 종지에 담아 주는 편의를 추구하면서 이 사단이 난거다.
호텔측의 안일한 선택도 따져보면 나름 근거가 있다. 본토에서는 쯔유의 역할이 단지 면을 찍어먹기 위한 수단이라면, 한국에서는 면과 함께 마시는 국물의 개념이기에 우리에게는 익숙한 문화를 맞춘답시고 후자를 따른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일본 소바는 면은 말아 먹거나 적셔먹는 것이 아닌 면의 아랫부분을 살짝 젹셔 먹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며 이러한 특성을 분명 알고 있을거라 추정되는 상황에서 불편한 결과를 야기했다는 것은 뭐라 할 말이 없다.
한 여름을 앞두고 마련된 소바장인의 특별한 무대, 애초에 일본 본토 그 방식 그대로 정식으로 갈 것이지 뷔페에서 어줍잖게 선보이더니 돈은 돈대로 맛은 맛대로 어긋나며 얼룩진 추억으로 기억됐다. 이날 호텔측은 스시 장인의 무대라는 이유로 평일보다 2만원 오른 1인 12만원을 청구했고, 호텔을 벗어나는 그 순간까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자세로 일관한 무대였다. 괜시리 일본에서 넘어온 장인만 욕보인 셈인데, 모든 문제의 원흉은 호텔이다. 호텔측은 이점을 명심하시라!
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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