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2017년 04월 01일] - “팀장님. 옳은 선택일까요? 지금도 모르겠어요. 기간제 계약직이라 자리를 못 잡으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꿈꾸던 일이었고 지금 포기하면 다시는 이러한 기회가 안 올 것 같았어요. 더욱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
그녀는 오는 4월 3일 자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떠난다. 일본에서 머무르는 기간은 약 1년 6개월이다. 그 이후는 기약할 수 없지만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각오로 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누구에게는 짧으면 짧은 또는 길다면 긴 기간이다. 처음 일본의 한 대학교에서 러브콜을 받았을 때 먼저 생각했던 것은 대학 전공을 살릴 수 있겠다.였다. 결정을 하기 전까지 포기할까? 를 수없이 고민했지만, 마음은 기운지 오래였다. “그래. 도전하자!”
비슷한 또래 사회 초년생이라면 다들 비슷했겠지만, 지금의 직장에 자리를 잡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지나왔다.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력서를 작성했고, 면접을 봤고, 불합격 통보를 경험하며 좌절했기에 겨우 자리한 이곳에서 옮기는 것에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준비한 송별회를 끝으로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이제 출국 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팀장님 많이 도와주셨는데. 떠나서 미안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제가 가장 많이 성장했던 시기 같아요. 1년 6개월 뒤에 한국 오게 되면 연락할 테니 자리 만들어주세요. 그때는 팀장으로요.”
그녀의 이름은 김한빛. 홍보대행사에서 3개월간의 수습을 끝내고 정직원 전환이 된 이후 AE 라는 직책을 달고 다양한 브랜드 PR에 참여했다. 물론 초반에는 좌충우돌 실수 연발에 깨지는 일상이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조리 있는 언변과 순발력으로 벗어나는 재치가 기발했다.
그녀가 담당하던 고객사의 임직원은 하나같이 그녀를 이렇게 기억했다. “일 참 잘하던 직원. 얼굴도 예쁘잖아~” 언론사 기자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빛씨가 그만둬요? 왜요? 일 잘했는데~ 옮기는 거예요?” 심지어 홍보대행사 직원이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자 2명이 찾아와 거하게 밥을 사고 돌아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귀염을 받아온 김한빛 AE는 이제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새 출발을 예고한 상태다.
유독 인상 깊은 내용 가득한 이력서 한통
12월의 마지막 날. 오전 8시 30분 면접
교복 같은 옷차림으로 그녀가 들어왔다.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아침 8시 30분. 당시 김한빛 지원자가 처음 면접을 보러 오던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자면 고등학생이 교복 차림을 하고 두툼한 겨울용 코드를 걸치고 온 것과 흡사했다. 입사 이후 당시의 모습은 두고두고 화자 됐는데, 복장이 첫 번, 모습에 두 번, 독특한 표현력이 세 번이 될 정도로 인상 깊었다는 의미다.
면접관 : 어떻게 오셨나요?
지원자 : 오늘 면접 보기로 한 지원자입니다. 9시인데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면접관 : 이쪽으로 가시면 회의실이고요. 기다리면 잠시 후 면접관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지원자 : 네~
그리고 잠시 후 반응은 당시 참여한 총 3명의 면접관 모두 “전문적으로 교육받고 온 지원자 같아.”라는 평가를 할 정도로 우수했다. 보통 1주일 이내에 연락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하고 면접 당일 밤 합격을 통보했다. “출근하세요.” 잠시 후 “감사합니다.”라는 화답이 돌아왔다.
2015년이니 벌써 2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면접관 전원의 ‘GREAT’라는 평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어쩌다 좀 괜찮은데 하는 지원자도 ‘GOOD’에 그친 것이 다였다. 그렇게 사회초년생 김한빛은 업무 강도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센 홍보대행사에 발을 들여놨고 김한빛 AE라는 타이틀을 달기까지 무려 3개월에 달하는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야만 했다. 같이 일을 했고, 가르쳤던 상사로서 “그 직원 일 잘한다”는 말이 고객사를 통해 나오길 바라는 데 역경 앞에서도 곧잘 해냈기에 더욱 뿌듯했다.
그러한 그녀를 가장 당혹하게 만들었던 면접 질문은 무엇일까? “응답하라 1994와 1998 중 한 가지를 선택 한다면?” 이라는 돌발 질문 앞에서는 속으로 내심 당황했다고 한다. 주저 없이 대답한 그녀의 선택은 1998 이였다. 이유가 궁금했다. “1994는 시작 하기 전부터 기대를 모았어요. 그랬기에 중간만 해도 성공이 보장된 상태였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후속작은 눈 높이가 더욱 올라간 거에요. 1998은 잘해봤자 본전이었기에 성공하기 더욱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상황에서 인정받았으니 대단한거죠.”
1년 3개월의 홍보대행사 생활
어렵지만 기억에 남고 만족스러운 경험.
살면서 가장 크게 성장한 계기
홍보인을 꿈꾸는 지원자는 여전히 많다. 관련 시장도 성장 중이고, 산업이라는 것이 없어지지 않는 한 홍보 또한 없어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와 달리 수요와 공급이 적절한 시기가 맞지 않으면 자리가 나지 않는 분야이다. 그렇기에 현장의 분위기는 치열하고 마지막까지 인정받지 못하면 떠나는 것이 숙명이라 여겨질 정도다.
심지어 대형 대행사는 한 번에 20명 넘게 공채하지만 최대 6개월까지의 기간 동안 단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정리하는데, 기준은 단 한가지 경쟁력이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정직원으로 전환이 이뤄진 AE는 어떻게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김한빛AE가 내세운 카드는 ‘기본’이었다.
기본에 충실했다는 주장을 듣는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이 하나 있었으니 서울대 입학생이 으레 하는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어요’라는 그것이랄까! 그런데도 당사자가 그 이유를 들어 기본에 충실했다고 주장하니 가당치도 않았지만, 그 기본이 무엇인지가 궁금해 재차 물었다.
“위에서 지시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이에요. 팀장님은 A 방향으로 하라고 설명한 것을 실무자가 B 방향으로 이해하고 진행을 하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물론 이야기를 하는 지금도 제가 완벽하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저는 팀장님의 의도를 빠르게 파악했다고 생각해요.”
당돌한 표정을 하고 당차게 설명하는 그녀. 이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추가하자면 “제가 글을 쓸 줄 알았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많았어요. 저는 글 쓰는 것이 가장 어려웠거든요. 기본이 되는 보도자료부터 글로 시작해서 글로 끝나는 일인데, 제가 알고 있던 내용과 현장에서 쓰이는 것은 전혀 달랐어요. 홍보 분야에 도전할 예정이라면 글 쓰는 것을 배워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반면 영어에 올 인하고 매달리는 사회초년생의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영어를 쓰는 비중이 낮았다. 본인 또한 일어를 전공했기에 영어 울렁증이 심했으나 정작 고객사 담당자가 외국인이 아닌 이상 외국계 기업과 일을 할지라도 결국 소통은 한국 담당자와 이뤄졌다는 것. 물론 영어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였기에 영어 실력을 지니고 있으면 유리하지만 그것 조차도 가능성이라는 옵션인 셈이다.
대학 졸업 후 1년 넘게 백수였다.
집에서 놀아도 좋다고 허락 받은 기간
이제는 놀면 안 되겠다 생각에 도전
물론 지금은 웃는 얼굴로 당시를 회상하고 있지만, 그 전까지는 지옥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는 그녀.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는 취직 걱정에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었다. 취업 스터디도 했고 선배 추천에 이력서도 작성했다. 이도 저도 안되니 대학 취업 지원센터에도 찾아갔지만, 일자리는 나오지 않았다. 스트레스받는 모습에 수척해진 모습이 안쓰러워서였을까! 당시에 집에서 내린 처방은 ‘대학도 졸업했으니 1년간은 마음껏 놀아도 좋다’였다.
“열심히 놀았던 것 같아요. 친구와 여행도 다니고, 물론 용돈이 필요해 간혹 아르바이트도 하면서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와 같이는 못 지낼 것 같은데 어렸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1년이 다 되가다보니 조바심이 나는 거예요. 집에서 놀아도 좋다고 한 기간을 넘길 것 같았어요.”
너무 놀아 쉬는 것에 이골이 날 무렵. 정신을 차려보니 허락 받은 1년의 기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앗차. 더는 미룰 수 없겠구나. 순간 이런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일은 지금의 홍보AE가 아닌 마케팅 분야였다. 상품을 기획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일까지를 해보고 싶어 관련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연거푸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문제가 뭘까? 를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판단하고 현장에서 일하며 배우면 될 거다. 라는 생각에 ‘다국적 패션브랜드’ 계약직으로 덜컥 지원했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은 탈이 나는 법. 입사는 했지만 하는 일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당시 그곳에서 주어진 일은 크레임 해결 부서였고. 날마다 제품 문제로 반품 또는 교환하는 일이 주를 이뤘고 이 과정에서 억지를 부리는 고객은 하루가 멀다고 등장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고. 일명 진상 고객에 학을 뗀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을 그만둔 상태였고, 이후 홍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홍보는 재미있었냐? 는 질문에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짧은 기간 중 크게 성장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녀. 특히 욕심을 낸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가장 뿌듯했다고 했다. 그녀가 홍보AE일을 하게 된 것에 ‘잘한 결정이다’고 확신을 내린 계기가 있다.며 입을 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깨지는 일상으로 시작했고, 깨지며 하루를 마감하리라 예상되던 일정이었다고.
“언젠가 팀장님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저에게 ‘담당자가 당신이잖아.’ 라고 매몰차게 지적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들었던 당시에는 속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뜻이 아닌 것을 알게 됐죠. 고객사 일을 대신 한다는 자세가 아닌 내가 해당 기업에 소속한 직원이라는 자세로 임하라는 의미였어요. 그 전까지 삼자 입장에서 고민하고 제안을 했는데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니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죠. 그 일을 경험한 직후였어요. 제가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으니까요.”
10년 뒤 유통하고 싶다는 당돌한 아가씨
잘 대해주신 분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해
한국 오면 놀러 갈게요~ 환영해주세요.
곧 일본으로 떠나는 당돌한 김한빛AE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다국적 패션브랜드에서 쓴맛을 보고 자리한 홍보/마케팅 회사에서 1년 3개월의 트레이닝을 받은 그녀는 지금 업계에서 인정하는 홍보AE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 그 직책도 내려두고 일본 대학 행정실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물론 그곳에서 하는 일도 홍보AE 당시 했던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누군가가 일을 진행하는 데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연결해주는 고리 또는 일본에 유학 온 한국인 학생이 자리를 잡는 것이 수월하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이 주가 될 예정이다. 그때의 자세도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다. 학생의 일을 대신 처리해준다는 것이 아닌 내가 그 학생의 입장이라면. 아니 내가 그 학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를 고민하는 자세로 일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느낀 점인데 말은 참 잘한다. 분명 그 마인드라면 옮긴 곳에서도 인정받는 인재로 잘 적응하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사회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해야 말이지….
“고맙습니다. 제게는 첫 직장이라 더욱 남다른 곳이에요. 그래서 더욱 일본에서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왕 결정을 내렸으니 더욱 실망하게 하지 않도록 잘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들어올 때마다 놀러 갈게요. 환영해주세요. 제가 하던 일 정아씨가 잘 해주셔야 하는데……정아씨 잘해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