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2017년 06월 02일] - 알프스(ALPS) 키 스위치 특유의 청아한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탁탁탁~ 하는 소리는 마치 타자기와 흡사했고 튕기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달되던 그 순간 모니터에는 의도하던 문자가 등장했다.
누가 뭐래도 당시에는 모노크롬 모니터와 알프스 키보드의 조화가 세상 부럽지 않은 호사였다. 20년이 넘은 지난 경험임에도 당시의 추억은 내게 사치를 합리화하는데 여전히 쓰이고 있다.
기계식은 진리이며, 진리의 절정은 바로 청축이라는 불변의 공식도 그때 정립됐다.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축은 따로 있다. 바로 갈축이다. 청축의 '똑' 하는 소리만 없앴으나 그 느낌은 영락없이 청축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물론 갈축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분명 영향을 줬으리라!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선택이기에 청축이 그리울 때가 많다.
# 그렇다면 청축과 갈축의 조화는?
나 같은 고민을 먼저 해본 이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한동안 자취를 감춘 이유를 보면 제품이 나오긴 했으나 그리 성공하지는 못한 듯했다. 뒤늦게 추정하건대 가격이 문제였다.
당시 기계식은 10만 원을 거뜬하게 넘겼다. 일반 키보드 가격이 1만 원 선에 팔렸는데 그보다 10배가 비싼 값에 팔렸으니 대중화는 꿈도 못 꾸는 데다가 그나마 나온 제품의 판매량조차도 주춤한 것이 이해된다. 커스텀은 더 비싼 값에 팔렸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 가격을 내리면 되지 않을까?
기계식 키보드 가격이 높은 것은 인건비 탓이다. 키 스위치 하나하나를 사람이 직접 조립하는 수 공정 탓에 제조 단가 자체가 높았다. 혹자는 키 스위치를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정작 키 스위치 단가 자체는 큰 차이 없다. 고로 가격을 내리는 것은 자동화 공정을 도입하면 되지만 그 돈을 뽑는 것이 관건이다.
누가 하든 가격만 내리면 되는데 역시 중국이 한발 빨랐다. 물론 체리 키 스위치의 특허 만료라는 것도 중국에게는 해 볼 만한 호기로 작용한 듯싶다. 오늘날 기계식이 대중화 문턱에 한발 다가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역시 대륙의 재빠른 실행력에 달렸다. 덕분에 기계식을 5만 원 이하라는 가격에 만져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간사하다. 내친김에 스위치를 교체할 수 있게 한발 더 나아갔다.
엔터키는 청축, 하지만 자주 쓰이는 문자는 갈축 하지만 방향키는 다시 청축. 그리고 우측 숫자키는 과거 계산기의 기분이 날 수 있도록 탄성이 있어야 하니 흑축. 이와 같은 배열을 가능케 한 것이다. 하나의 키보드에서 용도별 맞춤별 키감을 체감할 수 있게 한 시도는 정말 손뼉을 치고 싶다.
# 그러한 제품이 나오긴 했나?
앱코 K640이다. 기계식으로 시장을 평정한 셈이다. 어쩌다 보니 청축의 대안이자 합리적인 절충을 제시한 제품이다. 원하는 방식의 조화가 가능한 제품이라고 하니 지름신이 강림했다. 뒤늦게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하기로 작정한다.
분명한 지금의 선택은 나를 위함이 아닌 내 주변 사람을 먼저 배려하기 위한 깊은 속뜻에서 기인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앱코 K640은 그렇게 나의 간택을 받고 품에 안겼다. 검정과 화이트 2가지 색상이지만 남자라면 핑크 그게 아니라면 블랙뿐이다. 다음은 키 타입을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그 전에 알아 둬야 할 것은 K640은 키 스위치를 교체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크기/무게 : 435*125*34mm/1.05kg
특징 : LED 백라이트, 동시입력, 키 스위치 교체
스위치 공급사/수명 : 오테뮤/5,000만회
키캡 타입 : 이중사출
제조사 : 앱코(www.abko.co.kr)
나름 취향에 맞춰 각각의 키를 구성할 수 있는데, 청축, 갈축, 적축 그리고 흑축의 4가지를 하나의 키보드에서 누릴 수 있다. 이것을 가지고 호사라고 한다면 나름의 호사 되겠다. 분명 과거라면 꿈도 못 꿀 일이 고작 3만 8,900원으로 가능한 것이니 굳이 소박한 호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 단지 기계식, 그뿐인가?
키보드 시장에 대해 배경지식이 없다면 일련의 모습이 보기 드문 호들갑이라 여길 수 있겠다. 그 정도로 기계식 키보드는 구매 가격이 안드로메다에 간 상태였으며 진입 장벽도 높았고 대중화라는 단어와는 결코 친하기 힘든 아이템이었다.
그러한 분위기가 앱코 K640을 통해 반등하리라 예상한다. 물론 편견이 싹 수그러들 것은 당연한 순서다. 일례로 앱코 K640을 선택하는 곳 하나가 게임방이라고. 가격에 민감하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게임방에 기계식 키보드를 선택할 정도라면 시장의 분위기를 굳이 설명해 봤자 잔소리에 불과하다.
디자인과 기능도 인상 깊다. 4만 원도 안되는 가격대의 제품에 별의별 기능이 다 있다. LED, 커스텀 세팅, 펌웨어 업그레이드까지. 여기에 기계식이기에 키캡도 교체할 수 있다. 앱코에서 나오는 키캡 외에도 필코 마제스터치2 호환 키캡이라면 모두 가능하다.
물론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키 스위치 교체식이긴 하나 교체한 키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거의 뽑기 운이라 봐야 한다. 교체식이기에 친절하게도 철제 리무버를 함께 제공하고 있으나 키 스위치의 걸쇠가 눌리거나 부러지는 일이 생각외로 잦다. 즉 개당 300원에 구매 가능한 스위치이기에 비용 부담이 큰 건은 아니나 반반의 확률로 사용하던 스위치는 폐기할 수도 있다는 말씀.
한 10개 정도 폐기하고 나면 그 부담이 확 커지더라. 다행스럽게도 문제점을 간파하고 리무버를 교체할 것이라고 하니 교체가 스트레스라면 개선된 리무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제안한다.
# 하필 기계식? 왜 굳이 그것을?
따지고 보면 왜? 라는 질문이 나올만하다. 하고많은 키보드 중에 기계식을 선택했는데 지출하는 비용도 많이 들지만 아무리 조용한 적축을 사용한들 하나 타자 소리가 영 거슬려 눈총까지 감당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사용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사견을 내세우자면 특유의 쫀득한 손맛! 이랄까. 실제 기계식은 사용해보면 피로감이 확실히 덜하다. 키보드 고장 나서 교체했다는 이를 본 적도 없다만 내구성도 멤브레인 방식 대비 월등히 우수하다.
하지만 앱코 K640을 선택한 이유는 이러한 것보다는 ‘상품성’ 때문이다. 일단 디자인이 세련됐고 키 스위치를 교체할 수 있으며, 이 가격에 LED 효과를 발휘하는 제품이라는 3박자다.
원하는 대로 커스텀 기능도 제공하지만 그러한 기능에는 관심 없고, 전반적으로 보면 꽤 괜찮은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