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한 국물 맛의 유혹은 생각 외로 강했다. 혀를 얼얼하게 하는 매운 맛 앞에서는 천하장사도 땀 뻘뻘 흘리며 연신 국물만 들이킬 뿐이다. 지금까지의 라면은 매운맛 혹은 순한 맛으로 나뉘었으며 매운맛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었다. 그 편견이 깨진 것은 한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라면 요리 때문이다. 시뻘건 국물이 아닌 흰색 구물은 라면의 통념까지 무너뜨렸고 이제는 라면을 구분하는 기준에 깊은 맛이 추가됐다.
오랜 시간 왕좌를 지켜왔던 매운맛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문제의 깊은 맛. 과연 무엇이기에 대중은 이토록 열광하는 것인가. 비결은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을 통해서 증명됐다. 칼칼하고 단맛이 맛의 비결인데 이경규 꼬꼬면으로 더 유명한 이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톱의 자리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대적 상대로 지목되는 것은 삼양의 나가사끼 짬뽕이다.
시선을 끄는 것은 별다른 특색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흰색 국물이지만 이 속에 맛이 숨어있다. 나가사끼 짬뽕이라는 이름 그대로 삼양의 제품은 나가사키 짬뽕에 어원을 두고 있다. 우동의 한 종류로 잔폰이라는 이름이 오늘날 짬뽕에 이르게 됐다. 이 또한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국물이 붉은색이 아닌 닭고기 육수를 우려냈을 때 나오는 특유의 누런 빛깔이다. 한국의 짬뽕은 여기에 마른고추와 고춧가루가 더해져 맵고 짠 맛을 살린 것이 차이점이다.
재료도 구분된다. 돼지고기를 비롯하여 각종 해물이 들어가 볶는 과정에서 각각의 재료가 어울러져 독특한 풍미를 뽐낸다. 짬뽕이라는 명칭을 달기 시작하면서 맵고 짠 맛이 강조되었고 이를 흉내 낸 지금까지의 라면 또한 맵고 짠 맛을 강조해 큰 인기를 끌었다.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뽕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시대는 변했고 사람들의 입맛 또한 변했다. 시뻘건 국물이 아닌 흰색 국물의 깊은 맛에 열광하고 있다.
| 라면이라 하기엔 5% 부족한 짠맛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은 일본 나가사키 지방의 짬뽕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현한 상품이다. 돼지뼈 육수의 진하고 깊은 맛에 시원한 해물 맛을 가미해 풍부하고 깊은 국물 맛을 살렸다는 것이 제조사 측의 주장이다. 지난 7월 출시되었으니 시기는 이경규 꼬꼬면 보다 앞선 샘이지만 뒤늦게 주목받으면서 체면을 구겼다. 삼양식품 입장에서는 어떤 핑계거리도 이를 무마할 수는 없게 된 셈이다.
꼬꼬면과 굳이 비교한 다면 꼬꼬면은 칼칼하면서 담백한 닭육수 특유의 달달한 맛이 손꼽힌다. 반면 나가사키 짬뽕은 해물과 야채를 넣어 만든 돼지뼈 육수에 청양고추를 넣어 완성한 칼칼함이 특징이다. 진하고 매운 우동 국물이라는 것이 다수의 호응을 받고 있다. 동시에 면발 또한 차이를 보이는데 조금 두꺼운 면발을 사용해 식감을 강조했다. 뚝 끓어지는 특유의 면발은 짬뽕 보다는 우동에 가깝다. 서두에서도 지적했지만 나가사끼 짬봉의 어원이 우동인 만큼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어떤 제품이 더 맛있냐는 평가에는 글쎄, 난해하다. 특정 제품에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 두 제품 간의 맛이 확연이 나뉘며 제품이 노리고 있는 타깃층 또한 차이를 보인다. 일반 라면 시장을 타깃을 한 이경규 꼬꼬면의 대적 상대를 굵은 면발을 타깃으로 나가사끼 짬뽕을 가지고 비교한다면 억지에 가깝다.
꼬꼬면은 신라면이 상대이며, 나가사끼 짬뽕은 너구리가 상대다. 이경규의 꼬꼬면과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은 처음부터 서로간의 대적상대가 아니다. 흥미로운 맛을 연출한 실험정신은 돋보이나 라면이 심심풀이로 먹는 달달한 맛의 과자도 아니고 약발에는 한계가 있다. 이 둘을 두고 비교하는 언론의 대단한 비교정신 또한 기가 찰 노릇이다. 게다다가 한 층 더 떠 이후 출시될 컵라면까지 비교 대상에 포함했다.
라면은 주식이 될 수 없다. 시원한 하얀 국물에 식탁이 점령당했다는 표현은 억지일 뿐이다. 아무리 라면이 열풍을 일으킨다 한들 흰 쌀밥을 감당할 재간이 부족하다. 짬뽕을 우리입맛에 재현했다는 삼양 측의 설명 또한 설득력이 없다. 그저 독특한 라면 하나 내놨을 뿐이다. 라면 국물은 붉은색이어야 한다는 기존 시장을 뒤집겠다는 야심은 사리곰탕면이나 설렁탕면에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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