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김현동(cinetique@naver.com)
“내일 아침, 청약 시작합니다. 7시까지 나와야 해요. 옷 춥지 않게 입고 오세요.”
하루 전 늦은 시각 연락을 받고, 단단히 채비하고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오전 7시에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 1천 개 세대 오픈을 예고한 현장은 오는 2019년 완공된다. 지하철이 바로 앞에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에 대기업 백화점을 비롯하여 각종 편의 시설 그리고 상권까지 속속 입주가 알려지면서 서울의 번화가에 버금가는 생활환경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해당 건설사는 천장지부로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는 20~30의 신혼부부를 주요 타깃으로 구미를 끌 만한 강점을 연일 내세웠다. 체육시설을 비롯하여 젊은 세대가 ‘혹’할 만한 주상복합이라는 특징은 최근 트렌드와도 적중했다.
금일 방문한 현장은 가장 인기 많은 평형인 84㎡를 기준으로 최소 3억 중반에서 최대 4억 중반의 가격대에 공급된다. 물론 대기업 브랜드이며, 최적의 입지조건이라는 프리미엄이 걸리면서 청약 경쟁은 급상승했다.
건설사가 내세운 경쟁률은 1:40이나 직접 현장에 방문해 살펴본 결과 1일 방문자가 1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최소 1:200은 가뿐히 넘어 보였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까지 사람들이 몰릴 정도이니 그 정도로 수도권의 주택 가격 상승이 심각하며, 공급 또한 수요를 맞추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부동산전문가와 함께 ‘떴다방’이 되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픈을 1시간 30분 남겨둔 이른 시간. 이미 줄은 3바퀴를 돌아 세워질 정도로 길었으며, 이 중에는 왜 왔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로 어린아이도 대열에 포함돼 있었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온 젊은 엄마도 다수 보였고, 20대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아가씨도 다수 목격됐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한 손에 '공인중개사협외'라는 마크가 선명한 노란색 봉투를 들고 누군가를 향해 전화하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내가 줄을 선 주변에서만 5명이 비슷한 봉투를 들고 있었고, 이들은 1인이 최대 청약 가능한 인원인 5명 이상의 대리인 명단을 다른 손에 쥔 상태였다.
“삼성동에서 오픈한 현장에서 재미 좀 봤어?”
“앞 그 현장 신청했는데. 다 떨어진 거야. 아는 사람 10개 넣었는데 2개 됐다고 하네…….”
“10개는 넣어야지. 서너 개 된다니까. 한 개는 안 돼.”
“지난번 청약한 거 OO 씨 바로 넘겼다며. 얼마나 받았어?”
이 같은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팔면 “200 정도 남는데, 이렇게 해서는 푼돈밖에 못 벌어…….”라며 푸념했다.
분명 이곳에서 청약이 처음인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이해하기 힘든 대화를 들으며 청약의 청자도 모르고 합류한 난 오픈 시간까지 무기한 기다림에 나섰다. 오픈 시간이 임박해지자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도 늘었고, 3바퀴를 돌았던 줄은 밖으로 6바퀴가량으로 추가되며 더욱 길어졌다.
그러자 안에 있던 체격이 건장한 남자 3명이 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순간 지금껏 안 보였으나 일행을 자초하며 삼삼오오 합류를 가장하며 새치기하는 사람의 수도 같이 늘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러한 모습에 항의하지는 않았다. 서로 아는 듯 인사를 사며, 또 본다며 반갑다는 반응도 익숙해 보였다.
# 서울시 전세난민 ‘서울 엑소더스’행 기차에 승차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라면 최적의 입지조건
3인 가구 최적 조건인 84제곱미터 규모의 룸3개짜리가 인기
불황도 피해간 치열한 ‘청약’열풍은 이른 아침부터 ‘활활’
“4명 1조로 줄을 맞춰주세요.”
아프간 사병을 연상시키는 색상의 바지에 검정 상의 그리고 워커를 착용한 이들은 영락없이 사측이 동원한 ‘용역’이다. 줄을 제대로 맞춰야 새치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주의에 재차 강조했다. 이 와중에 한 남자가 “왜 순번 표를 안주냐?”며 항의했다. 긴 기다림에 심술이 난 것도 있지만, 말에 장난기가 다분한 것으로 봐서 반응을 살피려는 움직임이다.
용역은 “순번 표를 사고파는 사람이 있어 줄을 세웠다~”고 했고. 그 남자는 옆에 일행을 보며 “저 사람 너무 앞서 갔네~ 요즘 청약 순번 표를 누가 사고파나?”라며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 여기저기서 미리 준비한 요깃거리를 꺼내 출출한 배를 달래는 일명 ‘꾼’의 모습이 본격 속출했다.
기다림이 1시간 30분을 넘어가지 이들 ‘꾼’의 움직임은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는 듯 저마다 준비한 다양한 방법을 꺼냈다. 심지어 말도 줄어들었는데, 이제 첫 떴다방을 경험하러 온 내게는 기다리는 것부터 이들의 대화를 듣는 것조차도 생소했고 동시에 관심 밖이었으니 심드렁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맨땅 위에 대기자를 위해 마련된 막사에서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에 막연하게 임해야 한다는 것이 지루했다.
어느새 한 차례 간식 타임도 지나가고,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행렬이 줄어드는 것은 여전히 지지부진했고 입구에 도착했을 때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자는 기다리는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설명했다.
“옆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해 두세요. 특히 남자분들 새치기 때문에 싸움 나는 일이 많은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싸웠다고 증언하면 무조건 제일 뒤로 보낼 겁니다.”며 싸우지도 말고, 서로 얼굴 찌푸릴 일도 만들지 말라고 분위기를 긴장시켰다.
이 와중에 검정 선글라스를 낀 중년의 아주머니가 용역과 승강이를 벌였다. 바로 온 듯한 아주머니는 “(용역이)줄에 관해 설명을 안 해줘서 자신이 다른 곳에서 기다렸다.”며, “당신들 때문에 내가 젤 뒤로 가야 하느냐?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는 항의였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던 선글라스를 낀 용역은 해당 아주머니를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들여다 보내고 무전기로 이렇게 외쳤다.
“선글라스 아줌마~ 떴다방. 떴다방. 떴다방. 주시하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간 직후에야 의문이 풀렸다. 사람에 따라 중개인이 배치되었으며 내 왼쪽 팔에는 ‘글귀가 적힌 택이 붙여졌다.’ 절대로 떼지 마시고 나갈 때까지 부착하셔야 합니다. 떴다방을 비롯해 ‘꾼’에게는 별도의 중개인이 전담마크로 배치됐다. 물론 새치기로 들어간 아주머니도 전담마크가 되었으리라 예상은 되지만 필시 별다른 제재는 못했으리라.
나와 함께 온 일행은 같은 택이 부착되었으며, 일부 사람에게는 VIP라는 스티커도 붙여졌다. 직후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옆으로 밀착하더니 따라오라는 신호를 했고 따라가자 청약 신청서에 희망하는 평형과 타입 그리고 입금내역서 유무를 적어 내려갔다.
“설명 듣고 희망 평형 선택하면 안 되나요?”라는 질문에 “그래도 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4시 되면 사전 신청자라도 청약이 종료됩니다. 이점만 기억해 두세요.”라며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들고 있던 청약 서류를 살짝 보며 주며 경쟁률이 높은 타입은 어떤 것이며 낮은 것은 무엇이고, 투자와 실거주 여부를 구분해 설명했다. “투자라면 낮은 평형을 청약하고 최대한 빼먹는 것이 이득입니다.”라고 귀띔했다. 하루 전 순번만 1만 명 정도가 청약 현장을 다녀갔어요. 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해당 현장의 사전 청약 비용은 300만 원 이다. 300만 원의 1만 명이니……. 하루에만 수백억원의 현금이 오간 셈이다. 불황도 피해간다는 건설업의 위엄은……. 체험해보니 실로 놀라웠다.
청약을 모두 마치고 확인증을 받은 직후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1시가 약간 넘어 있었다. 오전 7시에 나와서 약 6시간을 부동산 광풍이라 불리는 프리미엄 역세권 청약 현장에서 보내고 나니 괜히 온몸이 뻐근했다. 부근 식당에 가서 오늘의 첫 끼니를 시켰다. 그리고 한 마디가 저절로 나왔다.
“떴다방…….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이것도 해본 사람이나 하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은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