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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음악은 퀸의 영화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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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클리포스트 2019. 1. 4.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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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음악은 퀸의 영화보다 위대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19년 01월 04일]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9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음악영화 중 최대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긴 어게인’과 ‘라라랜드’의 관객 수를 합쳐도 700만이 채 되지 않으니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스코어인 셈이다.

‘국제시장’이나 ‘명량’처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N차 관람을 자처하는 이들이 넘쳐난다고 했다. 음악영화도 좋아하고 전기영화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까지 더해져 기대감이 높아졌다. 얼마나 뛰어난 영화일까, 잔뜩 기대하며 한참 뒤늦게 관객이 되었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이따위 영화가?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글을 쓰기가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혼란스럽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감상과 대세의 괴리가 클 때 에디터의 고뇌는 시작된다. 자칫 천만 영화를 잘못 건드렸다가 어떤 욕지거리를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을 걸고 쓰는 글에 마음이 향하지 않는 글은 뻔히 들키기 마련이라, 보편적인 가식보다 편협한 진심을 택하기로 한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너무 별로라서 한 번 흠칫 놀라고, 이런 영화가 천만 영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현실에 새삼 화들짝 놀랐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퀸의 역사에 대한 왜곡은 차치하더라도, 분석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전혀 찾지 못했다.

오만한 천재가 큰 병을 만나 개과천선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성적 정체성을 놓고 고뇌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차라리 긴 뮤직비디오를 본 기분이었다. 상업영화의 전형적인 발단, 전개, 절정, 결말 과정을 만들기 위해 시간적 순서까지 과감히 바꿔버리고, 단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던 퀸이라는 그룹을 해체하는 등 영화는 대체로 엉성하고 매우 억지스럽다.

분명히 별로인 것 같은데, 괜히 끌리는 뭔가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비난만 하고 끝내버리기엔 이 영화에는 분명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감동 좋아하고 흥 많은 한국 관객들의 유난한 열광’이 아니라, 보헤미안 랩소디의 이례적인 흥행은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9일 늦게 개봉한 일본에서도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역대 일본에서 개봉한 음악영화 중 흥행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더 놀라운 것은 4주 연속 관객이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났다는 점인데 이는 일본에서도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겨울왕국’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현상이다.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도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비평가들로부터 62%의 매우 박한 평가를 받지만 관객은 90%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와 관객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는 흔한 일이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는 그 정도가 이례적으로 컸다.

이쯤 되면 일반 관객들조차 ‘별로인 걸 알지만, 왠지 끌리는 영화’라는 평이 정확하지 않을까. 왜 그럴까. 왜 끌렸을까.

프레디 역을 맡은 라미 말렉의 뛰어난 연기, 높은 싱크로율을 흥행 성공 요인으로 꼽는 평론가들도 있지만, 근본적인 성공 원인은 퀸의 음악 말고는 사실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부터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비난을 쏟아내고, 흥행을 이해할 수 없다고 외치던 나는 다음 날 유튜브에 ‘프레디 머큐리’, ‘퀸 라이브’를 검색했고, 온종일 퀸의 음악을 들었다. SNS에는 퀸을 잘 알지도 못했던 10대~20대들이 #freddy, #queen 등의 해시태그를 걸며 적극적인 홍보를 마다하지 않는다.

퀸의 음악은 퀸의 영화보다 위대했다.

실존 뮤지션의 전기영화 중 명작으로 꼽히는 ‘레이’의 경우 아카데미를 비롯한 시상식을 휩쓸고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지만, 이때는 평단과 관객의 평가가 함께 긍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와는 결이 다르다. 차라리 당연한 결과에 가깝다. ‘라 비앙 로즈’ 역시 신들린 연기와 탄탄한 시나리오가 조화를 이뤘다.


퀸의 음악은 영화의 구성을 뛰어넘는 흡입력을 가졌다는 대단히 객관적인 증거가 드러난 셈이다. 함부로 지적 허영에 빠져 영화의 논리를 따지며 관객들을 무시해서는 안 될 작품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은 강력한 소재 하나가 영화 산업의 판을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 매우 괄목할 만한 사건이다. 적어도 몇 년은 영화 업계에 ‘음악 영웅 찾기’ 열풍이 일지 않을까.

올해 개봉 예정인 엘튼 존의 영화 ‘로켓맨’은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지금보다 더 엉망으로 만들었어도 보헤미안 랩소디는 반드시 성공했을 영화다. 감독의 연출력을 욕하기 전에, 작가의 필력을 욕하기 전에, 제작진의 비즈니스적 안목을 먼저 배울 일이다. 그게 관객으로 남는 장사다.


By 김신강 에디터 press@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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