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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환상동화, 얼룩진 당신에게 호소합니다.

생활/문화/리뷰

by 위클리포스트 2011. 12.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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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사랑, 예술. 어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3가지 단어를 소재로 사용한 연극이 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생 속에서 사랑이라는 꽃봉오리를 맺으며, 주인공인 두 남녀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예술을 등장시키는 연극 '환상동화'.

극중 한스와 마리는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전쟁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극복하는 과정 또한 전쟁으로 맺어진 인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인 한스는 음악을 하는 작곡가 지망생 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강제 징집되고 심한 부상을 당한다. 몸의 부상은 치유되었지만 마음의 부상으로 인해 귀를 멀게 되는데, 급기야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과거 기억까지도 잊게 된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에 혼자 남게 된 그는 사람과의 소통마저 단절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마냥 전쟁터를 떠돌게 된다.

여자 주인공인 마리는 무용수를 꿈꾸는 아리따운 아가씨다. 그녀의 몸짓은 세상 사람을 미소 짓게 했다. 그녀 또한 극중 전쟁의 피해자다. 기나 긴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방공호에 몸을 숨기지만 세상을 너무 모르는 순수한 아가씨였던 것일까? 답답함을 참아내지 못하고 나간 세상은 그녀의 눈앞에 피와 암흑으로 얼룩진 지옥과 같은 모습을 펼쳤다.

그렇게 끔찍한 광경을 접한 그녀는 충격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마찬가지로 세상과 단절된 그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녀는 이제 세상에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살기 힘든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만다. 혼자서는 물 한잔 조차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마리.

그토록 열심히 연습했던 무용조차 계속 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는데.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 꿈꿔왔던 목표를 전쟁이라는 한 순간의 재앙으로 잃게 되면서 함께 웃고 미소 짓던 지인까지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만든다.

정적만 감도는 냉엄한 전쟁이라는 재앙을 겪으며,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마저 잃어버린 그들. 이대로 힘없이 무너지는 것만이 해답일까! 단순히 연극이라고 하기에는 현대인이 처한 환경과 너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무언가 환상동화가 현대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 어른을 위한 동화 '환상동화'

연극 '환상동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전쟁이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단순히 동화하면 어린이에게 꿈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지만 '환상동화'는 그 대상이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공포, 충격, 죽음을 암시하는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다소 끔찍하다는 느낌을 전달하지만, 곧이어 등장하는 사랑이 이를 잘 커버해 완화시킨다. 동시에 사랑을 꽃피우는 결정적인 매개체인 예술은 전쟁으로 얼룩진 마음을 순수함에 동화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연극은 주적 관계가 명확한 현실 속에서 예술을 통해 초심을 되찾게 되며, 총과 칼의 대치가 아닌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전쟁은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예술이 의미하는 순수함 마지막으로 사랑이 의미하는 인관관계를 복잡하게 표현한다.

따지고 보니 현대인은 너무 고독하다. 정신없는 세상에서 순수함 마저 잃어버린 지 오래. 사람을 만나더라도 진실 보다는 이해득실이 우선이다.

그렇기에 연극 환상동화는 고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순수함을 되찾기를 호소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귀에 들리는 것에 휘둘리지 말며, 어린아이의 눈에 비치는 세상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접하라는 외침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환상동화'에 여운이 남는 것은 극중 한스와 마리가 가까워지는 과정 때문이다. 빗장을 굳게 닫아버린 두 사람은 장애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이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두 사람은 서로 상반된 단점을 감싸주며 서로에게 희망이 되고 의지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간다.

마치 서로의 단점을 캐내어 출세와 권세에 눈이 어두운 오늘날 우리의 단점을 지적하듯이 보기 좋게 비웃으며. 극중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들여다보며 현명하게 극복해 나간다. 혹자는 사랑의 힘이라고 하겠지만, 글쎄 오늘날 현대인이 추구하는 인스턴트 사랑에 '환상동화'가 추구하는 마법의 힘이 숨겨져 있을까?

|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었다.

청력을 잃은 한스와 시력을 읽은 마리는 그렇게 가까워지고 서로의 아픔을 치료하는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한스는 죽은 마리의 오빠와 대치하던 적군.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운명에 처한 두 사람은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되는데.

그렇지만 그 둘은 만남에서 사랑을 만들어 냈고, 사랑은 다시 환상을, 그리고 환상은 현실까지 변화시키는 마법을 발휘하면서 해피엔딩이라는 결실을 향한다. 과연 마리와 한스는 이별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까워지는 전쟁의 포성 속에서 그들은 막다른 기로에 처했다.

그들 이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될까? 헤어진다면 왠지 너무 슬플 것만 같다.

| 2010년 4월 30일. 600회 공연

지난 8년간 6만 관객이 거쳐 간 창작 연극 '환상동화'가 2010년 4월 30일 600회 공연을 맞이했다. 지난 2003년 서울 변방연극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2006년 상명아트홀 공연에 이어 '이다의 무대발견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 선정된 공연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앙코르 공연된 연극 '환상동화'는 무용, 음악, 마임, 마술 등 요소로 구성돼 초기 공연 당시부터 참신한 시도라는 평을 받아왔다. 특히 화려한 효과나 특별한 인기 요인이 없음 에도 600회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은 스타 캐스팅 없이도 잘 만들어진 작품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저력을 증명한 사례다.

극중 감초 역할을 하는 세 광대는 사랑, 전쟁, 예술을 주인공인 한스와 마리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는 변사 역할을 한다. 극중 대사도 심상치 않다. 고전 명작에서 따온 대사가 시적 표현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환상동화'가 이끄는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듣는 이로 하여금 한 편의 운율이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연극이지만 동화이기도 하다. 광대들이 읽는 소설이 연극 대본이 되며, 대본은 다시 공연으로 펼쳐진다. 극중 남자 주인공인 한스의 피아노 연주도 인상적이다. 짧게 들리는 연주에 불과하지면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에 심취시켜 제법 여운이 오래 간다.

공연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전화 (02-762-0010) 혹은 웹 사이트 (www.e-eda.co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현동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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