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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정재진, 박상협 “노인과 바다는 인생을 그린 수채화”

위클리포스트 2011. 10. 2. 00:28
노인에게는 한 명뿐인 친구이며 가족과도 같았던 소년. 선장이 되고자 했던 소년에게도 노인은 유일한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평생을 바다 위에서 보낸 노인.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꿈을 기르던 어린 소년의 모습에 노인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다. 그렇게 둘은 세대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기르며 작은 배에 몸을 의지하며 오늘도 푸르고 넓은 바다로 향한다. - 노인과 바다 中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초연 극이자 2인극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시작 전부터 기대를 모은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의 명작소설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아니다. 지루하고 따분하던 고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했으며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해서 더욱 눈길을 모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물어봤다. 연극 노인과 바다는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풀어 놓은 극이라는 것이 두 사람의 설명이다.

늘 평탄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늘 이겨내기 어려운 고통만 다가오는 것이 아닌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통과 행복이 다가오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통이 다가오면 이겨내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버리며, 어렵게 찾은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놓친 후 후회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연극이라는 설명이다.

두 사람 또한 연극을 통해 내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그래서 인지 그날 만난 두 사람의 표정에서 공통점이 발견됐다. 2인극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오랜 연습과 매일 되풀이되는 고된 공연에도 불구하고 해맑다는 것.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지닌 노인 그리고 천진난만함이 얼굴에 서린 소년은 극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 두 사람의 모습과도 일치했다.


“노인과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인생은 매 순간 순간이 순탄치 않은 이벤트의 연속입니다. 지혜도 필요하며, 인내도 필요합니다. 복잡할 것 같지만 연극 속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단순하게 담겨있어요.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도 복선역할을 하는 심리가 내면을 자극하기 때문이에요”

노인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만선의 꿈을 품지는 않았다. 어부를 천직으로 여기며, 삶의 모든 것이라 여기며 습관처럼 혹은 생활처럼 그물을 들고 작은 배에 몸을 맡겼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배 위에서 노인은 때로는 중얼거리며, 때로는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읊조렸다.

몇 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 하지만 노인에게는 그 또한 작업의 연장이었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소년도 마찬가지다. 기다릴 줄 알았다. 노인과 함께 라면 자신이 선장이 될 수 있었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노인과 바다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웠다고 밝혔다. 단독 캐스팅이라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도 벅차지만 그 어떤 배우에 뒤지지 않는 열정과 정열을 기반으로 연습과 공연 일정을 모두 소화해냈다.

관객의 눈높이에서 배우이자 해설자 역할을 하는 배우 박상협의 말솜씨에 노년의 연륜이 돋보이는 노인 정재진의 환상콤비가 더해져 노인과 바다는 공연이 종료된 이후 더욱 빛을 발한다. 메스미디어를 통한 광고하나 없이 오직 입소문만으로 찾아온 이들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노인과 바다의 뒷심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글·사진 김현동 cinetiq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