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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실직의 추억, ‘결혼’이 죄가 되나요?
위클리포스트
2018. 12. 7. 12:30
[2018년 12월 07일] - 최근 20대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다. 올해 7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실업률은 전체의 3.7%, 그중에서도 청년 실업률은 9.3%, 실업자 수만 해도 40만 9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걱정이 안 되면 이상하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가 되는 30대 즈음에 도달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결혼을 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엄습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할 사회는 더군다나 매몰차고 비정하다. 한정된 선택지를 두고 밥그릇 사수 전에 임하게 만드는 현실은 여성을 우정도 의리도 없는 존재로 둔갑시킨다. 일명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 압박하는 건 시간문제다. 너와 나 사이에서 살아남는 존재는 오직 하나. 내가 나가거나 네가 나가거나 하는 구도가 자연스레 형성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고 온 아픔
말로만 듣던 ‘첫 실직’을 당하다.
내가 겪은 첫 번째 실직 이유는 다름 아닌 ‘폐간’이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출판사의 경영을 악화시켰고 폐간이 속출했다. 2008년 한 해만, 이직을 3번이나 경험할 만큼 심각했다. 그 무렵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월간지 마감을 하고 있던 나에게 평소와 다르게 삼겹살과 소주를 사주던 대표가 꺼낸 한마디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우리 매체 폐간이다.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돼”라는 한마디에 내 심경은 일순간 지옥으로 추락했다.
회사가 망해서 문을 닫는다니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일하기 시작한 지 딱 한달 반 만에 벌어진 일이다. 편도 두시간 반이라는 출근길을 감내하며 다녔던 그곳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 이후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나 라는 자괴감으로 건물 비상계단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비참했지만 그대로 주저할 여유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신혼여행 중 받은 해직통보
‘결혼’이 가져온 실직자 신세,
여자에겐 결혼이 죄인가요?
두 번째 실직은 결혼 직후 마주했다. 11월의 어느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3주 뒤, 사장실로 호출을 받았다. 당시 내용은 이러했다. “다음 해 계약은 진행하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하게 됐어. 그렇다고 굳이 결혼해서 그런 건 아니야!” 이 말을 듣는 순간 굳이 결혼을 언급하며 ‘계약해지 통보를 하는 거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 무렵 먼저 결혼한 친구의 이야기가 스쳐갔다.
“결혼하고 나면 곧 애가 생길 거고, 그렇게 되면 회사 차원에서는 육아휴직이나 그런 걸 고려하게 되니, 갓 결혼한 너에겐 미안하지만, 직장에서 너 나가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어~ 때문에 기혼 여직원은 눈치를 보며 다니게 되더라. 그러니까 너도 아이 문제는 남편하고 잘 얘기해봐. 요즘 시대에 맞벌이는 해야 할 것 아니야?” 이랬던 우려가 내게 현실이 된 그 날.
분명 결혼이 죄는 아닌데, 왜 내가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지, 마침 재계약 시점 직전에 결혼 날짜를 잡은 내가 바보였던 것인지 여러 복잡한 심경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결혼한 여성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수많은 복병을 마주한라는 계시였다. 면접마다 나오는 질문 “결혼은 하셨네요? 그럼 아이는 있으세요?”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결혼은 했고 아이는 없다는 대답을 듣던 면접관의 미묘한 표정을 수두룩하게 직감했다. 심지어 출근 3일 전에 계약 파기를 문자 한 통으로 안내받은 적도 있다.
“이래서 경단녀(결혼 등의 사유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 문제가 발생하는구나!”
이후에도 나의 사회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어렵게 들어간 잡지사도 1년 반을 일했지만, 얼마 못 가 폐간을 맞고 다시 구직자 대열에 들어서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한 사이에 결혼 2년 차를 넘겼고 더는 불확실한 생활에 임하긴 힘들었고, 결국 천직이라 여겼던 이 바닥을 뜨기로 했다. 쉽지 않았지만, 대안은 없었다.
하다못해 찾아간 여초 직업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편견
겪어보니 마주할 숨은 진실
약 3년간 학습지부터 식당 서빙, 콜센터에 이르기까지 극한 직업을 두루 거치며 돈 주고도 못할 비싼 경험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부분 기혼 여성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종이다. 왜 전혀 다른 직종으로 옮기려 하냐는 질문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내뱉어야 했던 한 마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딱. 그랬다. 생업 앞에서 장사 없더라.
물론 여초 현상이 심한 직업군이라도 다를 건 없다. 학습지는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학생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고, 더구나 특수용역 개인사업자 신분이던 나는 주말이며 동네를 돌며 홍보 전단을 돌리는 날이 수두룩했다. 그만둔 이후 식당 서빙 일을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최악의 선택이었다. 점장과 주방 인력을 제외한 조선족 노동자로 꾸려지던 곳에서는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늦게 합류한 한국 직원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이간질이 유독 심했고 조선족의 텃세에 밀려났다.
콜센터에서도 잠시 머물렀다. 걸려오는 전화만 받는 인바운드 콜센터였고,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 직군이다. 첫 대화부터 욕설이 들려도 화를 낼 수 없기에 스트레스를 삭히는 건 나의 몫이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폭언과 욕설, 성희롱적 발언까지 종류도 다양했지만 참는 게 유일했다. 더불어 하루에 받는 전화 수가 실적이라 같은 팀 내에서도 서로 경쟁자고, 실적이 안되면 결국은 그만두는 일이 흔하던 현장이다. 결국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도 수많은 여성이 입사와 실직의 기로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물론 여성의 처우는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개선됐고 사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하지만 여성을 둘러싼 오랜 편견이 깨지지 않는 한 여전히 여성이라는 존재는 결혼과 함께 ‘경단녀’가 될 것을 각오하고 하루하루 살며 무수한 고민의 답을 찾아야 한다.
나 또한 한 명의 여성이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혹자는 ‘당신의 선택을 왜 우리에게 하소연해?’라고 들릴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명확한 진실이라면, 어떤 직종에 있든 기혼자가 되면서 직장 선택 폭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며, 상당수 여성은 혹은 여자를 위해줄 것만 같았던 여초 직업군. 또는 여자 상사로부터 ‘너 아니어도 다른 사람 많아, 그러니 퇴사하든 말든 그건 당신이 결정해’라는 치욕적인 한 마디를 생에 한 번은 경험한다. 내가 직접 경험했고 진정 여성의 적은 여성이구나! 를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말할 수 있는 실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By 김미리 에디터 milkywaykim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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