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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은 있고 미래는 없었던 2018 지스타, 역대 최대 흥행 확실시

위클리포스트 2018. 11. 18. 11:34


화려함은 있고 미래는 없었던 2018 지스타
역대 최대 흥행 확실시…융합과 사람에 대한 고민 해야할 때




[2018년 11월 17일] - 2018 지스타가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흥행 폭발이다. 셋째날인 토요일은 발 디딜 틈조차 없어 급기야 방문객들의 입장을 통제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렌즈레이싱’을 앞세운 카카오게임즈, ‘포트나이트’의 에픽게임즈 등이 주축을 이룬 광장은 출시 예정인 게임을 체험하기 위한 관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코스프레걸들은 눈길을 끄는 복장과 높은 캐릭터 싱크로율로 포토타임을 주도했다. 행사장 2층은 ‘게임기업 채용박람회’가 열리고 수많은 게임 관련 기업들이 즉석 면접을 진행했고, 총기어린 청년들은 줄지어 스스로를 어필하고 있었다. ‘국제 게임 컨퍼런스(G-CON)’, ‘게임 투자마켓’ 등 굵직굵직한 행사들이 연이어 열렸다. 참여율도 높았다.


2018 지스타, 흥행 열기 후끈..부산시 1,000억 투자 계획 발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여론, 미숙한 행사 운영으로 존폐 위기에 몰렸던 2000년대 중,후반을 떠올려보면 10년만에 극적인 반전을 이룬 셈이다. 올해로 10년째 지스타를 주최하고 있는 부산시는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하듯 2022년까지 총 1,000억원을 투자해 게임융복합타운을 만들고 내년에는 80억원을 투자해 e스포츠 전용경기장을 건설하겠다는 발표를 오거돈 시장이 직접 진행했다.


수많은 신작만큼이나 하드웨어 기업들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기가바이트, 이엠텍을 위시해 인텔, 씨게이트, 한미마이크로닉스 등의 기업들은 별도의 부스를 마련해 게이밍 환경의 개선을 경쟁적으로 자랑했다. 특히 기가바이트는 자사의 게이밍 브랜드인 ‘어로스(Arous)’를 위해 대형 부스를 마련해 참관객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달라진 크리에이터의 위상…코스프레 퍼레이드 등 화려한 볼거리 넘쳐


크리에이터의 달라진 위상 또한 인상적인 모습이다. 보겸, 대도서관, 악어는 지스타의 공식 게스트로 참여해 주요 시간대에 라이브 토크를 진행했다. 코스프레 퍼레이드는 전시 기간동안 무려 11회가 열렸고, 별도의 어워즈, 사인회가 개최돼 행사의 화려함을 더했다.


소위 ‘겜알못’인 기자의 눈에도 2018 지스타는 분명 압도적이었다. 모터쇼, 베이비페어 등 컨벤션의 전통적인 강자들에게서 볼 수 없던 수준의 인구밀도,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태도, 개별 부스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선물공세. 수학능력시험이 끝나는 때와 맞물렸다는 시기적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벡스코 일대는 그야말로 마비에 가까운 열기를 보였다. ‘Google Play’가 선명히 새겨진 쇼핑백에 각종 선물과 안내 팜플렛을 가득 담은 참관객들의 얼굴엔 만족스런 미소가 흘렀다.

‘게임, 우리의 별이 되다’는 주제에서 볼 수 있듯 이번 지스타는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다. 36개국, 689개 업체가 참여하고 마련된 부스만 2,966개에 달한다. 넥슨과 넷마블은 무려 18개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평일인 첫 이틀동안 9만명에 가까운 유료 관객 수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첫 날은 3.6%, 둘째 날은 9.1% 증가, 역대 최고기록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녹록치 않은 현실


지스타의 화려한 성공에 비해 해외 게임시장 여건은 그리 녹록치 않다. 최대 고객 중 하나인 중국은 최근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신규 온라인 게임 등록과 청소년 게임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게임사인 텐센트는 게임실명제를 시행하고 공안 당국과 연계해 안면인식 시스템을 도입, 셧다운제를 강화했다. 당장 지스타 둘째날 BTB 유료 바이어 수는 전년 대비 37.8% 감소한 266명에 그쳤다. 주요 게임사들의 하반기 주가는 엔씨소프트를 제외하면 대체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매년 지적되는 콘솔게임 시장에서의 부진도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2016년 기준으로 세계 게임시장의 콘솔 게임 비중은 24.8%에 달하지만, 한국은 이 중 0.6%에 불과하다. 일본의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스위치가 국내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처참한 수치다. 지스타에서도 콘솔 게임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다. 게스트 중 하나인 대도서관이 비디오 게임 유튜버로 지금의 위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국내 유저의 갈증을 짐작할 수 있다.


단편적인 접근, 한계를 맞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산업을 단순화해 접근하는 국내 정부와 업계의 시각에서 찾아볼 수 있다. VR업계의 대표주자인 ‘비틀’의 김성현 상무는 반짝했던 3D 프린터 열풍에 빗대 게임을 비롯한 국내 첨단산업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우리 나라는 게임, VR, 3D 등 각 분야를 개별로 놓고 접근합니다. 겉으로는 융합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제각기 따로 노는 것이죠. 3D 프린터는 애당초 테스트용으로 쓰이도록 개발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비즈니스가 될 수 없는 것인데, 이것을 무슨 대단한 혁신산업이 될 것 마냥 언론플레이를 하고 철학 없이 지원을 남발했어요. VR만 해도 기술의 하나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쓰일지를 고민해야지, 게임의 한 장르로 치부해버리면 산업의 폭을 줄여버리는 결과를 가져와요.”


실제로 지스타는 화려해 보이나 보여주기에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신작 소개, 선물 나눠주기, 코스프레 퍼레이드와 같은 요소들은 일시적인 엔터테인먼트일 뿐, 미래를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임을 소프트웨어에 국한시키지 않고 놀이기구, 조경, 장비 등 다양한 분야로 선보이는 중국 국제 게임/어뮤즈먼트 박람회나 다양한 프로그래밍 강의와 새로운 언어, 사운드,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이 오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게임 개발자 회의 등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10년째 초대형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속도가 빨라지고 그래픽이 좋아지는 것 외에 한국 게임시장의 혁신이 부재한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산업 철학의 부재…열악한 개발 환경 언제까지


게임 개발환경도 혁신을 막는 제약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자본이 유입되는 시장인 만큼 유능한 개발자들은 악명높은 야근에도 불구하고 게임으로 몰려든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공개한 게임업계 개발자들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205시간으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일반 근로자 월평균 근로시간인 187시간 대비 20시간 가까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엔젤투자자는 “서비스로 혁신을 이끌어야 할 개발자들이 속칭 ‘하이테크 노가다’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며 “게임시장은 주가에 지나치게 얽매여 신작을 기계적으로 찍어내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융합 필요해..사람에게 집중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진단 없는 미래는 요원하다. 스트레스 관리가 삶의 질과 직결되는 만큼 엔터테인먼트의 핵심인 게임시장은 어떠한 형태로든 발전해 나갈 것이지만, 자본의 업그레이드를 넘어 철학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한 시점이다. 언급하는 것조차 민망해진 ‘IT 강국’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판을 짜는 정부의 신뢰할 만한 미래지향적 접근과 산업 전반의 융합이 절실하다. 2019년에도 지스타는 분명 열릴 것이다. 신작 게임의 1/10만이라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조명할 줄 아는 컨퍼런스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By 김신강 에디터 merrybun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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