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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일품진로, 지금은 하품진로

위클리포스트 2018. 6. 26. 23:28


과거엔 일품진로, 지금은 하품진로
하이트진로의 꼼수 전략,자충수 될라!



[2018년 06월 26일] - 마셔본 이가 하나 같이 예전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향에서 단번에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10년 참나무통 속에서 숙성한 누룩의 향이 풍기지 않다는 거다. 심지어 일반 소주와 흡사하거나 굴욕적이게도 경쟁사의 제품인 화요화 흡사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맛이 예전 같지 않네요."
"은근하게 풍기던 향이 없어졌네요."
"이건 그냥 소주 같은데요."


기존 일품진로가 상당히 독하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화요 또한 도수만 보면 전혀 낮지 않아 비슷한 인상을 풍긴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진로 입장에서는 술의 고급화를 꾀하고자 출시한 제품에서 이러한 평가로 귀결되어 자칫 고되게 쌓아 올렸던 일품진로의 명성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다. 물론 이러한 구도를 화요도 반기지는 않을 게다.


진로의 아픈 흑 역사가 담긴 숙성 증류주
경영난 직전 참나무통에 담가둔 게 10년 차
처리 곤란한 술의 재발견, 향과 맛이 일품!


탄생 비화가 참 재미지다. 진로에게는 굴욕이 담긴 술이자 우연한 계기(?)로 나오게 된 술이 바로 일품진로다. 지난 1997년은 진로에게는 경영난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기였다. 이 무렵 진로는 1년간 숙성해 프리미엄 희석식 소주에 섞는 용도를 감안해 참나무통에 담가뒀고, 그 무렵 주인이 바뀌면서 한동안 빛을 못 본 셈이다.


세상에 나온 것도 아주 우연이었다. 2005년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공장에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참나무통을 발견했다. 통 안에 담겨있던 소주는 흘러간 기간만큼이나 오랜 기간 사람의 손길을 벗어나 숙성이 된 후였다. 애물단지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굴욕적인 방치 덕분에 한국의 위스키 역사를 새롭게 쓴 상황.

제품 품평회에서 기막힌 맛과 향으로 평가를 받으며 2007년 시판이 결정됐다.

그 덕에 오늘날 우리가 일품진로를 마주하게 됐고 현존 디자인은 지난 2014년 창립 90년 기념 주로 등장한 진로1924의 원형이다. 알코올 도수는 25도에 출고 가격은 9,400원에 불과했지만 오랜 세월이 담긴 탓인지 시중에서는 10년산 참나무 목통에 숙성한 고급 증류주로 입소문을 타고 3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찾는 이가 많았다.

한번 맛본 애주가의 입맛에 일품진로만 한 국산 술은 드물다는 평가도 득이 됐다. 애초에 계획 없이 출시가 이뤄진 술이라 충분한 생산량을 보유하지 않은 것도 어쩌다 탄생한 비화가 한몫했다. 결국 원액은 전량 바닥났고 일품진로는 뭐가 그리 급했던지 너무 성급한 대안을 세웠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술
10년의 세월을 타더니 맛과 향이 기막혀
원액 부족으로 추가 생산은 5년 뒤


시중에서 10년산 일품진로1924는 거의 바닥났다. 일부 소매점에 재고로 남은 물량을 제외하면 더는 유통은 힘들다는 의미다. 하이트진로는 예상치 못한 인기를 경험하고 부랴부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10년 세월을 채우려면 앞으로 족히 6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지난 2014년 참나무로 만들어진 참나무통에 원액을 담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 다른 방도가 없다. 문제는 기다리기 힘들었던지 내부에서 일품진로 출시를 감행했고 10년짜리 숙성 증류주는 고작 6개월에 불과한 증류주로 변경돼 새롭게 출시됐다.

전작이 약간 누런빛을 띠고 있다면 새로운 일품진로는 그야말로 우리가 마셨던 소주와 진배없는 맑고 투명한 소주 색상이다. 애주가의 입맛이 변하지 않는 한 무려 9년 6개월이라는 세월을 덜 탄 증류주에 만족을 표할 리 없다. 그리고 반응도 역시나 그랬다.


병의 형태를 달리했다면 좀 반감이 덜하지 않았을까! 기존 10년산 숙성 증류소주를 기대했던 사용자의 입맛에 새로 나온 일품진로는 영혼 없는 소주라는 평이다. 물론 하이트진로 측은 증류 초기와 말기의 원액은 제외하고 향과 풍미가 가장 뛰어난 중간 원액만 사용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주장하지만, 사람의 입맛이라는 것이 보통 사악해야지!

이미 길든 맛을 어찌하겠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세월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6개월이고 나발이고 그냥 형보다 못한 아우의 전형이지 않나 싶다. 이미 원작인 10년산 일품진로를 마셔본 이라면 성에 차지 않을 테고, 안 마셔본 이라면 조금 비싼 1만 원 짜리 증류주라는 의미 이외의 감흥이 따를 리 만무하다.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는 했는데, 그렇다고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않겠나!

가장 곤란해진 것은 일식집이다. 10년산 일품진로를 최대 3만 5,000원까지도 팔아봤는데, 느닷없이 등장한 고작 6개월 생 일품진로는 이보다 반값인 1만 5,000원에 팔아야 할까? 고민일 거다. 이 가격이면 물 건너온 일본산 사케와 경쟁을 해야 하는 구도라 용량이나 가격이 애매해도 한 참 애매한 포지션을 피해 나갈 방도가 없다.


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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