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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위기의 청년창업 "나는 꿈만 꾸었던 것 같다"

위클리포스트 2017. 11. 1. 21:54
위기의 청년창업, 연대보증에 빠져 허우적
청춘을 볼모로 창업 장려하는 사회



▲ 되돌리고 싶다는 A씨는 오늘도 희망을 꿈꾼다.



헬조선에서 좌절한 청년사업가의 꿈과 희망
성공을 꿈꿨지만 정신 차려보니 부도난 법인 대표
재기를 가로막는, 신불자 낙인과 독촉장 폭탄


[2017년 11월 01일] - 우리 청년들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은 이제 남의 일이 된 지 오래다. 졸업과 동시에 불합격 통보 앞에서 좌절하고 매스컴은 연일 청탁 비리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노력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학에 각종 자격증으로 중무장을 한들 기업의 문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극적인 시나리오를 만들거나 그게 아니면 혈연, 학연, 지연 그리고 각종 청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평범한 청년이 취업 바늘을 뚫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취업 대신 창업하라고 호들갑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합류해 창업센터 유치에 열 올리고 있다. 유행처럼 번진 창업 열풍은 대학에 창업 학과를 개설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제는 굳이 수도권으로 올라오지 않아도 풍족한 시설을 갖춘 창업센터가 전국에 깔렸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상당수는 그야말로 ‘N포세대’, ‘흙수저’, ‘헬조선’ 등 현 시국을 대변하는 암울한 수식어가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니는 이들 일색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남의 것으로 여겨졌던 '합격'이라는 통보 대신 정면 돌파 승부수로 선회해 20~30대의 황금 기회비용을 밑천 삼은 이들이 삼삼오오 팀을 꾸려 탈출을 공모 중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까?


성공한 청년사업가, 모든 것이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점쳐졌고,
지금 손에 남은 것은 무일푼, 수억 원의 부채가
그의 어깨를 누른다. 몇 번이나 자살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마누라 생각에…


"다시 재기할 기회가 어딨어? 망하고 나면 그게 끝인데."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렵게 잡은 자리였다. '사업하던 당시 사연을 듣고 싶다'는 요청에 손사래를 치며 몇 번을 거부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금 시간 되면 커피나 한잔 마시자고 토요일 밤에 회신이 왔다. 당시 시각은 밤 11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약속장소에서 어렵게 만난 A 씨(본인의 요청으로 실명 표기 不)에게 '다시 창업할 기회가 있으면 또 하겠는가?'라는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예상대로 '단호한 부정'이었다.

그에게는 지금 수억 원의 부채가 잡혀 있고 채무자의 상환 독촉도 계속되는 상태다. 손에 쥐어 본 적도 없고 본적도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이기에 상상도 안 된다는 A 씨에게 세상은 신용불량자라는 타이틀까지 내걸었다. 인간이 내몰릴 수 있는 한계에 달하자 그는 한때 극단적인 선택도 떠올렸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의 나이에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30대 초반에 구상했던 아이디어를 들고 여기저기 투자가를 만났을 당시만 해도 모두가 하나 같이 손뼉을 치며 성공은 문제없다고 부추겼다. 분위기가 만든 성공이라는 허상에 도취했을까? 투자부터 진행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주변에서 부러워했고 함께 일하자는 동료도 줄을 섰다. 돈도 마다했다. 지분으로 모인 이들로 조직이 꾸려지고 프로젝트는 순탄하게 추진되는 것처럼 보였다.

"실질적으로 수중에 돈은 없었죠. 내가 사업하면서 준비한 시드머니는 1억 원이에요. 회사원이 이 돈을 모으려면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꼬박 10년은 저축해야 가능한 금액이긴 한데, 이 돈을 투자하면 그보다 몇 배를 더 벌 거라 자신했거든. 눈앞에 장밋빛 환상이 펼쳐지는데 마다할 놈이 어디에 있어!"


하지만 그러한 자신감은 A 씨뿐만 아닌 합류한 동료도 마찬가지였다. 1억 원이라는 금액은 6개월이 넘어가자 바닥을 보였다. 급여는 꿈도 못 꿨다. 간신히 회사 지분을 볼모로 모인 이들 앞에 각종 공과금과 개발에 필요한 비용 그리고 꾸준히 나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돈이 없어서 하는 스타트업이 아닌 스타트업이니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내용은 아무도 안 알려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업 전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 대가를 체감할 당시에는 너무 늦은 시기였다. 발을 뺄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 상품화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PLAN. B를 가동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던 무모한 한 수였다.


연대보증의 늪에 빠진 자금 수혈
초반 구상과 달리 산으로 가던 그 순간
공포감에 'STOP'을 외쳤다. 하지만,
직원끼리 지분을 모아 세력싸움이 시작됐고
지분 비율대로 결정, 사업은 추진됐다.


"나는 불안하다. 그만둬야겠다." 했지만,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회사의 대표였지만 조각난 지분 앞에서는 한 명의 직원에 불과했다. 뒤늦게 합류한 직원까지 세력싸움에 가세하면서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목표 하나만을 보고 브레이크 고장 난 기차 마냥 전속력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대기업과 유명한 브랜드까지 가세하며 기세등등했지만 안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고 하늘도 무심했다. 대기업이 내부 논란으로 매스컴을 타면서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한 담당자는 회사 사정이라고 양해를 구했고 투자도 없던 것이 됐다. 불똥은 허리를 휘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대기업 브랜드를 보고 투자를 약속한 브랜드까지 연달아 발을 빼며 융통되어야 했던 자금줄이 말랐다. '부도'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고 예상대로 모든 사업은 줄 스톱을 맞았다.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경험하고, 믿고 투자했던 많은 사람에게 피해도 주고, 함께 참여했던 친구들까지 아프게 했습니다. 어떻게 든 피해를 줄여보자는 생각에 지인 돈까지 끌어왔는데 결국 막지 못했어요. 동업자는 돈 문제 나오니까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지분 비율대로 억울함을 풀려면 소송을 해야 하는데 수중에 십 원짜리 한 장이 아쉬웠어요. 사실 월급을 받아 가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1년이 넘어 한 달 월급이라도 목마른 상태가 돼 버리니까 견딜 여지가 없겠더라고요."


매력적인 숫자가 관건이던 창업
투자를 받을 때도 숫자 놀이
매출을 낼 때도 숫자 놀이.
미래를 전망할 때도 숫자 놀이
허황된 숫자를 향해 젊음을 불태웠다.


한때에는 성공한 청년사업자라는 타이틀에 가장 근접했던 그를 향해 세상이 등을 지기까지 시간은 2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족해서일까? A 씨는 "자본도 부족했고, 아이템에 대해 전문 지식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너무 무모하게 베팅한 것이 잘못인 것 같다"고 후회했다. 여기에 1년여의 준비 끝에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와 사업을 했지만 배 따뜻할 때의 1년과 나와서 1년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회사원이던 1년간은 여유롭게 계획도 잡고 예쁘게 꾸밀 생각도 했으나 나와보니 그러한 여유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전쟁이 됐다. 너무 정신없었고 흐름도 빠르게 변했고 결정적인 것은 시장이 비좁았다.

이미 남보다 한발 먼저 창업의 문턱을 넘어 경험해본 A 씨. 다시 재기를 꿈꾸고 있다. 혹시 '창업을 구상하고 있냐?'라는 질문에 "물론 다시는 창업은 하지 않을 거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데다가 돈이 없는 상태에서 남의 돈이나 투자금을 목전으로 전개한 창업은 곧 부메랑처럼 의사결정권에서 제동을 걸 거라는 것. 요즘 창업 시장을 보면 투자자도 많고 지원금도 넘쳐나고 각종 혜택도 풍성한데 이 과정에서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는 건 가장 어리석다고 강조했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는 건 잘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플랜이지…. 요즘 대학생들 상당수가 투자금에 목매달고 있던데 그건 지원금 하이에나 같은 거야.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는 지원이 안 되고 눈먼 곳으로 스며들어 가 소진되는데, 이력서에 한 줄 더 넣기 위해 그러는 건 정작 지원금이 꼭 필요한 사업가의 목줄을 조이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죄악이라고 봐"

그렇다면 실패를 경험해본 청년 사업가인 만큼 해줄 조언도 있을 것 같다.

"대부분 꿈만 가지고 시작하고 잘될 경우만 계산하는데, 최악의 리스트를 늘 염두에 두고 판단하세요. 창업도 시기라면 빨리 접는 것도 타이밍이랍니다. 뛰어든 사람은 열정이 넘치니 잘 될 것만 보고 나아가는데, '더는 아니겠다'라는 판단이 들면 바로 중단해야 해요. 나도 모르고 분위기에 이끌리고 계속 올인하는 구도가 되는 게 가장 큰 실책이거든요."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바로 실패 사례다. 한해 수많은 청년이 창업 시장에 뛰어들지만, 이 가운데 성공하는 것은 1%에 불과하다. 더구나 우리 시장은 워낙 수요가 좁기에 같은 성격은 상위 1~2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결국 사라진다. 그렇기에 청년들이 선택한 상당수 아이템은 '창업 = 실패'로 귀결되는데, 막연한 성공담에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타트업의 성공신화를 찾아보면 참 사례도 넘쳐나고 달콤하게만 느껴져요. 정작 중요한 실패 사례는 모두가 외면하죠. 왜 실패했는지를 찾으면 나중에 실패할 스토리가 그대로 보여요. 자본이 있어도, 아이디어가 있어도, 서비스가 잘 되어도 실패의 변수는 늘 상충하죠. 그래서 실패의 변수를 줄여나가는 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인데, 실패라는 이유로 마냥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고 쉬쉬하죠. 가장 주의해야 공식인데 그것을 외면해요."

다시 재기를 꿈꾸는 A 씨. 누구나 그랬듯 A 씨도 한때 막연한 성공을 꿈꿨다. 하지만 성공의 열매는 A 씨의 것이 아니었다. 강남에 그럴싸한 사무실도 구했고 그럴싸한 조직도 운영했고 그럴싸한 팻말로 대표님 소리도 들었지만 그럴싸한 대가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수억 원의 부채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남다른 무게감에 버티기에도 힘들지만, 오늘도 A 씨는 재기를 꿈꾼다.

금융거래가 막히고 신용불량자라는 타이틀까지 달면서 벼랑 끝에 몰렸지만, 그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믿고 격려해준 지인이 있기 때문이다.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되돌리고 싶은 실패의 터널을 지나자마자 밀려온 후회, 하지만 여전히 남은 열정은 채 식지 않고 열기를 내뿜고 있다. 물론 천문학적인 부채 앞에서 속은 바싹 타들어 갔다. 그래서였는지 약 2시간의 인터뷰에서 A씨가 태운 담배는 족히 한 갑을 넘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후회하세요?'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잠시 후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했다. "후회하지는 않죠. 단지 현실을 부정하고 꿈만 꾸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이 상황이 꿈같아요. 내가 손에 쥔 것은 없는데, 잃은 것이 너무 많거든요. 욕심을 낸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인 거겠죠"


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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