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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을(乙)’로 사는 대리기사, 생활고에 ‘콜’을 쫓는다.

시사/정치/사회/행사/취재

by 위클리포스트 2016. 4. 1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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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 · 대리운전 ]
오늘도 ‘콜(대리운전 주문)’에 목숨 건 운전이 시작된다.
갑질에 치여도 살기 위해 함구하는 대리인생





- ‘진상 짓’하는 손님도 왕, 한 콜이라도 더 받기 위해 달린다.
- 최대 30%까지 달하는 수수료를 제한 나머지가 수익
- 대리가 본업인 대리기사의 ‘밤’은 오늘도 도로위에서 시작한다.

글·사진 : 김현동(cinetique@naver.com)




“대리운전 불러주세요. 합정역 갈 거예요~”

아직 어둠이 완전히 내리지 않은 이른 밤 9시. 강남 번화가에서 대리운전을 부른지 15분 남짓 지났을 무렵 반듯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남성이 뛰어오며 이렇게 외쳤다. "대리운전 찾으셨죠!“

생판 모르는 남에게 자동차를 맡긴다는 것이 내심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나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기사님께 자동차 열쇠를 맡긴 후 조수석에 옮겨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본업은 따로 있고 부업으로 하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대리운전이 본업은 아니시죠?” 라며 궁금해하자 본업이라고 답변이 돌아왔다. 즉, 업체에 소속되어 기업 고객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일명 ‘법인 운전 대리업체와 정식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대리기사라고 설명했다.

본업으로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는 유시진(가명, 53세) 기사님은 보통 하룻밤에 최소 2콜에서 최대 10콜까지 뛰며 평균적으로 최소 7만 원에서 많게는 21만 원까지 벌며 생계를 유지한 것이 벌써 15년 차에 접어든다고 했다.


# 치열한 대리운전기사의 ‘콜’ 뛰기 경쟁
무작위로 뜨는 호출을 선점해야 살아남는 현실
30% 중개 수수료 제한 나머지가 수익.
하룻밤에 많게는 21만 원까지 수중에 들어와
하지만 시간이 곧 돈이기에 아찔한 운전도 감수



운전 중인 기사님께 법인기사로 활동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무작위로 뜨는 일명 ‘콜’을 먼저 가로채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배정되는 고정 기업 고객과 관계만 잘 유지하면 되며, 가령 콜이 없는 대낮에도 운전을 요청하는 호출이 오기에 운전기사 역할을 해주고 별도의 비용을 챙길 수 있어 수익이 쏠쏠하다고.

그렇다 보니 법인기사로 활동을 자원하는 대리기사의 수도 늘고 있지만, 별도의 기준에 따라 선별하기에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한다. 복장 또한 일반 대리기사와 달리 정장을 기본으로 하는 등 상대적인 차별화를 통해 고급스러움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유시진 기사님은 이날 밤에는 법인 호출이 아닌 일반 호출을 받고 일반 고객을 상대로 대리운전을 나선 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보통 대리운전 시장의 절대 ‘갑’은 중개업체인데, 대리기사는 이들 업체에 건당 운행료의 20~40%를 수수료로 낸다. 여기에 콜을 받을 때 필요한 프로그램 사용료 또한 개당 매달 1만 5,000원 정도에 달하는데 보통 2개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

하지만 문제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생업전선에 뛰어드는 기사의 수가 포화상태로 접어들면서 급기야 배차를 받을 수 없게되자 경쟁사까지 양다리를 거치는 움직임이 시작돼 영역 다툼이 심화됐다. 이렇게 이중으로 뛰는 대리기사의 수가 늘어나자 업체는 해당 기사의 단말기에 ‘록(lock·잠김)’을 걸어 걸려 자사 서비스를 통해 배차를 받을 수 없게 불이익을 주기 시작한 것.

대리기사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소극적인 행보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같다. 불이익을 주는 페널티 제도 때문이다. 보통 징계 대상으로 분류되면 약 한 달간의 기간 동안 배차를 받을 수 없는데 이를 두고 대리운전기사 사이에서는 일명 ‘괘씸죄’에 걸렸다며 ‘똥 밟은 샘’ 친다는 것. 유시진 기사님 또한 하루 전 콜이 많다는 프로그램을 소개받고 설치했는데 이후 락이 걸렸다는 것이다.


“갑질도 이보다 더한 갑질이 없어! 너무한다니까! 그렇다고 콜을 못 뛰겠나. 지들이 락을 걸었으면 일반 콜이라도 받아서 뛰어야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 조건도 낮췄어. 보통 강남에서 합정동까지 가면 법인은 3만 원 받는데 일반으로 하다 보니 2만 5천 원만 받거나, 가까운 거리는 2만 원인데 1만5천만 받기도 합니다.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죠.”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 생계가 걸린 대리기사, 콜 뛰기의 노예로 근근
일반배차는 본능적으로 반응해야 배차받을 수 있어
막 뛰는 새내기 기사는 하룻밤에 1개로 뛰기 어려워
로지(Logi), 콜마너, 아이드라이버 등 프로그램에 절대 의존



페널티를 당한 뒤부터 실제 벌어들이는 수익도 줄었다. 이전에는 하룻밤에 최대 20만 원 까지 벌었지만, 경쟁이 심한 일반 배차를 받은 이후에는 이것조차 반으로 줄었다.

중개업체는 자사 소속 대리운전에게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고 등록된 기사에게만 자동배차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사례로 언급한 유시진 대리기사 같은 경우 자동배차를 받을 수 없게 조치한 까닭에 여러 명의 대리기사를 대상으로 동시에 콜 정보가 전해지는 일반배차를 지켜보다가 콜을 가로채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다.

현장에서 이와 같은 일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실제 2014년 10월 프로그램 로지 운영사인 바나플은 경쟁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자동배차를 중단한다는 공지를 한 바 있으며, 부작용이 속출하자 이를 감시하던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1월 11일 대리운전 배차 프로그램 '로지(Logi)'를 개발·운영하는 바나플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4억 원을 부과하기도 했다.그런데도 현장에서는 과징금을 비웃는 듯 여전히 불합리한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상황.

“달리 방법이 없어요. 밉보였다가 콜을 못 받게 되었는데 누가 프로그램을 깔려고 하겠어요. 월 사용료는 사용료대로 내는데도 이렇게 하는 것은 갑질이지……. 갑질 중에서도 상 갑질이지…….”라고 말을 흐렸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한 건이라도 더 뛰기 위해 자연스레 안전을 위협하는 과속은 물론 얌체 운전도 불사한다는 것. 이날 배치된 유시진 기사님 또한 몇 번의 차선 변경을 하는 와중에도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아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차에서 ‘빵빵’거리는 경적이 들리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과속 카메라가 있는 구간에서만 속도를 줄이고 그 외의 구간에서는 과속하는 등 목숨을 담보로 한 위협적인 운전을 계속됐다.

“요즘은 공항에서 오는 손님이 돈벌이가 되요. 김포에서 목동까지 가면 한 건만 뛰어도 5~6만 원이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만날 그럴 수는 없으니 오늘 같은 월요일 밤은 이렇게라도 해야죠. 돈벌이는 안되는데 이번 주는 선거가 있으니까 내일은 좀 다르겠네요.

13일이 쉬는 날이라고 대리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거에요~ 우리 같은 대리기사는 대목이 쉬는 날 하루 전이죠. 그렇다보니 친구를 만나도 새벽 3시 이후에나 만나요~ 일을 해야 먹고 사니까!”
라는 이야기를 끝으로 목적지에 도착 후 요금을 받고 다음 콜을 받으러 떠났다.

이날 기사님은 강남에서 합정동까지 약 40분 남짓 운전했으며, 2만 5천 원의 비용을 청구했다. 이 중 최대 30%의 중개 수수료를 제한 1만 7,500원이 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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